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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부

경악한 것은… 나보다 아내가 먼저였다. 그녀는 다리를 오무리며 말했다.

“아… 안돼요! 그것만은… 뱃속에 아이가…”

하지만, 세경은 그런 아내의 저항에 대해 내려다 보더니 그녀의 귓가에 입을 대고 속삭이듯이 말했다.

“농담도… 지금 이렇게 젖어서 하고 싶어 안달이 나서 무슨 거짓말을… 노예 주제에 주인이 안아주겠다면 감사하며 안겨야지 반항할 생각이야?”

“그래도 그것만은 안돼요. 제발… 아이를 생각해서라도…”

그녀의 말에 세경이는 조금 난감하다는 듯이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어투를 조금 바꿔서 말했다.

“솔직히 말했으면 좋겠는데… 아이는 핑계잖아. 이제 안정기에 돌입했잖아. 사실 진심은… 지금 처지가 바뀐 상황에서, 다른 사람도 아닌 내 앞에서 안기는 꼴을 보이고 싶지 않다는 거잖아. 안그래?”

“그… 그건…”

“뭐, 싫다면 강요하진 않겠어. 하지만… 나는 당신을 생각해서 제안한거야. 당신은 지금 뭔가 착각하고 있는 것 같은데… 지금 당신의 입장에서 경계해야 할 사람은 내가 아니야.”

“네? 그게 무슨… 무슨 말을 하는 거예요?”

“한지인씨.”

세경의 말에 아내의 눈이 커졌다. 그리고 못믿겠다는 듯이 세경을 쳐다보았다. 그리고 눈빛을 보더니 거짓이 아님을 확인. 그리고 나를 돌아보았다. 그러면서 말했다.

“새언니? 설마 그 이의 사람이…”

“그래, 맞아. 지금 과장님이 사랑하고 정식 아내로 생각하는 사람은 바로 그 사람… 한지인씨야. 자아… 이제 내가 무슨 소리를 하는 건지 이해가 가겠지? 그리고 왜 그러는지도…”

아내의 눈빛이 복잡하게 변했다. 잠시 생각에 잠긴 그녀는… 이내 정리되었다는 듯이 명쾌한 얼굴이 되었다. 그리고 그건… 왠지 모르게 좀전에 당황하던 모습이 아닌, 약간 색정적인 모습을 드리우고 있었다. 아내는 고개를 돌려 여전히 자신을 끌어안고 있는 세경이를 바라보면서 말했다.

“죄송해요. 제가… 큰 실례를 저질렀네요. 당신은... 제 편이었군요.”

“그래, 맞아. 방법은 거칠지만 난 근본적으로 당신 편이야. 그리고 당신은 내게 유용한 으뜸패고. 우리는 서로 원하는 목표를 위해서 동맹이 가능한 입지에 선 우방이지.”

“아뇨. 우방이라뇨. 당치도 않아요. 당신이 제 윗사람이에요. 저를 그렇게 우대하지 마세요. 도리어 불편하니깐. 하지만, 제게 그런 기회를 주신 당신에게 진심으로 감사드려요. 이제부터는 정말로… 말뿐이 아닌 마음으로 당신을 따르도록 하죠. 그리고… 지금 제가 해야 할 일을 하겠어요. 더는, 이의를 제기하지 않을께요.”

“그래… 그래야 내 귀여운 몸종이지. 잘 모셔. 파주의 암퇘지가 머리 속에 떠오르지 않을 정도로…”

그리고 아내는 정말로 일어서서 나에게 다가왔다. 그리고 세경이는 대신 아내가 앉아 있던 의자에 앉았다. 뭐… 뭐야 이 상황은? 나는 여전히 쫓아가기 힘든 아내와 세경이의 여자들만의 정치적인 대화에 당황할 뿐이었다. 그러는 사이에 아내는 침대에 올라와서 내 앞에 누웠다. 그리고 다리를 활짝 벌리며 나를 바라보았다. 

“안아주세요. 주인님…”

나는 어이없는 이 상황에 할말을 잃었다. 이건… 내 쪽에서 더 어처구니가 없는 일이다. 지금 배가 잔뜩 부른 임산부한테 무슨 만행이야? 나는 결국 참다 못해 세경이에게 말했다.

“야. 이건 좀 아니야. 적당히 해.”

“어머나… 과장님도 너무하시네요. 저렇게 사랑해달라고 애걸하는 전부인이 눈앞에 준비 완료인데… 무시하실 건가요? 여자를 부끄럽게 하시면 안돼죠.”

“애초에 될리가 없잖아!!! 결혼해서 같이 살때도 막판에는 별로 안하는 사이였다고! 근데 지금 와서 배가 남산만해져서 어떻게 해? 반응 할리가 없잖아?”

그런 나의 항의에 세경이는 손가락으로 머리를 꼬면서 말했다.

“아… 그 문제요? 그건 말이죠. 발상을 한번 전환해서 보세요. 지금 눈앞에 있는 여자… 웬수같던 전 마누라라고 생각하면 당연히 안서죠. 하지만 이렇게 생각해보세요. 남의 여자… 남편이 죽은지 얼마 안되는 남의 여자를 노예로 만들어서 안는다고 생각해보세요. 느낌이 확 달라지실 꺼라고 생각되는데요?”

세경의 어이없는 말에 할말을 잃었다. 그런 말 한마디로 상황이 바뀔리가… 없다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다. 어라? 이거 뭐야… 지금 내 눈앞에서 부끄러워 하고 있는 이 여자… 정말로 전에 웬수같던 내 마누라 맞아? 이 여자… 원래 이렇게 예뻤었나? 갑자기 내가 모르는 다른 사람을 보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러면서… 상황이 이해되기 시작했다. 아, 그래… 지금 이 여자… 내 여자 아니다. 남의 여자다. 그 명확한 증거가 보이기 창피해 보이는 부푼 배다. 다른 남자의 아이를 품은 여자… 그래, 이 여자는 다른 놈의 여자다.

갑자기 그렇게 생각하니… 뭔가 속에서 끓어오르는 것이 있었다. 내 여자가 아닌 여자… 다른 남자의 손길에 희열했고 익숙해지고 그의 씨앗을 받은 여자… 하지만 지금은 내 품안에서 거둬주기를 갈구하고 있다. 지독하게 배덕적인 상황이다. 자기 남자가 죽은 지 얼마나 됐다고… 하지만, 나에게 있어서는 그건 최고로 충족을 주는 상황이었다. 타인의 여자를 내 손에 넣었다는 그 성취감… 그것이 나에게 거친 욕망을 느끼게 만들었다. 나는 손을 뻗었다. 그리고… 그녀의 가는 목을 쥐었다.

“커헉!!!”

목이 졸린 그녀가 숨을 몰아쉬며 발버둥쳤다. 그것은 마치 화살에 맞은 사냥감이 저항하는 것 같아 더 자극적이었다. 나는 다른 손으로 그녀의 다리를 활짝 벌렸다. 그리고… 그녀의 샘을 핡았다. 마치, 노루 사냥을 마친 사냥꾼이 노루의 싱싱한 생간을 피갑칠을 하며 먹는 것처럼… 그녀는 산채로 생간이 뜯긴 사슴처럼 경련을 일으켰다. 아름다운 그녀의 모습이 내 손에 자지러지며 부숴져 가고 있었다. 부른 배에 땀방울이 흘러 내렸고, 머리칼이 젖어서 흩날렸다. 나는 사냥감에게 칼을 꽂았다.

“하아아악!!! 히윽!!!”

사냥감은 자지러지며 허리가 꺽였다. 나는 낙하하는 허리를 손으로 붙들어 받쳤다. 그리고 그녀를 뒤집었다. 사냥감이면 사냥감 답게… 짐승처럼 범해지는 것이 당연하겠지? 나는 그녀의 흐드러진 머리칼을 손으로 쥐고 배게에 머리를 처박고 드러낸 그녀의 뒤를 유린했다. 그것은 유쾌한 살육이었다. 고통에 몸부림치면서도 저항하지 못하는 그녀… 종종 손으로 배가 바닥에 닿지 않게 감싸는 것이 그녀가 할 수 있는 유일한 행동이었다. 아항! 새끼까지 가진 사냥감이었군. 성취감이 더 고조된다.

그리고 나는 울부짖는 그녀를 격하게 범했다. 그녀의 젖은 등에 몸을 밀착하고 짖누르듯이 뒤에서 안았다. 그리고 손을 뻗어 그녀의 첨단을 만졌다. 응? 손끝에 촉촉한 느낌이 느껴진다. 아직 만화에서 나오는 것처럼 모유가 나오는 건 아니겠지. 땀이 꼭지에 매달린 것이겠지. 하지만… 임산부라는 시점에서 그건 왠지 모르게 모유랑도 별로 다르지 않아 보인다. 아아… 한가지 더 자극된다. 지금 나는 어느 아이의 엄마를 범하고 있는 거구나. 갑자기 그것이 팽창하는 기분이 든다.

“하윽!!! 으으윽… 안에서 갑자기…”

그녀가 버거운 비명을 질렀다. 하지만 나는 그러거나 말거나 더 격하게 그녀를 난자했다. 단언컨데… 내 인생의 최고의 정사였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사람이 처남댁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정사 하나만을 봐서는 지금 내 눈앞에 사냥감이 최고였다. 어처구니가 없네… 같이 살던 시기에는 단 한번도 느껴보지 못했던 격한 희열을 떠난 다음에서야 맛보게 되다니. 나는 한때 내 여자였던 희미한 기억이 있는 존재를 최고로 거칠게 안으며 환희했다. 그리고… 절정에 다다랐다.

“아! 안돼… 안돼!!! 아아앙!!! 밖에다 제발…”

그녀의 부탁을 들어주었다. 나는 피날레의 직전에 먼저 경련하는 그녀를 느꼈고, 그 다음에 그걸 뺐다. 그리고 그녀를 뒤집어 눕힌 다음에 그녀의 배 위에 사정했다. 남산만큼 부른 배 위에 애액이 흩뿌려졌다. 그것은 마치… 잡힌 노예에게 찍은 낙인처럼 보였다. 그렇게 우리는 화려하게 가버리고 의식을 잃었다. 정말… 최고의 정사였다. 멀리서 세경이가 흡족한 미소를 띄며 나를 보고 있는 것을 본 것 같다. 그리고… 걸어와 역시 의식이 날아간 아내를 안아들고 나간 것을 마지막으로 완전히 의식을 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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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부

정신을 차렸을때는, 이미 아침이었다. 밖으로 나가보니 세경이는 아침을 준비하고 있었다. 알몸에 앞치마만 두르고… 그리고 나를 보며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리고 골방을 가리켰다. 나는 그녀가 가리키는 골방에 들어가 보았다. 골방이라고 해도, 조명이 어둡고 아늑해서 안정을 취하기에 침실보다 좋은 공간이었다. 역시… 침실 추방이 아니라 임산부 배려였구만. 거기서 아내는 여전히 깊이 잠들어 있었다. 얼굴 가득 만족스러운 미소를 드리우고선… 물론, 임산부에 안어울리게 벌어진 비부가 좀 어색하고 선정적이었지만…

“좀 더 자게 냅두세요. 어제는 나름 수고했으니 내버려 두도록 하죠. 그보다는, 모처럼 좋은 저택에 알몸 앞치마도 했는데, 뒤에서 서프라이즈 하는 이벤트 같은 거 하실 생각은 없으신거예요?”

“넌 존재 자체가 서프라이즈라서… 하지만, 바란다면…”

“꺄악!!! 손으로 가슴부터 주물러야 정석이지 바로 삽입부터 하면… 아앙!!! 음식이 엉망이 되어버려.”

뭐 그렇게… 우리는 아내의 집에 첫날을 보냈다. 그리고 며칠 동안… 우리는 아내를 협박하던 불한당들을 제거하는 것에 성공했다. 처음 찾아온 건 전처였다.

“너… 이 갈보년… 지금 이게 무슨…”

전처는 당황했다. 무리도 아니지… 나는 왠지 보란듯이 목욕수건만 두르고 역시나 반라 상태에 목에 쵸커… 라기에는 개목걸이에 가까운 걸 찬 아내의 목을 핡으면서 왠지 양아치 마초 같은 느낌으로 말했다.

“어이, 댁이 울 마누라 전남편 전마누라유? 만나서 반갑구만. 나 이 여자 서방이야. 살다보니 이런 일도 다 있네. 이 갈보년이 자식이랑 서방 버리고 딴 남자한테 꼬리쳐서 잘사나 봤더니… 서방 잡아먹고 과부 신세더라구. 그래서… 냅다 내가 다시 주워먹었지. 사람이 역시 착하게 살고봐야 해. 그러니 이런 기회를 주지. 암튼… 여기는 이제 내가 접수했수.”

“그… 그게 무슨 말도 안되는…”

“뭐, 서방없는 년 먼저 집는 놈이 임자지. 그리고 나 이 기집애 전 남편이기도 하거덩. 와우, 대박… 이렇게 큰 돈을 물고 있을줄은 몰랐네. 뭐 적당히 주물러주는 맛이 있겠어. 암튼… 이건 내가 찜했어. 그러니, 재산 문제 논하고 싶으면 나랑 하자고. 근데… 보아하니 아줌씨도 반반하고 몸매도 괜찮네. 거기다 아직 미혼이사라며? 아이도 없고… 어때? 함 우리 진지하게 유산 문제 의논 좀 해볼까? 다 벗고 소탈하게 말이야.”

“꺄아아악!!!”

자리에서 일어나 조금 음흉한 얼굴로 다가가자 전처는 비명을 지르며 도망갔다. 그리고 다시는 나타나지 않았다. 다행이네… 정말로 의논하자고 했으면 엄청 난감했을뻔 했는데… 아무튼 이걸로 한건 해결. 그리고 다음은 시동생이었다.

“뭐야? 지금 이게 뭐하자는 짓이야? 너 죽고 싶어? 이 새끼가 어딜 감히 우리 형 집에 발을 디뎌… 확 눈깔을 뽑아서… 어? 어어어!!! 크허어억!!!”

“스턴건이라는 거… 정말로 사람이 움직이질 못하는 구나. 효과가 직방이네.”

“너, 너 이 새끼… 죽여버린다!!! 지… 지금 뭐하려는 거야? 왜 오함마를 들고…”

“아, 별건 아니야. 이 정도면 충분히 정당방위라고 생각되서 말이지. 지금 이 장면 현관에 새로 설치한 CCTV로 다 찍었고, 네가 주먹 휘두르려고 하는 장면에 대사들도 다 녹음했어. 불법 가택 침입에 협박에 공갈에… 이 정도면 증거는 충분하니, 우리가 좀 반격해도 큰 문제는 되지 않을 것 같네. 들어보니 저 사람 엄청 괴롭혔다며? 딱 한대만 맞자.”

“어? 어어어!!! 야! 너 미쳤어? 그거 오함마!!!”

‘콰아아앙!!!’

나는 머리 위까지 높이 치켜든 오함마로 스턴건에 마비되 바닥을 나뒹구는 시동생을 향해 내려쳤다. 머리를 노리고… 그런데, 빗나갔다. 빗나간 오함마는 시동생의 귓가의 옆에 대리석 바닥을 아작 내버렸다. 부숴진 돌조각이 그의 안색을 창백하게 변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나는 태연하게 오함마를 다시 들어올렸다.

“아, 실례… 손이 미끄러져서 그만. 이번에는 제대로 맞출께. 어? 이봐!!! 어디가? 한대 맞고 가야지?”

마비를 이기는 인간의 초월적인 모습을 보았다. 시동생은 거의 구르고 기면서도 밖으로 도망쳤다. 나는 도망가는 그의 뒤에 오함마를 집어던졌다. 다행히도 맞고 힘이 빠져 멀리 못가진 않고 죽을 힘을 다해 시야 밖으로 도망쳐 사라졌다. 그렇게 또 한명 해결. 그리고 마지막으로 시어머니는 의외로 젠틀하게 마무리했다.

“지금 이게 무슨… 우리 애가 눈을 감은지 얼마나 됐다고 다른 남자를 집에 끌어들여!!!”

“아, 조금 진정하시죠. 저희는 최도영씨 측의 고용인인입니다. 관련 유산에 대해서 최도영씨의 의뢰를 받아 분쟁 대상자와 합의를 위임받았습니다.”

“뭐라고? 그게 무슨… 댁들이랑 할말 없어. 당장 그 기집애 나오라고 해!”

“그러시면 곤란합니다. 지금 살고 계시는 집에서 내쫓기고 싶으십니까?”

“뭐? 그게 무슨 소리야?”

“조사해보니… 어머님이 살고 계시는 그 집의 명의도 사실은 최도영씨 남편의 소유더군요. 그리고 그 외에 어머니가 무단으로 가지고 계신 최도영씨 남편 재산들이 좀 있더군요. 그것들은 전부 상속자인 최도영씨와 유복자식의 것입니다. 해당 재산에 대한 회수에 대해서 진행을 할지 말지 검토 중에 있는데… 계속 그렇게 강경하게 나오시고 저희 의뢰인을 모욕하셔도 괜찮으시겠습니까?”

꿀먹은 벙어리가 되었다. 그래도 그나마 제일 많이 챙겨간 편이네. 살고 있던 집은 그냥 넘겨주는 걸로 합의봤으니… 더는 귀찮게 하지 않겠지. 아무튼, 나와 세경이는 그리 오랜 시간을 들이지 않고 아내를 괴롭히던 관련된 사람들을 제거하는 것에 성공했다. 그리고 후속 조치로 보안 체계도 강화… 그것으로 아내가 우리에게 의뢰한 미션은 완료되었다. 그래서… 엄밀히 말하면 이제 볼일은 다 봤으니 우리가 굳이 그곳에 머물 이유는 없었다. 하지만… 두 여자는 퇴거에 대해서는 전혀 생각치 않은 모양이었다.

원래 그곳에 사는 것이 당연하고 원래 주인과 몸종 관계가 당연하다는 듯이 둘은 그곳에서 안착해버렸다. 의외로… 말은 험해도 세경이는 아내를 잘 챙겨줬다. 회사 일을 하면서도 집에 있는 동안은 몸이 무거운 아내의 좋은 출산 도우미로 있어줬다. 그래서, 아내도 세경이에 대해 의외로 많이 의지했다. 그리고, 왠지 모르게 그날의 정사에서 언급한 모호한 이야기 이후… 둘은 왠지 모르게 절친 같은 느낌으로 서로 긴밀한 사이를 유지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것에 타겟은… 당연히 그 사람인 모양이다.

조금 속이 쓰라렸다. 어찌되었건, 지금 내가 가장 좋아하는 사람이 그 사람이라는 것은 확실한 상황이니깐… 이 사실에 대해서 그녀에게 어떤 방식으로 고해야 할지 의문이 들었다. 그래서… 나는 아내를 돕느라 잠시 가보지 못했던 시골에 오랜만에 가서 그 이야기를 꺼내는 것에 대해서 잠으로 난감한 기분을 느꼈다. 그녀는… 미소짓고 내 얘기를 들었다. 아오, 차라리 화를 내면 속이 편하련만. 예전에 본적이 있는 눈을 가늘게 뜬 미소다. 그녀가 말했다.

“아아… 아가씨가 거기에 붙었다는 말이네요. 뭐 납득은 했어요.”

“저기… 당신이 싫다면 이쯤에서 정리할께. 어차피 용역으로 들어간거고 나도 전부인 유산 탐내는 놈 취급받고 싶지 않아. 그리고… 당신이 최우선이야. 그것만은 확실한 사실이야.”

나의 말에 그녀가 당근을 토막냈다. 카레 만드는 준비가 왠지 살벌해 보이네. 그리고 웃으며 말했다.

“그럴 이유가 있나요? 이혼했다고는 해도 한때 살맞대고 살던 아내잖아요. 어려운 일이 있으면 가서 도와주는 것이 사람 도리죠. 그리고… 그쪽 쿼터를 자기들끼리 쪼개서 쓴다는 것을 제가 이러쿵저러쿵 간섭할 이유는 없지요. 그러니, 좋을대로 하세요. 거기서는 뭘 하시던 당신 마음대로 해도 괜찮아요. 하지만… 한가지만은 확실하게 해주세요.”

그러면서 양파가 조각조각이 났다. 나는 그녀에게 물었다.

“뭔데?”

나의 질문에 그녀는 감자를 토막냈다. 그리고 진지하게 말했다.

“태현이… 지금 태현이는 내 아들이에요. 아무리 친엄마라지만 거기 보낼수 없어요. 아직 어린 아이, 자기 버리고 갔다고 생각하는 친엄마 지금 만나게 할수 없어요. 그러니깐… 태현이에 대해서는 절대 손대지 말라고 전하세요. 정 보고 싶다면 이제부터는 당신이 아니라 제 허락을 받으라고도 전하시고요. 그거… 확실히 해주실 수 있겠죠?”

다시 다른 당근 하나가 토막났다. 왜 저게 내 눈에는 내 거시기가 잘려나가는 것처럼 보이냐? 나는 그녀에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태현이 엄마는 당신이야. 그리고, 내 아내도 당신이고. 그건 변치 않는 사실이야.”

“그럼 됐어요. 하지만… 역시 저쪽은 만만치 않네요. 설마하니 이런 식으로 우회로 치고 들어오다니… 재밌네요. 저도… 놀고만 있으면 안되겠어요. 혹시 기회되시면 전해주세요. 저도 이제 가만히 있진 않을꺼라구요. 같은 수준으로 어울려줄 테니 기대하라고 전해주세요. 이걸로 서울에서 있었던 일은 더는 언급하지 않도록 하죠. 카레는 어떤 맛이 좋으세요?”

“아… 나는 순한 맛.”

“아뇨, 매운 맛 드세요. 드실꺼죠?”

웃는 얼굴로 권하지만 순한 맛 달라고 했다가는 죽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그 이후로는 정말로 그녀는 더는 그 일에 대해서 더는 언급을 하진 않았다. 평소대로의 순딩이 맏며느리 캐릭터였다. 물론… 밭을 망치는 야생 고라니를 맨손으로 때려 잡는 장면을 왠지 보란듯이 내 눈앞에서 하는 것이 좀 의미심장하기는 했지만… 그렇게, 다시 평화가 돌아왔다. 서울과 시골을 오가는 생활을 하면서 양쪽에 충실하려 노력했다.

그리고 왠지 나와 엮인 여자들도 그런 괴상한 상황에도 불구하고 묘하게 안정감을 느끼는 듯이 보였다. 하지만 일상이라는 것은 그렇게 순탄하게만 흘러가는 것은 아닌 모양이었다. 항상, 만남이 있으면 이별도 있는 것이 인생인 것이겠지. 어느 정도 짐작하기는 했지만 그 날은 의외로 빨리 우리에게 찾아왔다. 

과수원 할머니가 돌아가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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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부


빈소를 찾아오는 사람은 별로 없었다. 장례를 도우러 온 나와 처남댁은 한산한 풍경에 딱히 도와줄 것이 없기에 조금 난처한 기분까지 들었다. 그리고 그렇게 한산하기에 더 어색해 보이는 장면도 있었다. 금발벽안의 모녀… 둘다 검은 한복을 입고 있는 모습이 희극속의 장면처럼 어울리지 않았다. 나디아는 크게 동요하지는 않았다. 평소와 비슷한 조금 슬픈 표정을 짓고선 그저 상주의 자리를 지킬 따름이었다. 하지만… 나는 그녀가 얼마나 억장이 무너지는 기분인줄 알기에 그것이 그렇게 가볍게 보이지 않았다.
 
그녀의 입장에서는 정말이지…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은 기분일 것이다. 하지만 그녀는 그것을 격하게 표현하지 않았다. 원래 서양의 장례가 그런 느낌이어서 그렇기도 하겠지만… 나는 그것이 왠지 그런 슬픔을 표현할 기력조차 잃어버릴 만큼 침체되어 버리고 상심해 버린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나는 고개를 돌려 영정 사진을 바라보았다. 인상좋은 얼굴에 미소를 머금고 있는 사진이 조금 원망스러웠다. 그렇게 갑자기… 저 사람을 두고선 어떻게 발걸음이 떨어지셨나 싶었다.
 
두번째 입원이었다. 이전보다는 조금 오래 병원에서 머물게 되셨다고 하셨다. 그래서 나도 시내에 병원에 병문안을 갔다. 내가 봤을때만 해도 그 할매는 병원에서 힘든 과수원 일을 땡땡이 쳤다고 좋아하며 자기 외국인 며느리가 참하다는 자랑은 주변 환자한테 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그때만 해도 그렇게 갑자기 가실 줄은 몰랐다. 나는 서울에 올라가면서 들려서 농담을 주고 받는 할머니의 모습에 조금 안도하며 병실에 들어갔다.
 
“꾀병 환자가 병실을 차지하니 보험 사기가 문제라고 뉴스에 나오죠. 보아하니 퇴원하셔도 되겠네요.”
 
“어이쿠… 신랑 왔는가? 빈손으로 와도 되는데 이게 왠 꽃인가? 그것도 병원 화단에 있는거랑 아주 비슷한 걸로?”
 
“그건 또 무슨 드립이시죠?”
 
“옛날 영화에서 자주 나오는 바람둥이 남자들이 선물 급조하면 받아치는 클리셰인데 생소한가? 하긴… 요새는 안먹힐 개그겠구먼.”
 
그녀의 말에 같은 병실에 다른 할머니들이 물었다.
 
“누구야? 아들? 사위?”
 
“아, 방금 내가 말했잖아. 내 신랑. 어때? 나이 차이가 좀 나도 그럭저럭 어울리지?”
 
이 할매가 정말… 하지만 난 적당히 장단을 맞춰주기로 했다.
 
“아아… 연상의 마누라는 감당하기가 힘들어. 그래도 백년해로 해줄 사람은 나밖에 없지?”
 
“호호호. 그러게 말이유. 영감… 잠시 산택이나 나갈까요?”
 
우리는 그렇게 어이없어 하는 할머니들을 뒤로 하고 병원 밖 정원으로 산택을 나왔다. 할머니는 미소지으며 말했다. 
 
“역시 자네 하는 걸 보면 우리 영감이랑 쏙 빼닮았어. 자네에 대한 내 평은 들었지?”
 
“네. 들었습니다. 그래서 좀 인성 나빠 볼라고 했는데 쉽지 않네요. 이렇게 시키지도 않았는데 문병이나 오고 말이죠.”
 
“그래야 자네답지. 엄청난 악질이고 밑도 끝도 없는 짓을 아무렇지도 않게 저지르면서도 은근히 밉지가 않단 말이야. 우리 영감처럼… 그 이도 그랬지. 그날 베를린에 빨간 머리 처자를 슈타지에게서 피신시키려고만 안했어도 장벽이 무너지는 게 몇 달 후 였을텐데… 자기 여자도 아닌 임자 있는 여자를 위해서 그게 뭔 삽질인지. 그래도 그거 보고 반해서 결혼할 결심을 하긴 한거 보면 나도 참 얼빠진 년이었지.”
 
지금… 나 인류 역사에 획을 그은 사건의 원인이 어느 바람둥이의 오지랖 때문이었을지도 모른다는 엄청난 소리를 들은겨? 그러면서 할머니는 말을 이어갔다.
 
“지난번에 내가 했던 제안… 나디아에게 직접 거절했다는 건 들었네. 가차 없더구만. 그리고 이유도 비윤리적이라거나 옆에 있는 사람 때문이라는 것도 아니고… 날 좋아하지 않는 여자는 사양이라? 우와… 레벨이 우리 영감보다 높아. 어떻게 하면 그런 멘트가 나오는 거지? 여기서 그런 고수급 지골로를 만날 줄은 몰랐네. 자네 이제 어떻게 할껀가? 어리버리 상식적인 선에서 거절했으면 그냥 넘어갔을지도 모르는 일을… 그런 말을 해버리니 오히려 애의 자존심을 건드려 버렸잖아.”
 
“네? 나디아씨가 그렇게 반응했어요? 의외인데요? 왠지 모르게 자포자기 하는 모습으로 보이던데…”
 
“물론 말은 안하지. 그런 아이였으면 걱정도 안해. 담담히 거절당했다고는 하지만, 내가 걔랑 같이 산 시간이 얼만데… 마음은 그게 아니라는 것이 눈에 보이더군. 전에는 그냥 관심가는 남자였다면, 이제 눈을 떼기 어려운 존재인 모양이야. 그런데… 오히려 그래서 더 자기 마음을 감추고 드러내지 않으려 하고 있어.”
 
“왜요? 제가 그렇게 매몰차게 한건 아니라고 생각하는데요.”
 
“그야… 자네가 문제가 아니라 지인이가 문제겠지. 그 아이에게는 자네에 대한 관심 이상으로 지인이를 언니처럼 생각하고 친하게 지내고 있어. 그냥 가벼운 느낌이었다면 가볍게 생각할 수도 있었겠지. 근데, 진지하게 자네를 의식하기 시작하니… 지인이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던 모양이야. 그래서… 전보다 더 위축되어 버렸지. 내가 이번에도 너무 앞서간 모양이야. 도리어 역효과라니… 저래서야 저 아이가 홀로 남아서 잘 살아갈 수 있을지 거 걱정스럽게 되버렸구만.”
 
조금은 납득이 되는 것 같기도 하는 이야기다. 처남댁은 정말로 그녀와 친밀하게 자매처럼 지내며 여러모로 도움을 주는 모양이었다. 그런데… 그런 처남댁을 의식하지 않고 나에게 들이대는 건 그런 소심한 처자에게 아무래도 무리란 생각이 든다. 엄청난 배신이라고 스스로 생각하겠지. 이런… 내가 정말로 상황을 더 안좋게 만든건가? 그런 나의 표정을 보고 할머니가 말했다.
 
“자네가 자책할 일은 아니야. 뭘 잘못한 것이 있어야지… 하지만, 조금 안타깝기는 하구먼. 이제는 나도 다른 도리가 없겠지. 그저… 그 아이를 믿고 스스로 헤쳐나가기를 기대할 뿐. 더는 자네에게도 그런 부담스러운 강요를 하진 않겠네. 그래서 말인데… 대신에 다른 부탁 한가지만 해도 되겠나? 이건 저번 부탁처럼 그렇게 무리한 내역은 아니네. 그냥… 조금 심부름만 해주면 되는거야.”
 
“뭐, 그런거라면 뭐든 도와드려야죠.”
 
그녀는 나의 말에 웃으며 내가 할일을 설명했다. 의외로…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그리고, 꼭 해줘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그녀에게 승낙을 했다. 그러자 그녀도 웃으며 말했다.
 
“그래. 고마우이… 이제야 내가 좀 마음을 놓을 수 있겠구먼. 우연이긴 했지만, 자네 가족들은 만난 건 참 행운이었어. 고마우이… 정말 고마우이…”
 
그녀는 내 손을 잡고 몇번이고 그렇게 말했다. 그것이… 그녀와의 마지막 기억이었다. 그 일이 있고 며칠 후 그녀는 갑자기 숨을 거뒀다. 다행히도 나디아는 친어머니 때와는 달리 곁에서 임종을 지켜 볼 수는 있었다고 한다. 그렇게 할머니는 세상을 떠나셨고… 남겨진 사람들은 고인에 대한 마지막 예의를 준비하는 중이다. 나는 회상을 멈추고 다시 한번 나디아 모녀를 돌아보았다. 역시나 담담해 보였지만 내게는 왠지 슬픔을 억누르고 있는 것이 보이는 듯 하였다. 
 
나는 그런 그녀를 보며, 전혀 남이라고 할 수는 없는 사람을 위해서 뭔가 해줄 수 없다는 사실에 조금은 무력감을 느꼈다. 그래서… 왠지 모르게 후끈하게 기억에 남는 자동차 조수석에 탔던 그녀의 모습을 지우려 애써 노력했다.그렇게 손님없는 장례는 몇일 후 발인을 마쳤다. 우리 가족은 그녀를 도와주며 장례의 마지막까지 임했다. 장례를 마치고 도와준 사람들에게 감사하는 나디아는 나를 보면서도 고맙다고 말했지만 딱히 큰 의미를 담지는 않은 것 같았다. 그건… 왠지 모르게 쓸쓸한 기분이었다.
 
그리고 몇일이 지났다. 다시 찾은 시골에서 나는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일상을 보냈다. 솔직히… 조금 궁금하기는 했다. 그녀가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에 대해서. 하지만 그걸 처남댁에게 먼저 물어볼 수는 없었다. 하지만, 그런 내 마음을 알았는지, 그녀가 먼저 이야기를 꺼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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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부

“집을 내놨다고 하더라구요. 떠나려는 모양이네요.”

“아아… 그런가요.”

담담하게 대답했지만… 왠지 모르게 가슴에서 아릿한 기분이 드는 것을 느꼈다. 지금 내가 사랑하는 사람의 입에서 나온 다른 여자에대한 말에 그런 반응을 보이는 지조없는 내가 조금 한심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감정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었다. 왠지 모르게 그녀에 대해서는 첫사랑에 대한 기억 같은 순수한 느낌으로 안타까움이 계속 들었다. 하지만… 나는 애써 내색을 하지는 않았고 그녀는 전달을 마치고 나에게 다가와 내 곁에 앉아서 말했다.

“그러고 보니… 한동안 장례에 정신없느라 이렇게 조금 여유를 가지고 보는 것도 오랜만이네요. 그쪽 여자들이 나름 만족스럽게 해드리고 있겠지만, 그래도 저한테 너무 소원하신 거 아닌가 몰라요.”

“그럴리가요. 지금 제가 제일 사랑하는 사람이 곁에 있는데… 왠지 당장이라도 하고 싶은 기분인데, 잠시 욕실로?”

거짓말은 아니었다. 왠지 내 곁에 밀착한 그녀의 몸에 풍기는 땀냄새와 부엌의 냄새가 묘하게 사람을 자극하는 것도 사실이니깐. 그리고 다른 생각을 잊는 것에는 지금 이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겠지… 나는 슬그머니 그녀의 치마에 손을 넣으려 하였다. 그런데 그녀가 웃으며 내 손을 잡고 제지했다.

“지금은 안돼요. 아이들이 아직 놀고 있잖아요. 재운 다음에요… 그리고, 욕실도 좋기는 하지만 가끔은 색다른 곳은 어떠세요? 제가 근처에 좋은 곳을 하나 발견했는데요.”

“응? 어디?”

“조금 떨어진 곳에 조그만 계곡이 하나 있어요. 깊지 않고 물살도 쎄지 않아서 아이들 데리고 종종 물놀이 갔던 곳인데, 밤중에라면 아무도 없을꺼예요. 어떠세요? 모처럼이고 아직 날도 더우니 조금 시원하게 그곳에서 라면…”

거절할 이유는 없었다. 나는 그녀의 몸에 드리워진 열기에 매료되는 것을 느끼면서도 애써 참고 저녁을 들었다. 그리고 아이들을 재우러 그녀가 방에 들어간 사이에 나는 산책을 한다고 하고 그 계곡으로 향했다. 그녀는 아이를 재우고 곧 따라오겠다고 말했다. 달이 없는 어두운 시골 길이지만 헤매지 않고 도착했다. 시원한 물소리와 연못처럼 고인 물이 기분을 개운하게 만들어 줬다. 바닥에 깔린 모래 덕분에 들어가는 것에 그리 불편하지도 않고, 물도 낮의 열기 덕분인지 차가울 정도는 아니었다.

나는 조금 미소지었다. 의외네… 행위는 야성적이어도 이런 건 좀 부끄러워 하는 줄 알았는데 먼저 제안을 해오다니… 야외에서 그런 행위에 익숙해진 그녀의 변모된 모습에 조금 므흣한 기분이 들었다. 처남에게는 해주지 않았던 것이겠지? 시원한 물을 보니 먼저 벗고 들어가 몸을 담그고 싶었지만, 그래도 조금 기다리기로 했다. 이렇게 밤중에 보는 계곡의 풍경도 그리 나쁘지 않았으니깐. 그때… 뒤에서 인기척이 들렸고, 나는 고개를 돌려 말했다.

“조금 늦었네요. 좋은 곳인데요? 어서 들어와요.”

그런데… 반응이 조금 이상했다.

“어… 저… 저기… 당신은?”

목소리도, 그녀가 아니었다. 나 역시 당황했다. 그리고 그때쯤에 구름에 가린 달이 드러나면서 조금 주변이 훤해졌다. 그리고 달빛아래서 내 시야에 들어온 것은 처남댁이 아니라… 나디아였다. 나는 급 당황할 수 밖에 없었다.

“나디아씨? 당신이 여기는 어째서…”

“아, 저기… 저는 언니가 오늘 같이 보자고 해서요. 종종 여기서 미역감으면서 수다떨었던 적이 있었거든요. 근데… 당신이 왜?”

우리는 당황하여 서로 마주보았다. 이거… 뭔가 상황이 미묘하네. 하지만, 역시 이런 건 여자가 더 빠른 것 같았다. 그녀가 잠시 생각을 하더니 뭔가 납득했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나에게 다가오더니 내 곁에 앉았다.

“지인 언니가… 조금 장난을 친 모양이네요. 저와 당신을 만나게 해주려구요.”

“네? 집사람이요? 하지만… 왜? 여기서 저와 나디아씨를…”

나의 말에 나디아는 조금 담담하게, 그리고 약간 처연하게 말했다.

“아마도… 돌아가신 어머니와 언니가 무슨 합의를 하신 모양이에요. 돌아가시기 직전에 어머니가 언니랑 따로 보고선 무슨 얘기를 하신 것 같았어요. 아마도… 대화의 주제는 지난번과 같았겠죠. 당신의 사후에 저를 맡길 사람을 찾으신 거겠죠. 무슨 내용이 오갔는지는 모르겠지만… 언니라면 아마도 그런 어머니의 간절한 부탁을 거절하지 못했으리라 생각돼요.”

“잠깐만요. 거절하지 못했다는 건… 조금 미묘한 의미라고 생각하는데요? 그건 아마도… 다소 말하기 민망한 것도 포함되는 이야기라 생각되는데요…”

“그렇겠죠. 굳이 그렇게 둘러 말하실 필요도 없잖아요. 섹스죠. 당신에게서 거절당했다고 하니 이번에는 의사결정권을 쥐었다고 생각한 언니에게 직접 부탁하신 거예요. 저를 거둬달라는 부탁을요. 그리고 언니는 그것에 동의한 거구요. 지금 우리가 여기 와서 만났다는 사실이 그 증거죠. 당황하지 마세요. 저도 뭐라고 말해야 하지 모르겠어요. 아무리 어머니가 간곡하게 부탁하셨다고는 해도, 자기가 사랑하는 남자에게 저를 안으라고 하다니…”

왠지 모르게, 그녀는 처남댁이 자신의 마음을 억누르고 나에 대한 걸 양보했다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하지만… 나는 조금 그것이 미묘하게 받아들여 졌다. 전에 그녀가 했던 선언… 같은 수준에서 놀아주겠다고 한 말이 가슴에 걸렸다. 아마도… 전혀 무관한 이야기는 아니라고 봐야겠지? 그러면서 나는 나디아를 보았다. 그녀는 발을 물가에 담그고 조금씩 차면서 담담한 표정을 지어보이고 있었다. 아마도, 그녀의 입장에서 보면 지금의 상황 역시, 자신의 의사와 무관하게 다른 남자에게 넘어가는 느낌인 걸까?

“당신은… 그래도 괜찮은건가요? 지금 모습을 보면 정색을 하지는 않는 것 같은데요?”

“전에도 말했다시피… 이방인인 제가 머물 수 있는 곳과 선택할 수 있는 것은 한정되어 있죠. 그리고 그것들도 제 의지를 담아서 고르기는 어려운 것들이 많았어요. 지금에 와서 무슨 억울하다는 말을 하겠어요. 그것도 제가 선택한 제 인생인데요. 제 의지와 무관하게 저의 거취에 대한 합의가 끝났다면… 그걸 따르는 것만이 제가 할수 있는 유일한 일이죠. 그것에 대해 딱히 불만이나 억울함은 없어요. 그럴려고 해도… 그런 결정을 한 사람들이 제게 너무나 소중한 사람들이거든요. 미워할 수는 없어요. 하지만… 이번에는 그렇게 의지없이 수용하기에는 조금 상황이 난감하게 되었네요.”

“응? 어째서요?’

“그야… 이전에 당신은 이미 저를 단호하게 거절하였잖아요. 거절당한 남자에게 매달리는 것은 무리라고 생각해요. 제 마음과 무관하게 그런 민폐를 끼칠수는 없겠죠. 당신이 저를 거절하신 그 마음… 존중해요. 지인 언니를 위해서나, 저를 위해서나 현명한 결정이라 생각해요. 그러니… 두분의 밀어주기와 무관하게, 이번 일은 없는 일로 해야겠군요.”

그녀의 말에서, 왠지 모르게 미련 같은 것이 보였다. 거절당했다는 것을 정확하게 지적하지만… 그것에 대해 원망하는 느낌은 없었다. 오히려 그것 덕분에 감사한다는 것 같은 느낌… 그러면서 내 가슴속에 그녀에 대한 모습이 다시 아릿하게 자극했다. 어두운 밤, 계곡에 물가에 앉은 금발머리의 하얀 피부의 그녀는 정말로 이야기 속에 나오는 엘프같았다. 그런 외모 뿐만이 아니라 그녀가 보여주는 답답한 자신의 운명에 대한 체념이 나를 동요하게 만들었다. 그때… 그녀가 자리에서 일어서며 말했다.

“그래도… 떠나기 전에 뵐 수 있어서 다행이네요. 먼저 일어설께요.”

그때 나는 머리속에서 처남댁이 말한 것이 떠올랐다. 아아… 집을 내놨다고 했지. 아마도 행선지는 그녀의 고향? 정말로 체념한 것인 가? 그 정로도 자포자기 할 만큼? 나는 순간 아릿한 것을 넘어 고통스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건 아니다. 아무리 그래도… 이렇게 보낼 수는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서며 그녀의 손목을 붙들었다.

“잠시만요!”

“어, 갑자기 그렇게 붙드시면… 어어어!!! 꺄아아악!!!”

‘풍덩!’ 상쾌한 물소리와 함께… 우리는 계곡의 물속으로 떨어졌다. 엉거주춤 일어서며 그녀의 팔목을 잡았던 나는 중심이 무너져서 뒤로 자빠졌고, 내 손에 팔목이 붙들린 나디아도 덕분에 같이 떨어져 버린 것이다. 무슨, 로맨틴 코메디에서나 나올법한 슬랩스틱 코메디지만 나는 웃을 상황이 아니었다. 나는 흠뻑 적어서 물가에 주저앉은 그녀를 보면서 말했다.

“가지 말아요.”

“네? 하지만… 그럴수는… 전에 분명히 저를 거절하신다고…”

“그래도 가지 말아요. 이렇게 보낼 수는 없어요. 이유는 설명 못해요. 그 사람을 사랑해요.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당신이 가는 걸 그냥 바라만 보고 있을 수도 없어요. 당신이 그냥 여기에 있어줬으면 좋겠어요. 저는… 여전히 비겁한 사람입니다. 그러니, 먼저 얘기하지는 않을꺼예요. 하지만… 그건 당신도 마찬가지죠. 당신도… 자신의 마음을 먼저 드러내는 사람이 못되겠죠? 항상 타의에 의해 움직일 수 밖에 없는 사람이죠. 하지만… 그래서는 안된다고 생각해요. 이제 스스로 자신의 인생을 결정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전에 거절한 것에 그런 마음도 담겨져 있었어요. 도와줄 수는 있어요. 하지만… 그것은 스스로의 의지로 결정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이제 홀로 남겨져서 딸의 버팀목이 되어야 하는 당신은 그래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러니, 이제 비겁하지만 당신에게 요구하겠어요. 당신의 진심을 담아… 저에게 고백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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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부

나의 말에 그녀가 당황했다.

“네? 저보고… 고백을 하라구요?”

“네, 당신의 진심을 들려주세요. 할머니나 집사람의 의지와 무관하게… 당신이 저에 대해서 생각하는 마음을 말이죠. 그것에 대해서 수용하겠습니다. 어떤 말이든 좋아요. 내가 사실은 역겨운 놈이었다면 그걸 말해줘도 좋아요. 뭐든, 당신의 진실된 의사를 들려주세요. 그것으로 제 마음도 결정하겠습니다. 들려주세요. 저를… 어떻게 생각하세요?”

그녀는 한참 당황한 듯이 보였다. 그러더니 고개를 숙이고 뭔가 억눌린 것을 표출하듯이 참았다가 말했다.

“이 한심한 남자 같으니… 여자보고 먼저 고백이나 하라고 하고… 바람둥이 주제에!!!”

아아… 부인하기가 어렵다. 그리고 그녀가 울부짖듯이 소리치며 말했다.

“하지만, 좋아해요! 당신이 좋아요. 그것이 내 진심이에요. 이러면 됐어요? 이렇게 해야 직성이 풀려요? 읍!!! 으읍!!!”

나는 그녀의 입을 키스로 막았다. 저항은 없었다. 팔을 감아 내 목에 매달린 그녀의 입술은 달콤했고 체온은 따듯했다. 나는 물속에서 하반신을 담그고 그녀를 안고 깊게 키스했고, 그녀도… 나를 휘감듯이 매달렸다. 그리고… 한참 후에야 입술이 떨어졌다. 그녀는 조금 숨이 찬듯이 헐떡거렸다. 그리고 우리는 마치 시간에 쫓기듯 옷을 벗어던졌다. 먼저 벗어던진 나는 달빛아래 드러난 그녀의 몸을 감상했다. 그녀는 정말로… 신화속에 나오는 요정의 여신님 같았다.

하얀 피부와 물에 젖은 금발. 그 블론드 헤어는 하단에도 같은 색깔이었다. 그러면서도 아버지의 피가 섞여서인지 서양인 특유의 잡티가 많은 피부가 아닌 매끈하고 고운 피부를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체격도 일반적인 서양 여자랑은 달리 조그마한 소녀 같은 느낌이었다. 외모로 나이를 판정하기 어려운 서양인의 외모 덕분인지, 우리 아이만한 딸을 둔 엄마이지만 내게는 왠지 10대 소녀처럼 보였다. 옷을 벗어 던진 그녀는 조금 부끄러운지 가슴과 비부를 가렸다.

하지만 달빛 아래에 그런 나신을 가린 그녀의 모습은 오히려 나를 더 자극했다. 나는 마치 여신을 범하는 악마 같은 기분을 느끼며 그녀의 두 손목을 잡아 한손으로 쥐고 그녀를 넘어뜨려 물가의 모래 위에 눕혔다. 그러면서… 찬찬히 그녀를 감상했다. 소녀같지만 도담한 가슴와 날씬한 허리와 분홍색 비부… 마치 조각상 같은 그녀의 미모가 나의 욕망을 자극했다. 그리고 나는 부끄러워 하는 그녀의 입술에 키스하며 입을 막고 다른 한손으로 그녀의 몸을 터치했다.

“하윽…”

그녀의 입에서 억눌린 신음이 나왔다. 색다른 기분이다. 이국적인 그녀의 몸을 정복하는 내 자신에게 희열이 느껴졌다. 그건 대단히 배덕적인 기분이었다. 정말로 경험없는 처녀를 범하는 것 같은 기분… 순진한 얼굴을 했지만 몸은 왠지 모르게 맹수를 길들이는 기분을 느끼게 해준 처남댁과는 다른 의미를 주었다. 그것이 사냥이라면, 이것은 약탈이라는 느낌인가? 그런 생각을 하자 왠지 더 자극되는 것을 느끼며 내 물건이 한도 끝도 없이 팽창했다. 그래서 나는 그것을 망설이지 않고 그녀에게 진입했다.

“아아아아앙!!!”

그녀가 비명을 내지르면서 내 어께를 깨물었고 팔로 목을 감아왔다. 어두운 밤의 계곡에서 그녀는 자지러지며 내게 안겨들었고 그녀가 물어버린 내 어께는 왠지 모르게 아픔보다는 자극을 더 강하게 만들었다. 그래서, 나는 그녀를 들어 앉혀서 더 깊숙히 그녀의 안으로 들어갔고, 그녀는 깨물던 입을 벌려 비명을 질렀다. 그리고 우리는 끝을 모를 한계를 향해 달려갔다. 그 끝에 뭐가 있는지는 이제 상관이 없었다. 지금 중요한 건 오로지 그녀를 안는 것 뿐이었다. 그리고… 우리는 절정을 맞았다.

“아파요…”

그녀는 오랜만에 했던 탓인지 비부에 아픔을 호소했고, 나는 내 품에 안긴 그녀의 비부에 손으로 물을 받아 뿌려주었다. 그런 행동에 그녀는 조금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이 웃었다. 정사를 마친 여운을 감상하며 나는 내게 등을 기대고 안긴 그녀를 품에 안았다. 가슴 속에는 그녀는 가졌다는 사실에 의기양양한 마음이 들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앞으로의 일들이 걱정스러워 지기 시작했다. 이제부터 우리는 어떻게 되는 걸까? 일단은… 그녀의 이사부터 중단시키는 것이 맞겠지. 그런데…

“이사요? 아… 맞아요. 그 집은 내놨어요. 대신에… 지인 언니 별채로 세 들어가기로 했는데요?”

“엥? 우리 집이요? 아니 나는 떠난다기에 무슨 고향으로 가는 줄 알았는데…”

“그럴수는 없어요. 여기 과수원이랑 밭도 지켜야 하는데 그걸 남겨두고 가는 건 좀… 그래도 우리 모녀만 살기에는 그 집은 너무 외져서 쓸쓸하고 무섭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마침 언니가 별채를 안쓰니 같이 지내자고 하시더라구요. 그래서… 거기로 가기로 했던건데요?”

와우… 대단해 내 사랑… 세경이보다 하수가 아니었어. 사람을 이렇게 낚으시나? 그리고 우리 집 별채라… 우와, 이건 정말로… 세경이가 그린 그림에 대한 이쪽의 카운터 어택이네. 이런 상황에 대해서… 나는 감당할 수 있으려나? 그리고 이 순진무구한 외국인 처자는? 나는 깊은 한숨을 쉬었다. 하지만… 일단은 저질러진 일이다. 이제는 인정해야겠지? 내 가슴에 머리를 기대고 의지하는 이 사람에 대해서 진심을 가지고 대해야 할것이다. 그순간… 나는 당황스러운 것을 발견했다.

“저기… 저희 옷… 전부 떠내려 가버렸나 본데요?”

“에엑!!! 어떻게 해요?”

너무 급해서 벗어 던진 옷을 뭍에 올릴 생각도 안했구나. 떠내려 가버린 옷은 어디론가 사라지고 없었다. 아무리 인기척이 드문 곳이라도 한밤중에 알몸의 남녀만 남았다는 거네. 나는 당황하는 나디아를 안고 일어섰다.

“어쩔수 없죠. 일단은… 이렇게 가야죠. 그래도 나디아씨 댁이 더 가깝죠? 거기로 가죠.”

“이… 이렇게요? 어휴… 네 할수없죠.”

그리고 우리는 알몸으로 그녀의 집으로 향했다. 어두운 밤중에 그녀를 안아들고 가는 길이 좀 창피했다. 그녀는 누가 볼까 자신의 알몸을 드러내는 것을 두려워하며 내게 파고들듯이 안겼다. 잠시 후… 그 민망함은 그녀의 집에 도착하고 나서야 끝날 수 있었다. 아이는 아직도 세상 모르고 잠들어 있었다. 그녀는 나를 집으로 들어오라고 말하며 내가 입을 옷가지를 찾았다. 그런데… 옷장을 뒤지는 그녀의 뒷태가 조금… 끌렸다. 아아… 역시 한번 하고 나면… 어쩔수 없나보다.

“어? 저… 저기 갑자기 그러시면… 아이가 깨요. 안돼요…”

“그러면… 소리를 죽이세요.”

“그런 말도 안돼는… 하윽!!! 아아앙!!!”

나는, 물에 젖고 밤공기에 젖어 더운 날씨에도 조금 서늘한 그녀의 몸을 안았다. 그녀의 집 안방에서 내게 안긴 그녀는 간드러진 숨을 토해내면서도 애써 소리를 지르지 않기 위해 필사적으로 자기 입을 틀어막았다. 나는 그런 그녀의, 진심을 말하기는 했지만 여전히 수동적인 태도에 묘한 갭을 느끼며 그녀의 몸을 만끽했다. 그리고… 새벽녁이 되어서야 나는 그녀를 이불에 뉘여 자라고 키스해준 다음에 그녀의 집에서 나올 수 있었다. 집에 돌아오니… 그녀는 정원의 의자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좋은 시간… 되셨어요?”

“아아… 하지만, 좀 과한 장난이었어요.”

“죄송해요. 하지만… 그렇게 두고 볼수는 없었어요. 그리고 당신을 믿고 사랑하니깐… 그 정도는 괜찮을꺼라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제가 잘못했다는 건 변명할 여지가 없죠. 그것에 대해서는 화내셔도 괜찮아요. 달게 받겠어요.”

저렇게 말하는 데 정말로 화낼 수가 없잖아. 결국, 나는 적당히 넘어가기로 했다. 장난스러운 느낌으로… 

“그렇군요. 그러면… 벌을 줘야겠네요. 남편을 기만한 아내에게 가장 좋은 벌은… 죽을 것 같은 기분을 느끼게 해주는 것이겠죠?”

그리고 나는 그녀에게 다가가 그녀의 비부에 손을 넣고 다른 손으로 가슴을 만졌다. 그녀가 나의 애무에 반응했다.

“하앙… 조금은 몸 생각도 하셔야죠. 오자마자 그러시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