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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부

세경이의 말이 사실이라는 것을 확인하는 것은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그날은 평소와는 달리 조금 늦게 내려온 날이었다. 갑작스러운 회사일로 금요일 밤 늦게 야근을 하고 늦어져서 결국 그날 출발을 하진 못하고 토요일 아침에 세경이의 배웅을 받으며 그녀가 있는 집으로 향했다. 물론, 조금 늦게 간다고 연락을 해두었으니 걱정하지는 않을 것이다. 나는 다만 좋은 눈요기 거리였던 금요일 밤의 감상을 놓친 것을 조금 아쉬워하며 그곳으로 향했다. 도착했을 때는 정오였다.
 
조금 늦었지만 전화로 알려준 시간보다는 일찍 도착했다. 나는 점심을 같이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하며 집으로 향했는데, 집에는 생각하지 못했던 손님들이 있었다. 마당에 놓인 평상에서 조금 한가하니 수다를 늘어놓고 있었던 듯 보이는 사람들… 한 사람은 연세가 조금 있어보이는 할머니였고, 다른 한 사람은... 조금 놀랍게도 외국인 여성이었다. 머리 수건으로 두른 금발에 벽안을 가진 이질적인 외모, 하지만 옷은 다른 우리나라 시골 처자들과 다를바 없는 몸빼 바지 작업복을 입어 어색해 보였다. 조금 당황스러웠다.
 
그때 할머니가 나를 보더니 웃으며 일어서며 처남댁에게 말했다.
 
“호호호… 이거 신랑이 왔구먼. 이제 우리는 이만 일어나야겠네.”
 
“아, 네… 조심해서 들어가세요.”
 
나는 할머니의 말의 한 단어 덕분에 조금 더 당황스러웠다. 신랑? 왠지 처남댁도 그 할머니의 말에 당황한 듯 보였다. 할머니는 평상에서 일어서서 나를 향해 오더니 나를 한번 보면서 말했다.
 
“색시가 아주 참해. 근데 신랑도 보기 좋구먼. 우리 아들 놈이 살아 있으면 거기 신랑 같았을텐데…”
 
그녀의 말에 곁에 따라온 외국인 처자가 말했다. 유창한 한국말로…
 
“어머님, 그 이는 그때도 이분보다 나이가 훨씬 더 많았어요. 죄송해요. 어머님이 괜한 말씀을…”
 
그녀는 그렇게 말하며 멀리서 그녀를 향해 달려오는, 우리 아이들과 저 멀리서 놀고 있던 아이를 안아들었다. 엄마와 마찬가지로 금발에 벽안의 꼬마 아가씨였다. 나는 그들의 정체에 대해서 잘 알지 못해 뭐라고 해야 할지 몰라 그냥 미소지으며 인사했다. 그러자 할머니가 말했다.
 
“색시한테 잘해줘. 젊은 색시는 혼자 두는 거 아니야. 애들은 뭐하면 내가 맡아줄 테니 너무 신경쓰지 말고…”
 
그 말에도 나는 뭐라고 말해야 할지 몰랐다. 그저, 이제는 완전히 얼굴이 새빨개져서 할말을 잃은 처남댁을 보며 쓴웃음을 지을 뿐이었다. 그래서 그냥 웃으며 감사하다고만 말했고, 인상 좋아 보이는 할머니는 그 외국인 처자와 같이 집을 떠났다. 하지만 나는 왠지 모르게 조금 멀어져 가는 그 외국인 여성에 독특한 잔향에 여운이 남는 기분이 들었다. 하지만… 너무 오래 바라보고 있으면 실례고 오해 사겠지? 나는 고개를 돌려 처남댁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물었다.
 
“신랑… 이라는데요?”
 
“으아아아악!!! 죄… 죄송해요.”
 
그녀는 고개를 푹 숙이고 정말로 무슨 대역죄라도 지은 사람처럼 고개를 숙이고 사죄했다. 잠시 후… 점심 식사로 나온 콩국수가 평상 위에 차려지고 그녀는 내가 뭐라고 하지도 않았는데 정말로 얼굴이 시뻘개져서 나에게 해명을 하기 시작했다.
 
“걸어서 15분 정도 거리에 과수원집 할머니세요. 인적이 드문 곳이라 아무도 안사는 줄 알았는데 그래도 제일 가까운 이웃이 그 집이더라구요. 전에 떡을 한번 돌리러 갔는데, 그 집도 이웃이 반가우셨는지 저희들을 반겨 주시더라구요. 마침, 그 집에도 태현이랑 승아와 또래인 아이가 있는데 주변에 아이들이 없어서 아이가 심심해하는 모양이더라구요. 그래서, 먼저 거기서 아이들이 같이 어울리게 하며 안되겠냐고 해서 그러라고 했어요. 그러면서 서로 친해져서 종종 오가다가 만나서 차나 한잔 하고, 종종 외출할 일이 있으면 아이들을 맡기는 그런 사이가 됐어요.”
 
“아, 그렇군요. 나중에 그 집 어른한테 따로 인사드리러 가야겠네요.”
 
“아… 그게, 좀 사정이… 그 집에 바깥 어른이 안계셔요. 그래서 고모부가 가시면 여자들만 있어서 좀 그럴지도…”
 
“네? 아… 그러고 보니 아까 전에 아들이 살아있으면 이랬던가요? 보아하니 시어머니와 외국인 며느리인 모양인데, 남편이랑 사별한 모양이죠?”
 
“네… 그런가 보더라구요. 그 동생 이름은 나디아에요. 한국에 시집와서 아이 낳고 살고 있는데 남편이 갑자기 간암으로 세상을 떠났다고 하더라구요. 근데 자세히 물어보진 못했지만 무슨 연유에서인지 자기 나라에 돌아가지 않고 그냥 거기서 시어머니랑 같이 살더라구요. 시어머니가 의외로 좋은 분이신가 봐요. 그래서 두 고부가 종종 저렇게 놀러오셔요. 근데… 그렇게 친해져서 얘기를 나누다 보니깐 조금… 설명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어서요.”
 
나는 이제서야 나온 본론에 그녀가 민망해하는 것을 보며 먼저 말했다.
 
“아… 이제 이해가 가네요. 아무래도 고모부와 처남댁이라고 하면 주변에 좀 말하기가 어렵겠죠. 다른 곳도 아니고 이런 시골에서라면 사람은 드물어도 소문은 금방 퍼질테고… 그래서 그러셨군요. 저를… 남편이라고…”
 
“죄… 죄송해요. 정말로 곤란하게 해드릴 마음은 전혀…”
 
그녀는 정말로 당황하여 손사래를 치며 나에게 변명했다. 그런 그녀를 보며 나는 싱긋 웃으며 말했다.
 
“괜찮아요.”
 
“네?”
 
“괜찮다고요. 그렇게 말하지 않으면 대체 어떻게 설명하려구요… 그냥 그렇게 말하세요. 어차피 태현이도 처남댁 자식처럼 돌봐주고 계시잖아요. 그러니… 말을 맞춰드리는 것이 좋겠군요.”
 
“아니, 아무리 그래도… 그건 좀…”
 
“물론 밖에서만요.”
 
“네? 아… 네. 그렇죠. 네…”
 
나는 웃으며 국수를 들었고, 그녀는 여전히 얼굴이 시뻘갰다. 하지만 뭐랄까? 나는 왠지 그녀가 조금 실망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정확하게 밖에서만이라고 했던 부분에서… 그리고 다른 한편으로 살짝 미묘한 생각이 들었다. 내가 남편이라고 말한 거… 정말로 소문이 두려워서인가? 어쩌면 조금 과시하고 싶었던 건 아니었을까? 나는 오늘 보았던 그 외국인 처자의 모습을 떠올렸다. 이런 인적 드문 시골에 어울리지 않는 미모… 동생이라고는 부르고 있지만 의외로 나의 존재를 빌어 우월함을 느끼고 싶었던 걸까?
 
답을 내리기는 쉽지 않다. 하지만… 이게 아마도 세경이가 말한 반응의 일환이라는 것은 맞는 모양이었다. 그러면서, 문득 떠올린 오늘 처음 만난 외국인 과부의 모습이 떠올랐다. 슬쩍 흩어봤던 뒷모습에 외국인 특유의 이국적인 체취… 조금 후끈해지는 기분이 든다. 나도 참 지조가 없네. 서울에 원룸에 그런 쪽으로 완벽하게 봉사하는 여자를 두고, 시골에 따로 호사거리를 두고 느긋하게 다가가면서도, 우연히 스쳐지나간 여자한테 동하는 것을 느끼다니… 나는 콩국수를 먹으며 마음을 가라앉히려 노력했다.
 
그리고, 처남댁은 나의 그런 표정을 보며 여전히 쑥스러운 표정으로 내 곁에 앉아 있었다. 슬쩍 그녀를 보았다. 여전히 일주일만에 보는 글래머한 몸매가 보기 좋다. 시골 생활에 익숙해져 가며 점점 더 가무잡잡해지는 피부도 그렇고… 역시, 그날의 기억은 지워지지 않는다. 그녀는 나에게 꽤나 의식되는 상대다. 남들에게 말할 수는 없지만. 그리고 오늘은 조금 예상치 못한 그녀의 반응을 봤다. 세경이 말처럼… 정말로 조금씩 변화하는 건가? 멀쩡히 살아 어딘가 있을 남편을 두고선? 미소를 드리우며 조금 재밌는 생각이 들었다.
 
어차피 이렇게 된거… 오늘은 조금 짓궂은 장난을 쳐볼까? 나는 식사를 들고 나서 읍내로 장을 보러 가자고 그녀에게 말했다.
 
“여보, 여기 고기는 목살로 하지.”
 
“아, 저… 저기…”
 
“목살이랑 돼지 껍데기도 좀 같이 주세요. 계산은 집사람이 할겁니다.”
 
“가족끼리 파티하시나 봐요. 부인이 미인이시네요. 듬뿍 썰어드리죠.”
 
정육점 주인 아저씨의 말에 그녀는 더 몸둘바를 몰라했다. 다시 한번 얼굴이 새빨개졌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그 사실을 부정하지는 않았다. 나는 고기를 받아들고 장바구니에 넣은 다음 그녀의 손목을 붙들었다. 그녀가 움찔하는 것이 느껴졌다. 이 반응 재밌네. 그래서 나는 일부러 더 그녀를 끌어당겨 팔짱을 끼게 하고선 그녀의 귀에 대고 속삭였다.
 
“이웃만 조심해선 안돼요. 시골에서는 시장 사람들도 소문은 빠르죠. 어색하게 굴면 의심할거 예요. 아내 연기 조금 몰입해주세요.” 
 
“하… 하지만, 그래도 이건 좀… 으흡!!!”
 
나는 그녀의 입을 막아버렸다. 입술로 막은건 아니고… 시장에서 파는 시식용 파전으로. 나는 먹기 좋게 이쑤시개에 꽂힌 그걸 들어 그녀의 입에 넣어줬고 나도 한입 집어 먹으며 가게 주인에게 말했다.
 
“이거 맛있네요. 이거랑 저거 싸주시고요… 아내는 굴파전을 좋아하니 초고추장도 같이 넣어주세요.”
 
아내라는 말에 그녀는 다시 펑! 놀려먹는 재미가 유쾌하다. 하지만, 그렇게 오래가지 않았다. 그런 재미는 그녀가 저항해야 제 맛인데… 그녀는 이내 저항을 멈췄다. 내가 잡은 손을 꼭 쥐고선 팔에 몸을 밀착하며 내가 주문한대로 아내 역할에 몰입하기 시작했으니깐. 조금 시시해졌네. 하지만, 대신에 다른 즐거움도 있었다. 내 팔에 느껴지는 가슴의 감촉… 나쁘지 않네. 살짝 부벼서 당황스럽게 해줄까 하려다 그만두었다. 그렇게 장보기를 마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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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부

즐거운 저녁 식사를 마치고 나는 아이들을 재우러 간 처남댁을 뒤로하고 2층으로 올라갔다. 2층 방에서 내 방에는 침대가 따로 놓여 있었다. 이미 말했다시피 나와 그녀의 경계는 1층과 2층 사이. 암묵적으로 우리는 서로의 영역으로 내려가지 않고선 외간 남녀가 서로 필요한 일 외에는 조우하지 않는 것이 룰이다. 물론, 요새는 그 초심이 서서히 무너져 가고는 있지만… 나의 영역에 와서 나는 잠시 책을 읽다가 잠이 들었다. 은근히 초여름 밤이 더웠다. 그러면서 문득 꿈을 꾸었던 것 같다.

아이러니하게도 꿈속에서 나온 것은 전처였다. 내가 아닌 다른 곳을 바라보고 있던 모습… 사람을 참 가슴아프게 했던 그 모습이 꿈속에서 나왔던 것 같다. 악몽이라고 하기는 밋밋하지만, 의외로 스트레스 받는 일이었던 모양이다. 꿈속에서는 물론 현실에서도 상당히 힘겨운 기분이 들었으니깐. 그래서 한참을 뭔가 끙끙 앓았던 것 같다. 누군가 나를 깨우는 것을 느꼈고 나는 잠에서 깨어났다. 

“괜찮으세요?”

당연히 처남댁이었다. 그녀는 걱정스러운 얼굴로 나를 보고 있었다. 나는 내 상태를 보았다. 땀으로 흠뻑 젖어 있다. 망할… 엉망이네. 그녀는 그런 나를 보면서 말했다.

“죄송해요.”

“뭐가요?”

“여기서 주무시게 해서요. 원래 2층이 더 더워요. 데크가 있어도 대낮에 지붕에 담긴 열기 때문인지 밤에도 여기는 덥더라구요. 특히나 오늘처럼 날씨가 좋았던 날에는 더요. 제가 더위에 민감해서 제일 잘 알아요. 근데도 고모부를 여기서 주무시게 해서 죄송해요. 끙끙 앓는 소리가 들려서 올라왔는데, 올라오길 잘했네요.”

더운 건 사실이었다. 하지만 근본적인 이유는 따로 있었다. 그리고 그 이유는 지금 내 눈앞에 나를 걱정하는 사람을 보니 사라져 버렸다. 하지만… 그녀의 그런 눈빛은 싫지 않았다. 어두운 여름 밤에 땀으로 흠뻑 젖은 상태로 어둠 속에서 보는 여인이라… 상황도 그리 싫지 않네. 묘하게 선정적이다. 하지만 밤에는 잠을 자야지. 나는 그녀를 애써 안심시키려 했다.

“아, 괜찮아요. 걱정하지 않으셔도. 좀 씻고 와서 다시 잠을 청하죠. 너무 걱정하지 마시고 주무세요.”

“그런다고 더위가 가시는 것도 아니고… 제가 마음이 안놓여요. 차라리… 1층에서 내려오셔서 주무시면 어떠세요?”

“네? 1층이요? 하지만… 거긴…”

“괜찮아요. 거기가 훨씬 더 시원해요. 거실에 문열어두고 모기장만 쳐두고, 바닥에 돗자리 깔면 자연풍이라서 시원하게 잠들 수 있어요. 아이들도 다 그렇게 재웠어요. 거기서 주무세요. 훨씬 편안하게 주무실 꺼예요.”

이 처자가… 내가 말한 망설임의 포인트를 잘못 파악하고 있다. 거기도 더울까봐 못내려가는 것이 아니잖아. 나는 그녀에게 진지하게 물었다.

“정말로 괜찮으시겠어요? 그렇게 잔다면… 지금 저랑 처남댁이 같은 곳에 잔다는 말인데요.”

내 말에 그제서야 어둠속에서도 얼굴이 화끈… 아니, 이건 좀 의식하고 화끈한 것 같다. 의외로… 지금 그녀에게 나에 대한 방어 기제가 상당히 심하게 풀려 버린 모양이다. 정말 세경이는 천재인 모양이네. 그녀는 나의 말에 더듬거리며 변명했다.

“그… 그래도, 곁에 태현이랑 승아도 있고… 아이들 사이에 두고 조금 덜어져서 자면…”

없었던 일로 하자고는 안하네. 그렇다면… 그 호의를 거절할 이유는 없지.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 먼저 내려가서 자라고 말했다. 그리고 샤워실로 들어가 적당히 샤워로 땀을 씻어낸 다음에 아래 층으로 내려갔다. 그녀의 말처럼… 그곳은 정말로 시원했다. 감기걸리지 않을 정도의 자연풍이 시원하게 불어오고 바닥에 아이들 놀이 매트 위에 깔린 돗자리도 서늘한 기분이 든다. 그녀는 나를 보며 자기 말이 맞지 않냐는 듯이 의기양양한 표정을 지었고, 나는 쓴웃음을 지으며 되도록 그녀에게서 멀리 자리를 잡고 누웠다.

다시 어둠 속에 고요가 찾아왔다. 처남댁은 이내 잠이 든 모양인지 고른 숨소리가 들렸다. 하지만… 나는 잠들수가 없었다. 잠자기에는 쾌적한 환경이지만, 눈이 감기질 않는다. 어둠 속에서 아이들의 아깃내와 더불어 익숙한 그녀의 체취가 가득차 있다. 땀냄새와 풀냄새가 섞인 듯한 묘한 그녀 특유의 체취가 사람을 자극했다. 그리고 아이들의 바리케이트는 의외로 간단히 무너져 버렸다. 녀석들… 엄청나게 뒹굴러 다니네. 잠시 후… 녀석들은 쇼파와 창문에 들러붙어 버렸고 나와 잠든 그녀 사이에 바리케이트는 사라져 버렸다.

어둠 속에서 일직선으로 보이는 그녀의 잠든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조금 의식했는지, 반바지와 얇은 잠옷 블라우스를 입고 있다. 근데… 나에게는 시원했지만 그녀에게는 이곳도 더웠는지 의외로 잠든 그녀는 땀을 조금 전에 나 이상으로 흘리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열이 많다고 했던가? 그래도 저 정도라니… 정말 몸이 뜨거운 여자인 모양이네. 그러면서 그녀의 몸에서 묘한 열기와 강한 체취가 더 펴져가는 기분이 들었다. 그리고 머리 속에서는 그 날의 풍경이 떠오른다. 땀에 젖은 잠옷 속에 뜨거운 몸이 저기 있다. 

이 상황, 사람 미치겠네… 나는 애써 잠을 청했다. 뭔가… 충동은 나를 제어하지 않으려 하지만… 그래도 지금은 아니야. 조금만 더 참자. 급한 건… 서울에서 세경이한테 풀고 지금은 더 기다려야 해. 나는 나 스스로를 달래며 잠을 청했다. 하지만, 그리 오래 잠들지는 않은 모양이었다. 뒤척임에 눈이 떠졌다. 아직도 한밤중이었다. 그리고… 나는 상당히 기묘한 자세로 잠들어 있었다. 아이들 못지 않게 나나 그녀도 잠버릇이 험한 모양이다.

지금 내 얼굴 앞에는 그녀의 비부를 가린 반바지가 보였다. 어느샌가 우리는 뒹굴다가 돗자리의 한가운데서 옆을 보며 마주한 모양이다. 그녀의 바지는 데님 소재였지만, 체취까지 가려주지는 못한다. 내 코를 자극하는 다른 체취가 느껴졌다. 그녀의 익숙한 향기와는 또 다른 비릿한 향기가… 내 시야의 앞에서 강렬하게 풍겨나오고 있었다. 아, 그러고 보니 지퍼가 살짝 반 정도 열려있네. 정말 돌겠다. 이제는 내 의지와 무관하게 몸이 반응하는 것이 느껴졌다. 안되겠다… 굴러서 다시 거리를… 그런데 그때였다.

“우응, 태현아… 토닥토닥…”

갑자기 그녀는 손을 뻗어 내 머리를 붙들었다. 그러더니 팔로 안아 잡아당겨 자기 가슴에 파묻고 머리를 토닥거렸다. 아마도… 아들이 잠을 설치면 종종 저렇게 달래주다가, 잠결에 나를 아들로 착각하고 그런 모양이다. 덕분에, 나는 그녀의 가슴에 머리를 깊이 파묻었다. 가슴의 골 사이로 얼굴이 매몰되는 기분이었다. 그리고 가슴의 촉감이 얼굴에 느껴졌다. 확실하게 노브라다. 그 말로 형용하기 힘든 기분이 내 얼굴을 가득 채웠다. 그리고, 그 여파에 나는 조금 쪽팔린 상황이 되었다.

조금, 사정해버렸다. 빌어먹을… 10대 고삐리도 아니고… 하지만, 뭐랄까나 그 접촉은 나에게 그것이 그리 무리한 결과가 아니라고 말하고 있었다. 풍만한 그녀의 가슴은 그 결과가 나오기에 충분한 기분이다. 갑자기 아들내미한테 질투까지 날라고 그러네. 나는 조금 찌질한 결과에 급하게 머리가 식는 것을 느꼈다. 그래서, 살그머니 그녀의 손에서 머리를 뺐다. 어둠 속에서 안그래도 미칠 것 같은 체취에 한가지가 덧붙었다. 밤꽃 향기… 아무리 그래도 자식들 보는 앞에서는 보일 모습이 아니지.

나는 슬그머니 일어서서 다시 욕실로 향했다. 목적은 샤워였지만, 실제로는 아마도 남은 걸 손으로 풀기 위한 것이 더 컸다고 생각한다. 속옷은 일부러 빨거나 하지 않고 말라붙은 채로 벗어서 빨래통에 올려두었다. 그럴리는 없지만, 왠지 상상하게 된다. 내 속옷을 보고 당혹해 하면서도 주위를 경계하다가 그걸 몰래 얼굴과 품에 끌어안는 그녀의 모습을… 그리고 그런 저열한 망상을 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좀 진지한 생각도 하게 된다. 역시… 나는 저 처자에 대해서 단순한 욕망 이상의 감정을 가진 모양이다. 엉망진창으로 망가뜨리고 싶은 파괴적인 생각과 더불어 소중히 대해주고 싶다는 충동이 내 안에서 요동쳤다.

하지만 역시나… 생각은 그리 오래 가지 않았다. 나는 조금 전 맡았던 그녀의 체취를 되새기면서 마지막으로 손에 힘을 주었고, 그녀의 이름을 속삭이듯 말하면서 내 안에 모든 걸 쏟아내었다. 그리고 그때쯤에 멀리서 동이 터오는 모습이 보였다. 다음 날 나는 태연을 가장하기 위해 노력해야 했다. 언뜻언뜻 보이는 그녀의 모습에 사소한 것 하나하나를 다 선정적인 것과 연관짓는 내가 있었다. 다시 한번 느끼지만… 이거 사람 미치겠다.

“호오… 오늘은 확실히 알겠네요. 그 여자 생각하고 있죠? 평소보다도 더 거칠고 급하네요. 우와… 몸이 부숴질 것 같아요.”

세경이는 확실히 버거운 상대다. 아무런 말도 안했는데 한번에 내 생각을 간파해 버린다. 그리고, 그러면서 더 무서운 건… 그것에 불쾌해하지 않고 오히려 더 자극적으로 날뛰는 것이다. 얘는 혹시 전생에 나한테 무슨 죽을 죄라도 지었던 걸까? 아무튼, 나는 일요일 저녁에 돌아와 풀리지 않은 그 욕망을 그녀에게 대신 풀었고, 그녀는 그것을 모조리 받아 주었다. 여전히 남편의 담배 냄새는 남아 있었지만… 오히려 그게 더 나의 배덕감을 줄여 주었다.

“거봐요. 제가 뭐랬어요. 슬슬 움직일꺼라고 했죠? 그리고… 주변에 과장님의 상황을 자기 편한 포지션으로 굳히기 시작했구요.”

“조금 놀랍기는 하더라. 처남한테 많이 실망했던 걸까? 지금은 사정상 행방이 묘연해도 예전에 사이 좋은 부부였는데…”

“글쎄요… 제 생각에는 남편이 있을때도 아마 어느 정도는 의식하지 않았을까 싶은데요. 아무튼, 말했듯이 과장님에게는 나쁘지 않은 상황이네요. 이제 슬슬… 투자한 것들 뽑을 시기가 온거죠. 그 정도 마누라 대접 해줬으면 이제 슬슬… 자기도 아내 할 일을 다 해야 정상이겠죠. 하지만… 한걸음 내딛는 건 쉽지 않을꺼라고 생각해요. 여기서… 과장님 의지가 좀 중요해지네요. 이제 슬슬 저한테는 솔직해 지시죠. 그 여자… 가질꺼예요? 말꺼에요?”

늘 생각하는 거지만 이 녀석은 대체 무슨 생각을 하는 건지 잘 모르겠다. 하지만, 나에게 적대적이지 않은 시점에서 나는 왠지 그녀에게 솔직하게 말하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차피 내 안에서도 결심은 섰으니깐.

“그래… 가질꺼야. 이유는 아직 잘 모르겠어. 하지만… 내 여자야. 가질꺼야. 가지고 싶어.”

“오우, 오늘 계속 터프가이로 나오시네. 한번 더 안기고 싶네요. 하지만 일단 그건 잠시 미뤄두고… 협조해 드리죠. 성실한 오피스와이프로서 과장님의 해피한 라이프 스타일에 적극적으로 지원하죠. 슬슬… 몸은 달아 올랐지만 참고 있는 모양인데, 계기를 마련해 드릴께요. 연락해서 다음 주에는 회사 일로 주말에 못간다고 연락하세요.”

“응? 왜? 이번 주에 감사 다 끝나서 회사에 바쁜 일 없잖아?”

“네, 물론이죠. 하지만 그쪽에서 알게 뭐예요. 우리는 다만 이유가 필요할 뿐이죠. 그리고… 그 전화를 하면서 이 말을 덧붙이세요. 그냥 지나가는 투로요. 아마도… 대단히 재밌는 광경을 보시게 될꺼예요. 저한테 이거 빚지신 거예요. 나중에 잊지 마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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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부


“아, 네… 이번 주 주말에는 못오신다고요? 태현이가 아빠랑 야구하겠다고 기대하고 있던데… 하지만 회사 일이라니 할 수 없죠. 부디 여기 신경은 쓰지 마시고 회사 일에 집중하세요.”
 
“네, 신경쓰이게 해서 미안해요. 좀 요새 이래저래 정신이 없네요. 집에 따로 먹을 것도 없어서 거의 외박하다시피 일하고 외식할 정도니 말 다했죠. 아무튼… 최대한 빨리 마치고 내려가도록 할께요.”
 
나는 전화를 마치고 옆에서 뒹굴거리는 세경이에게 말했다.
 
“이걸로 된거야?”
 
“네 잘하셨어요. 이제 미끼를 던졌으니 슬슬 물기를 기다려 보죠.”
 
그녀가 나에게 말한 것은 별 것 아닌 멘트 한마디였다. 집에 먹을 것이 없다는 지나가듯 하는 말… 그것을 처남댁에게 반드시 전하라고 한 것이다. 그녀는 그것에 대해 따로 더 설명을 하지는 않았고, 나도 더 묻지 않았다. 그리고 그 결과는 돌아오는 주말에 확인할 수 있었다. 처남댁에게는 가지 못한다고 말한 주말… 나는 그 주말을 홀로 서울에서 보내게 되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의외로 세경이도 남편에게 내려가지 않고 서울에 머물렀다. 그리고… 정말로 일하러 회사에 갔다.
 
주말 출근을 해야 할 만큼 일이 밀린 건 아니지만 잔업을 미리 해두면 평일에 퇴근이 빨라진다. 나는 요새 세경이와 보내는 달달한 동거도 제법 만족하고 있기에 나쁘지 않은 선택이라 생각하고 묵묵히 잔업 처리에 매달렸다. 그리고 일을 마치고 회사에서 집으로 돌아왔다. 주변 시선이 없기에… 우리는 드물게 동반 퇴근하는 것이 가능했다. 그래서 적당히 주변 마트에서 장도 보고 집으로 돌아오는데 생각치도 못한 사람을 만나게 되었다.
 
“어? 고모부?”
 
이게… 고기가 미끼를 물었다는 의미였나? 집앞에는 처남댁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손에 뭔가 잔뜩 들고선… 아마도 반찬들. 우와… 조금 당황스럽다. 그래도 이런 시나리오까지 나올줄은 몰랐는데… 파주가 먼 곳이 아니니 오자면 자가용이 없어도 올 수는 있지. 하지만, 이렇게 정말로 내가 머무는 원룸으로 찾아올 줄은 몰랐는데… 그리고 상황이, 좀 애매하다. 하필이면 지금 세경이랑 같이 있을 때… 난처해하며 할말을 잃은 나와 나 못지 않게 나의 동행을 보고 당황한 처남댁… 둘다 할말을 잃은 상황에서 세경이는 마치 보란 듯이 내 팔에 더 깊이 밀착을 하고선 그녀에게 다가가 인사했다.
 
“어머나, 전에 한번 뵈었었죠? 과장님 장인 어른 장례식에서… 안녕하세요? 박세경입니다.”
 
“아, 네… 기억나네요. 안녕하세요. 한지인입니다. 그때는 신세를 많이 졌습니다.”
 
“네, 다시 뵈니 반갑네요. 근데 여긴 어쩐 일이세요?”
 
“아… 저기, 고모부한테 이걸 좀 전해드리려고… 마침 서울에 저도 볼일도 좀 있고 해서요.”
 
서울에 다른 볼일이 있을리가… 보아하니 제법 정성을 들여 만든 음식들인 모양이다. 그리고, 아이들을 이웃에게 맡기고 올 정도로 그녀가 와야 할 이유가 나라니… 조금 기분이 좋으면서도 마음 속으로 나쁜 생각이 들었다. 그때 그녀가 세경이에게 물었다.
 
“근데… 이 시간에 세경씨는 어쩐 일로 고모부 댁에…”
 
질문은 온화하게 묻는 투지만, 의외로 답을 반드시 받아내야 하겠다는 의지가 느껴졌다. 그리고 그런 그녀의 태도에 대해 세경이는 좀 능글거리면서 어물쩍 거렸다.
 
“하아… 이걸 뭐라고 말씀드려야 할까요? 좀 복잡한 이야기라면 복잡한 이야기고, 단순한 이야기라면 단순한 이야기인데…”
 
나는 그 녀석의 놀리는 듯한 태도에 대해서 조금 짜증이 났다. 그리고, 마음 속으로 결심을 해야 할 시간이란 생각이 들었다. 어차피 악역이 필요한 상황이다. 다로 말을 맞춰 보진 않았지만… 녀석이 그리는 그림이 뭔지는 대충 알 것 같았다. 좋아. 장단을 맞춰주자. 딱히 거짓말인 것도 아니니깐. 나는 손가락으로 자기 머리를 꼬며 얼버무리듯 놀리는 그 녀석의 어께를 붙들었다. 그리고 내게 밀착시키며 말했다. 
 
“미리 얘기하지 못해 미안합니다. 주변에 조금 말하기 힘든 비밀이어서… 여기 있는 박세경씨, 저와 사귀고 있습니다.”
 
어지간하다는 세경이도 나의 말에는 조금 당황한 눈빛이었다. 어이어이… 좀 감동했다는 반응보이지 말라고… 그리고 처남댁은, 의외로 큰 변화가 없었다. 그냥… 미소 지었다. 조금 눈을 가늘게 뜨고선… 그리고 그녀는 웃으며 나에게 다가와 말했다.
 
“아아… 역시 그랬군요. 다행이네요. 서울에서 고모부를 챙겨주는 사람이 없을 것 같아서 좀 걱정스러웠는데, 이렇게 믿음가는 애인이 있으신 줄은 몰랐어요. 제가 조금 눈치없이 굴었군요. 저는 혹시나 식사도 제대로 못하실까봐 조금 몇가지 준비를 해왔거든요. 굳이 그러지 않아도 좋았을 뻔 했네요.”
 
그리고 자리를 피하려는 듯 하던 처남댁에게 세경이가 나섰다.
 
“우와… 건새우 조림에 꼬막까지… 다들 제가 좋아하는 거네요. 전에 과장님 편에 들려 보내주셨던 것들도 너무 맛있게 잘 먹었어요. 눈치 없으시다뇨? 무슨 그런 말씀을… 늘 신세지면서 고맙게 생각하고 있답니다. 들어오세요. 여기까지 오셨는데 설마 그냥 가시려는 건 아니시죠? 저녁 시간도 딱 된 것 같으니 같이 저녁 들고 가세요.”
 
그녀는 여전히 미소 짓고 있었다. 하지만 아마도 마음 속으로는 ‘그걸 저 사람이 아니라, 네년이 다 먹었다는 거지?’ 라는 생각을 하고 있으려나? 그녀가 말했다.
 
“아뇨… 아이들도 기다리고 있으니 들어가 봐야죠.”
 
“들어보니, 좋은 이웃이 있어서 종종 거기서 아이들이 자고 오기도 한다던가요? 시골의 좋은 점이 그런거죠. 너무 신경쓰지 말고 모처럼 서울 공기 마시러 오셨는데 어울리다 가세요. 저랑 그이랑 둘이서 먹기는 좀 많을 것 같은데…”
 
제반 사항에 대해서 세경이가 알고 있다는 것에 대해서 1차 빡침. 그이라는 말에서 2차 빡침. 둘이 먹기 많겠다는 말을 하며 들고 있던 장바구니를 나에게 넘겨주는 모습에 3차 빡침. 물론… 그 어떤 내색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뭐랄까나… 느낄 수 있었다. 원래 열기가 많은 저 처자가 지금 상당히 열받고 있다는 사실이… 나도 그녀와 너무 깊이 공감해버린 건가? 그리고 조금 고민하는 듯 하더니 입술을 깨물고선 결심했다는 듯이 말했다.
 
“아, 초대해주시는 건가요? 그렇다면 거절하기가 그렇네요. 네, 같이 저녁을 들도록 하죠. 고모부, 죄송하지만 이것도 좀 들어주실 수 있으실까요?”
 
지은 죄가 있으니 못들겠다고는 못하지… 나는 왠지 조금 위가 쓰라릴 것 같은 저녁을 들러 양손 가득 한보따리씩 들고선 집으로 들어갔다. 집에서도 묘한 신경전을 계속 되었다.
 
“과장님은 씻고 오세요. 저희가 저녁 준비하고 있을께요.”
 
“괜찮겠어? 도와주지 않아도?”
 
“괜찮아요. 갑자기 새삼스럽게 주방 일은 왜요? 그냥 가만히 계세요. 대신에 평소처럼 샤워하는 거 시중들어 드리는 건 무리요.”
 
그녀의 말에 처남댁이 반응했다.
 
“사이가 좋으시네요. 평소에… 샤워도 같이 시중들어주나 보죠?”
 
“어머나… 농담한 거였는데 설마 믿으셨어요? 그럴리가 없잖아요. 애들도 아니고…”
 
“아뇨. 괜찮아요. 그리고, 시중을 좀 들면 어때서요? 남자는 크던 작던 아이들 같아서 손이 가지 않으면 곤란한 일이 벌어지거든요. 그래서… 다 챙겨주지 않으면 안된답니다. 저는 항상 챙기는 걸요?”
 
아이의 샤워를 챙긴다는 건지 나의 샤워를 챙긴다는 건지는 정확하게 말하지 않았다. 하지만 아무튼… 지지 않겠다는 건 틀림없어 보인다. 어휴… 예전에 샤워실에 문틈으로 수건 건내준 것도 카운팅에 넣는건가? 고개를 돌렸어도 나름 볼 건 다 봤었나 보다. 그리고 내가 씻으러 간 사이에 왠지 모르게 피튀기는 주방 배틀이 벌어진 모양이다. 씻고 나와보니 차려진 것이 무슨… 호화롭다. 조금 속이 쓰라린 식사 자리만 아니면 참 좋으련만…
 
우리는 그렇게 식사를 같이 했다. 의외로 밥먹으면서 그렇게 피튀기는 신경전은 벌어지지 않았다. 유치하게 젓가락으로 직접 집은 자기 음식을 먹여주겠다며 ‘아!’ 해보라는 둥의 퍼포먼스도 벌이지 않았다. 하지만 식사를 마치고 정리까지 하고 나니 의외로 시간이 많이 늦어 버렸다. 그리고 세경이의 다음 도발이 이어졌다.
 
“이런… 너무 늦었네요. 외곽 순환버스도 다 끊긴 시간이죠? 오랜만에 즐거운 식사 덕분에 너무 지인씨를 붙들어 버린 모양이네요. 죄송해요. 어차피 시간도 늦은거… 여기서 하루밤 주무시고 들어가세요.”
 
“네? 어휴… 그럴수는 없죠. 저도 눈치라는 것이 있는 사람인데 어떻게 여기서 두분 앞에서 그런 민폐를… 손님이 그렇게 남의 집에서함부로 굴면 안되죠. 제가 알아서 들어갈께요. 너무 신경쓰지 마세요.”
 
남의 집이라는 걸 유독 강조하는 그녀… 이건, 지금 자기가 손님이니 참는거지, 자기 집에서 자기가 주인이면 어림없다는 의미인건가? 그런 그녀의 거절에 세경이 웃으며 말했다.
 
“에이… 너무 불편해하지 마세요. 저랑 과장님은 저 위에 중간층에 있는 침대에서 자면 되고 지인씨는 여기 거실에서 주무시면 그렇게 민폐랄 것도 없어요. 그리고 굳이 돌아가실려고 해도… 결국은 방법이 없어서 과장님이 파주에 데려다 주고 다시 돌아오시는 방법 밖에 없을 것 같은데요. 그건 더 불편하지 않을까요? 잔업 덕분이긴 해도 모처럼 과장님과 같이 하는 주말인데 저도 과장님이랑 보내는 시간이 줄어드는 건 좀 그런데요. 상관없으니 그냥 주무시고 가세요.”
 
상관없다는 말이… 불편하지 않다는 의미인건지, 아니면 너랑 상관없는 사람인데 뭘 의식하고 유별나게 구느냐는 의미인지는 모호했다. 하지만 듣는 사람은 명백히 후자로 받아들인 모양이다. 그녀가 웃으며 말했다.
 
“아, 그런가요? 그렇다면 어쩔수 없네요. 조금 민폐지만 하루 신세지고 갈까요?”
 
“물론이죠. 저희 스위트홈에 와주신 걸 다시 한번 환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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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부

아오… 두통 밀려온다. 아무튼 그렇게 해서 우리는 정리를 마치고 잠자리에 들었다. 나와 세경이는 원룸 중간에 복층으로 된 침실 공간에. 그리고 처남댁은 거실의 쇼파에 자리를 깔았다. 그리고 소등… 잠시 시간이 흘렀다. 일단은 그녀를 도발하기 위해서 세경이 편을 들어야 하는 입장이지만, 마음에 둔 사람을 밑에 두고 다른 여자랑 올라와 있는 사실이 조금은 불편했다. 밑에서 자고 있는 그녀… 아니, 과연 자고 있을까? 왠지 위가 쓰리는 오늘의 일에 대해서 두고두고 곱씹고 있지 않을까?

정말이지 여자들의 싸움을 감히 쫓아갈 것이 아닌 것 같다. 두 사람 나이 차이가 6살이던가, 7살이던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상대를 리드하며 도발하는 세경이도 세경이지만, 그걸 평소에 알고 있던 순둥이 이미지랑은 다르게 받아치고 흘려넘기는 처남댁도… 만만치 않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저쪽도 이제 조금 작심한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어떤 의미에서는 정말로 한걸음 더 나아간 건지도 모르겠네. 오늘 밤만 조용히 넘기면… 그런데 그때였다.

“아흑! 지… 지금 뭐하는…”

순간 당황했다. 소리를 죽여서 말하려고 필사적으로 노력하여야 했다. 왜냐하면 세경이가 갑자기 이불 속으로 들어와서 내 물건을 애무하며 자극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이 녀석 한때 업소에서 일했다는 말이 거짓이 아닌 것이… 관계에서 리드하면 의외로 테크닉이 무시무시한 녀석이다. 평소에는 주도권을 나에게 넘겨줘서 잊고 있을 뿐이지. 그런데 지금 그런 절륜함을 가장 적절하지 않은 상황에 발휘하고 있는 것이다. 나는 터져나오는 신음소리를 죽이고 말했다.

“갑자기 왜 이래? 지금 밑에 처남댁이…”

“그러니깐 하는 거예요. 억누른 신음 소리 듣기 좋네요. 갑자기 내면에 잠들어 있던 마조히즘에 시동이 걸리는 기분이에요. 참지 말고 발산하세요. 조금 긴 터치가 될 테니 제지하실 생각하지 말고요… 아, 말씀하지 마세요. 들킬지도 모른다는 거죠? 들키라고 하는 거예요. 아마도, 틀림없이 안자고 귀기울이고 있겠죠? 한번 관음증을 발휘해 보세요.”

“야, 지금 그건… 아흑…”

녀석은 집요하게 손가락으로 자극을 하며 그것을 입으로 머금었다. 그리고… 중지로 내 약한 부위를 끈질기게 괴롭혔다. 망할… 이거 무슨, 여자한테 강간당하는 기분이잖아. 하지만 나는 그걸 저지할 방법이 없었고… 그저 억누른 신음소리를 죽이는 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전부였다. 흐릿해져가는 의식 속에 아래층이 신경쓰였다. 틀림없이… 들릴텐데. 정말이지 이건 도를 넘어선 것이 아닐까? 그런 생각도 잠시… 나는 녀석의 자극에 점점 더 무아지경으로 빠져들었다. 지독하게 고통스러운 쾌락의 밤이었다.

아침이 되었을 때… 나와 세경이는 조금 늦게 일어났다. 처남댁은 사라지고 없었다. 잘 정돈된 이부자리… 하지만 세경이는 그걸 발로 걷어차고 쇼파 틈에 손을 집어넣어 그녀가 남기고 간 흔적을 찾아내었다. 손가락 끝에 묻은 아직도 촉촉한 그것… 그녀는 그걸 입으로 맛보며 느긋하게 말했다.

“이제 공략은 완료됐네요. 어휴… 물이 엄청 많은 여자인가봐요. 나름 손가락 장난 하다가 실수한 거 닦아내고 갔을텐데 쇼파 틈에 스며든 것만 이 정도라니… 이제 저쪽도 시동이 걸렸네요. 큭큭큭… 정말로 세상 물정 모르는 순딩이라고 생각했는데 좀 만만치 않은데요? 조신한 맏며느리라기 보다는 자기가 짐승인 줄 모르는 육식동물 같은 느낌?”

“무슨 비유가 그러냐? 어휴… 너무 심했어. 필요한 일이라는 건 어느 정도 동의하지만, 완전히 미운 털 박혔겠다.”

“응? 그럴리가요. 생각하시는 그런 반응… 절대 없어요. 도리어 지금보다도 더 과하게 과장님한테 집착하고 잘해주려고 하고 잘보이려고 하기 시작할껄요? 생각해 보세요. 지금 자기 생계와 안정을 책임지고 있는 남자. 지금까지 자기가 마누라 포지션이라고 생각했는데 갑자기 나타난 여자 그림자. 그건… 저쪽으로 하여금 불안한 상황이죠. 자칫 잘못하면 자신이 누리고 있는 환경이 순식간에 사라져 버릴 지도 모르는 불안한 상황… 그런 상황에서 여자는 의지하는 남자의 목에 더 필사적으로 매달릴 수 밖에 없죠.

그리고 그런 흔들다리 효과가 아니라고 해도… 이미 저쪽에서는 의욕 만땅이에요. 어제 눈빛 보셨어요? 웃고는 있지만 자기 밥그릇 건드린 개년을 살려두지 않겠다는 눈빛… 아주 강렬한 소유욕을 불태우면서 임전 태세를 갖추던데요? 어휴… 팔뚝이 내 두배 정도 되니 머리 끄댕이 잡는 걸로는 상대도 안되겠네. 아무튼, 기대하세요. 다음 주에 갔을 때 최고의 파라다이스가 준비되어 있을테니깐요. 하지만… 그런 반응에 대해서 어떻게 대처해야 하실지는 아시죠?”

대충은… 짐작이 갔다. 이런 걸 보면 나는 이 녀석과 생각이 통하는 동족인 모양이다. 그러면서… 나는 녀석에게 물어봤다.

“근데… 매번 물어보지만 정말로 괜찮은거야? 솔직히 나 저 사람한테 마음있다고. 그렇게 푸쉬해주면 정말로 너를 제쳐두고 저쪽에 올인할지도 몰라. 그래도 괜찮은거야?”

나의 질문에 대해서 그 녀석은 담담하고 심플하게 대답했다.

“네, 괜찮아요. 아니, 정확히 말하면… 저쪽이 과장님의 장기적인 관점에서는 더 필요한 사람이에요. 제게 주시는 애정은 딱 지금 정도가 좋아요. 과하면… 서로를 망쳐요. 그러니 잡으려면 저쪽을 잡으세요. 제가 도와드릴 테니깐요.”

그렇게 말한 녀석은 대답을 기다리지 않고 옷울 훌렁 벗어던지더니 아침 샤워를 하러 욕실로 들어갔다. 왠지 모르게 나는 묘하게 그런 녀석의 말에 조금 우울한 기분이 드는 것 같았다. 아무튼… 그렇게 오랜만에 그곳으로 가지 않은 주말을 보냈다. 그리고 평일이 지나고 다시 주말이 돌아왔고, 나는 마치 지난주의 일이 없었다는 듯이 일상적인 모습으로 그곳으로 향했다. 도착한 시간은 평소와 마찬가지로 금요일 저녁… 오랜만에 다시 목욕 후의 탈의 감상을 하나 싶었는데, 아니었다.

“아… 오셨어요? 많이 피곤하시죠? 욕조에 물받아 놨어요. 들어가서 좀 피로를 푸세요.”

그녀는, 나와 마찬가지로 지난 주에 있었던 일이 전혀 기억나지 않는 다는 듯이 화사하게 미소지으며 나를 반겼다. 그리고… 평소와는 다른 옷차림을 하고 있었다. 속이 비쳐보이는 시스루 네글리제… 흐릿하게 보이는 정도긴 하지만 대단히 선정적이다. 확실하게 브라를 차고 있지 않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을 정도로… 평소에 편하게 입고 있던 몸빼바지가 아니다. 그렇게 입고 있으니 사람이 전혀 달라 보이는 것 같았다. 미리 내가 올 시간에 맞춰서 그런 옷을 준비하고 기다리고 있었던 건가?

그리고 달라진 건 옷차림 만이 아니었다. 태도도 달라졌다. 이전에는 나에게 친절하기는 했지만 좀 과하게 오지랖이 넓은 친척 정도의 느낌이었다면… 정말로 지금은 아내라고 해도 믿을 만큼 가까이 밀착하고 다가와 나에게 다정한 미소를 짓는다. 미묘한 거리감을 뚫고선 먼저 다가와 버렸다. 우와… 아직은 애매한 느낌이지만 이전보다 훨씬 더 자극적이다. 나는 그런 그녀의 반응에 대해서 딱히 뭐라고 언급하지는 않고 평소와 다름없는 담담한 느낌으로 어울려 주었다.

목욕 후에 나와서 식사… 늦은 저녁을 차려준 그녀는 곁에 앉아서 재잘재잘 많은 이야기를 했다. 딱, 지난 주 있었던 일만 마치 도려낸 듯이 제외하고. 그리고 나는 그것을 대충 알겠다는 듯 음미하며 조용히 들었다. 다음 날도 마찬가지였다. 세경이의 말처럼 그녀는 더 자상했고 더 나에게 헌신적이었다. 마치, 봐라! 내가 정말로 너의 조강지처다! 라고 소리치는 듯한 느낌마저 들었다. 아! 하나 달라진 것이 있다면 역시 옷차림… 평소와는 다른 옷차림이었다.

팬티와 무슨 차이가 있을까 싶을 정도로 짧은 핫팬츠… 평소의 그녀라면 절대 입지 않을 옷이지. 그걸 그녀는 밭에서 나가 일하며 입고 있었다. 구릿빛으로 길게 뻗은 다리가 핫팬츠를 찢고 터져나올 것처럼 달라붙어서 보기가 좋았다. 그리고 상의는 편한 작업복이 아니라 노린 듯한 무지의 하얀 티셔츠… 땀이 많은 그녀의 티셔츠는 이내 젖어서 몸에 달라붙었고 속에 실루엣이 드러나 보였다. 와우… 내가 예상한 것 이상의 변화다. 이전에 조신한 맏며느리같던 여자가 지금은 허벅지로 승부하는 걸그룹 멤버 같이 군다.

그렇게 토요일 하루가 지나고, 다시 밤이 왔다. 그녀는 아이들을 재우러 들어갔고, 나는 잠시 데크로 나왔다. 와인병이 더 폼이 나겠지만 불행히도 그건 없어서 맥주캔을 들고선… 한참을 여름밤의 풀벌레 소리를 들으며 술을 들이키는 데 그녀가 밖으로 나왔다. 어제 봤던 그 네글리제를 입고선… 그녀가 나에게 다가와서 말했다.

“아, 여기 계셨네요. 모기가 많아요. 데크에 모기장을 치고 계시지 그러셨어요.”

나는 슬그머니 그녀를 흩어 보았다. 그런 나의 시선에 그녀는 무의식적으로 팔로 몸을 감쌌다. 여전히… 방어 기제는 조금 남아 있나 보네. 이 상황에서는 그걸 더 부추겨야 정석이겠지? 나는 자리에서 일어서서 그녀에게 다가갔다. 순간 움찔한 그녀에게 나는 곁에 놓인 가디건을 입혀 주었다.

“여름이라고 해도 공기가 좀 차네요. 어제 왔던 비때문일까요? 입고 계세요.”

“아, 네 감사합니다. 한잔 드시는 중이셨네요. 안주거리라도 좀 준비해 드려야겠네요.”

나는 집으로 들어가려는 그녀의 팔을 붙들고 말했다.

“안주는 됐습니다. 그보다는 말동무가 좀 필요하네요. 같이 좀 어울려 주실 수 있으시겠어요?”

“아, 네… 그럴께요.”

그녀는 내 맞은 편에 앉았다. 데크에 놓인 테이블과 의자에 맥주를 둔 남녀… 바람이 시원해서 기분이 좋았고, 몇잔 안되는 알코올에 열기가 기분이 좋았다. 그냥 이대로 기분 좋은 술자리로 마치면 좋으련만… 지금부터 조금 감정이 고조되는 일이 벌어질 꺼라는 사실에 조금 입맛이 썼다. 하지만… 어물쩍 넘어갈 수는 없겠지? 나는 그녀에게 맥주캔을 권했다.

“한잔 드세요.”

“아뇨. 괜찮아요. 저는 술마시면 더워지는 체질이라…”

“아, 그래요? 조금 아쉽네요. 저는 처남댁과 한잔 하면서 얘기하고 싶었는데요.”

“네? 그런 거라면 술을 마시지 않고서도 얼마든지… 근데, 무슨 얘기인데요?”

나는 그녀의 질문에 잠시 운을 떼고 한잔 마시고 말했다.

“그야 물론… 처남댁에 저에게 지금 화를 내고 있는 이야기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