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부
“좀 알아봤는데… 과장님 처남 회사 거하게 망한 모양이던데요?”
세경이는 지나가듯이 한 말을 잊지 않고 어떻게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나름 수소문을 해서 나에게 소식을 들려주었다. 알아낸 것도 신기하지만, 그 결과에 대해 심히 놀랐다. 처남이 좀 미덥지 못한 건 사실이었지만 그렇게 빨리 망할 줄은 몰랐다. 아마도, 장인이 살아계신 동안에도 말을 안하셨을 뿐이지 사업이 좀 어렵긴 했던 모양이다. 거기에 장인의 지인인 동업자들이 한 보따리 챙겨서 튀는 바람에 뭐라 손쓸 여지도 없이 망했다는 것이다.
덕분에 처남은 현재 행방이 묘연하고, 제법 큰 처가집은 딱지가 붙어서 남들 손에 넘어간 모양이었다. 아내도 자기 친정에 대해서는 뭘 해주진 못한 모양이다. 새로 결혼한 상대의 눈치를 아무래도 볼수 밖에 없었던 것 같다. 것참… 세상 일 알수가 없네. 결혼하던 시절만 해도 별볼일 없는 사위 취급 당하며 들어가다시피 한건데… 그러면서, 역시나 마음속에 떠오르는 그녀에 대한 생각이 있었다. 이번에는 그런 선정적인 생각은 아니었다.
본래 그녀의 이미지, 순진하고 해맑아보이면서 사회 경험도 많지 않은 그녀가… 지금 잘 지내고는 있으려나? 조금 걱정이 들었다. 집안 살림은 믿음이 가는 전업주부지만, 그런 부도가 난 상황에서 과연 견딜 수 있으려나? 그것도 혼자 몸도 아닌 어린 딸을 데리고, 남편도 없이… 망설이는 시간이 조금 걸렸다. 하지만, 고민 끝에 찾아보기로 했다. 그건, 단순히 연민만 가지고 움직인 건 아니다. 아들에 대한 일에 대해서도 조금 생각한 것이 있었다. 그래서… 그녀가 살고 있는 집으로 찾아갔다.
나름 고급 주택가에 살던 처가의 이미지와는 다르게 그곳은 달동네의 오래된 빌라였다. 찾느라 고생했다. 많이 초라해진 거처를 보며 혀를 차고 들어가는데… 왠지 나보다 선객이 와있는 듯 보였다.
“어이, 아줌마… 이러면 곤란하지. 돈이 없으면 남편이 있는 곳이라도 말해야 사람 도리잖수.”
“정말 몰라요. 정말이에요. 저도 필사적으로 찾고 있어요.”
“쓰읍… 이 아줌마가 지금 사람을 아마추어로 보나. 우리가 이런 일 하루이틀 한 줄 아쇼? 뭐, 당연히 다들 모른다고 잡아떼지. 근데 우리도 이렇게 곱게 돌아갈 수는 없거든? 좀 불쾌할지도 모르겠지만 말하게 할 방법을 동원해야 겠네.”
“뭐… 뭐하시는 거예요? 안돼요. 왜 자꾸 다가오시는… 사람 부를 꺼예요!!! 소리 칠꺼예요.”
“어허… 요새 누가 옆집 일에 관심가진다고…”
역시… 나서는 것이 좋겠지. 나는 녹취하고 있던 핸드폰을 끄고 그에게 말했다.
“여기를 보세요. 스마일!”
“무... 뭐야? 지금… 뭐하는 짓이야?”
“어? 고… 고모부?”
나는 사진을 저장하며 담담하게 말했다.
“불법 추심 현장 증거 확보하는 중이요. 보아하니, 드라마에 나오는 조폭은 아닌 것 같고, 금융사 추심 대행 사무실에서 나왔죠? 요새는 그런 야동에나 나오는 짓하면 쇠고랑 차는 거 본인이 더 알고 있죠? 자아… 정중한 사과와 퇴거, 아니면 경찰서랑 언론사 사진과 녹취 발송. 둘중에 어느걸로 하실래요?”
추심원의 표정이 경악으로 변했다. 다행히도 그는 그녀에게 정중히 사과하고 혹시나 몰라 사진 지우는 것까지 보고서는 나에게 굽신거리며 돌아갔다. 다행이네. 정말 조폭이라 주먹 휘두르면 나도 줄행랑쳐야 했을텐데. 그리고 그가 떠나자 그녀가 나를 보며 흐느끼는 표정으로 말했다.
“고… 고모부, 여기는 어떻게?”
“오랜만이네요. 잘 지내…시진 못하신 모양이네요.”
나는 엉망이 된 집과 여기저기 차압 딱지가 붙은 물건들을 보며 혀를 찼다. 이것만은 이상하게 영화랑 똑같더라. 그래서 혀를 차는데 그녀가 다가와서 내 손을 잡고 흐느끼며 말했다.
“고맙습니다. 정말 고맙습니다. 고모부가 아니었으면 무슨 일이 벌어졌을지 몰라요. 고맙습니다.”
조금 머쓱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그리고 잠시 후 그녀는 차를 내왔다. 차라고 해도 커피나 제대로 된 차도 아닌 보리차 수준의 맹한 녹차… 정말로 형편이 어려운 모양이네. 나는 차를 마시며 그녀에게 그간의 일을 물었다. 대강의 사정은 내가 알고 있던 것과 다르지 않았다. 그리고 망한 집안의 모습과도 많이 다르지 않았다. 나는 차를 마시고 나를 보며 애교부리는 그녀의 딸과 놀아주며 물었다.
“처남은 정말로 행방을 모르시나요”
“네… 알면 제가 더 곤욕을 치를 거라고 일부러 말안해준다고 말하고 떠났어요. 그리고 여태 소식이 없어요. 아마, 도망간 동업자들이 갔다는 중국에 쫓아간 것이 아닌가 싶긴 한데…”
나는 집을 보며 물었다.
“요새는 옛날 같지 않아서 남편 부채를 사람 없다고 부인한테 대놓고 닥달하거나 해꼬지 해서 받아내지 못해요. 그리고 들어보니 다행히도 대출받은 것도 위험한 곳은 아니고 그나마 양호한 곳들인 모양인 것 같은데요? 여기서 아이 키우시면서 사시는 건 무리라고 봐요. 그 사람들 찾아오는 거 이 집 명의가 처남으로 되어 있어서 그런거죠? 여기서 나가서 다른 곳으로 가시는 것이 어떠세요? 친정이나 아니면 가까운 지인네 집으로 갈만한 곳이 없으세요?”
“네… 친정 없어요. 부모님 돌아가시고 시부모님을 부모님이라 생각하고 살았어요. 친척들도 의지하기는 너무 멀고… 지인도 있다고 해도, 이런 일로 의지하려고 가면 정색할 것이 뻔하다고 생각해요.”
참 딱한 상황이고, 막막하기 그지 없는 사태다. 하지만, 나는 왠지 억지로 무너지지 않기 위해 버티는 그녀를 보면서… 묘한 감정이 들었다. 지금 눈앞에 있는 차가운 세상에 내던져진 여자. 세상에 차가움에 서서히 얼어 죽어가던 상황에서, 약간의 온기를 준다면… 그러면 그걸 대가로 그 무엇이든 하려고 하지 않을까? 자기 뿐만이 아니라 자기 딸도 엮인 상황이라면… 그러니, 불가로 끌어들이기만 한다면… 이건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다. 상대를 사람이 아닌 사물로 생각하자, 갑자기 후끈한 기분이 들었다.
뭔가… 감정이 동요하는 것을 느꼈다. 충동적인 것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런 생각이 왠지 모르게 합리적으로 맞물려져 상당히… 그럴싸한 시나리오가 완성되어 갔다. 나는 조금 마음을 가라앉히며 그녀를 보았다. 다시 한번 그날의 모습이 그녀에게 오버랩된다. 가무잡잡한 피부와 땀으로 흠뻑 젖은 윤기… 물론 지금은 하얀 홈드레스를 입고 있어 전혀 연상하기 어렵지만. 나는 마음을 차분히 가라앉히며 그녀에게 말했다.
“저기… 오해는 하지 말고 들어주세요. 혹시 말입니다. 정 주변에 손을 빌리기 어려운 상황이시라면, 외람되지만 제가 좀 도와드려도 될까요?”
“네? 고… 고모부가요? 하… 하지만, 이제 아가씨랑 이혼까지 하셔서 고모부가 그러실 이유는… 죄송해요. 그건 좀 아닌 것 같아요.”
“아뇨, 들어보세요. 저는 지금 단순히 호의를 제공하겠다는 말이 아닙니다. 저는… 일종의 거래를 제안하는 겁니다. 이렇게 말하면 더 이상하게 들리시겠지만, 결론만 말하자면… 우리 애 좀 봐주실 수 없으실까요?”
“네? 태현이요?”
나의 말에 조금 경계를 하다가 그녀는 우리 아들의 이름을 듣고 당황하며 관심을 보였다. 그래서, 나는 그간의 내역을 대충 설명했다.
“그래서… 결론적으로 말하면 태현이를 돌봐줄 사람이 필요합니다. 전에 처남댁이 우리 아들 잘 봐주셨잖아요. 태현이도 처남댁 잘 따랐고요. 그래서 부탁드립니다. 아이를 좀 돌봐주실 수 없으시겠습니까?”
“아, 네… 그런 연유셨군요. 무슨 말슴이신지는 알겠어요. 그리고, 크게 어려운 일은 아니네요. 그래도… 좀 답을 드리기 애매하네요. 아이를 돌봐야 한다면, 제가 고모부 댁에 들어가야 하는 거 아닌가요? 그건 좀…”
“아, 걱정하지 마세요. 저도 그런 불편한 상황을 요구하는 건 아닙니다. 이렇게 하시죠. 어차피, 지금 태현이 아토피가 심해서 어디 시골에 요양을 보낼까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다행히도 집은 있어요. 부모님이 돌아가시고 물려주신 시골에 전원 주택이 하나 있습니다. 오랫동안 방치되서 많이 망가졌겠지만, 손을 좀 보면 사는 것은 그럭저럭 살만하리라 생각됩니다. 그래서, 거기 가주셨으면 합니다. 지금 제가 살고 있는 서울 집은 팔고 원룸을 하나 얻어서 여기서 출퇴근 하고, 차액으로 거기 집을 수리하겠습니다.
어차피 저는 회사를 다녀야 하니 서울의 원룸에서 머물고, 처남댁은 아이들과 거기서 생활하세요. 아이를 돌봐주시는 대가로 생활비는 제가 책임지고 보내드리겠습니다. 어떠세요? 제 생각이? 여기 계속 계시다가는 언제 또 저런 추심원이 와서 개인적인 일탈을 저지르려고 할지 모릅니다. 이 집도 넘겨버리시고 여기서 나오세요. 그럼 더 시달리지 않으실 겁니다. 지금으로서는 제가 처남댁에게 제안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이고 서로가 서로에게 불편하지 않게 win-win 하는 방법이라고 생각하는데요?”
내 말에 그녀는 눈이 커졌다. 뭔가 실날 같은 희망을 봤다는 눈빛… 그러면서도 조금 망설이며 한걸음 뺐다.
“그… 그래도 제가 너무 무리한 부담을 드리는 건 아닌지… 그렇게 일방적으로 기대는 건…”
“아뇨. 정확하게 하세요. 이건 기대는 것이 아닙니다. 서로 필요한 부분을 거래하는 것입니다. 저는 아이를 돌봐줄 사람이 필요하고 처남댁은 안전하기 지낼 공간이 필요하죠. 서로가 서로에게 필요한 것을 제공하면서 우리는 동등한 거래는 하는 겁니다. 그렇게 제가 부담한다는 식으로 말하지 마세요. 이건 도리어 제가 더 절박하고, 더 부탁드려야 할 일입니다. 어떠세요? 고려해 주시겠어요?”
그녀의 표정이 복잡하게 변했다. 하지만, 거절할 이유는 없을 것이다. 이보다 좋은 제안을 할 사람도 없을테니깐. 망설임은 잠시 뿐… 그녀는 결심을 굳힌 듯 나에게 말했다.
“네. 그럴께요. 감사합니다. 그 제안을 따를께요. 그런데… 한가지 조건이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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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부
금요일 저녁, 회사를 나와서 차를 몰아서 한참을 달렸다. 대략 2시간 정도 흘러서야 목적지에 도착했다. 도착한 곳은 파주 외곽에 인적이 드문 곳이었다. 조금 멀리 차를 세우고 시골길을 걸어갔다. 포장되지 않은 도로는 가로등도 없어서 어두웠다. 달빛에 의지해서 다다른 더 외진 곳에 목적지에 도달했다. 그곳은 예전에 부모님이 노후를 보내셨던 곳. 그리고 지금은… 내 아이가 지내는 집이었다. 잠시 서서 조금 멀리서 집을 돌아보았다.
새삼, 서울 집값의 거품을 실감한다. 겨우 그 정도 돈으로 리모델링을 해서 이런 볼만한 집이 나오다니… 그리고도 내가 지내는 원룸 보증금이랑 별로 차이가 나지 않는 다는 사실에 기가 막힌다. 내 시야에 들어온 그 집은 예전에 부모님이 살던 시절과 완전히 다른 모습이었다. 2층으로 올린 목조 건물에 넓은 마당과 별채, 창고 겸 작업실이 있었고, 곁에 딸린 텃밭도 나름 광활했다. 정말로 농사지어 먹고 살 정도로 넓다. 그리 큰돈을 들이지 않고선 나름 아이들에게는 최고의 놀이터이자 생활 공간이 될 집이 들어섰다.
물론 불편한 것도 있다. 너무 외진 곳에 위치해서 인적이 드물다. 제일 가까운 편의점이 차로 15분, 시내는 30분이 걸리는 사람과의 접점이 없는 곳이다. 덕분에 그곳은 왠지 사람 구경을 하기 힘든 고립된 공간이라는 느낌이 든다. 그래도, 아이들은 그리 그런 상황에 불편해하지 않았다. 당장 아들 내미는 그곳에 곤충은 죄다 잡아버릴 기세로 신나게 뛰어다녔으니깐. 그걸 보면서 조금은 안심했다. 이제야 좀 안정을 찾은걸까? 그래서 나는 그런 안정을 찾아준 그녀에게 감사하며 그녀가 제안한 조건을 떠올렸다.
그건 생각보다는 별 것 아닌 참으로 간단한 조건이었다.
“아무리 그래도… 아빠의 존재는 곁에 있어 줘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부탁드려요. 힘드시겠지만, 매주 주말에는 여기 오셔서 태현이랑 같이 보내주셨으면 해요.”
이런 걸 보면 참 성실한 여자다. 물론, 아이를 맡기고 내팽겨칠 생각은 없었다. 하지만 먼저 얘기하기가 꺼려질 법도 할텐데… 외진 시골이다. 오는 것도 만만치 않은 일이니 당일치기는 무리다. 그러니, 주말에 그곳에 간다는 것은 거기에 묵고 가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남자로서의 경계심은 가지지만 아이 아빠로서는 괜찮다는 말… 그런 마음은 그녀의 여자로서 하는 말일까? 엄마로서 하는 말일까? 답을 내리기는 요원한 일이겠지.
그래서, 나의 라이프 스타일도 변화했다. 금요일 저녁에는 가능하면 약속을 잡지 않고 시골로 가는 행로에 오른다. 그리고 거기서 주말을 보내고 일요일 저녁에 서울의 내 원룸으로 복귀한다. 생각치도 못했던 주말 전원 생활이 시작되었다. 처음에는 본인이 말하고도 그렇게 하면 내가 같은 집에서 자고 가야 한다는 사실에 당황하는 모습이었다. 그래서, 그곳에서 내가 머무는 것에 대한 불편함은 머무는 공간을 분리하는 것으로 해결을 봤다.
아이들이 깨어 있는 시간 동안에는 1층에서 머무르지만, 기본적으로 내가 그곳에 머무는 시간에 나의 공간은 2층으로 하기로 암묵적으로 합의했다. 그걸 위한 2층 침실과 욕실도 따로 마련했다. 그리고 바로 연결된 계단이 있어서 원한다면 1층에서 만나지 않고서도 지내는 것은 가능하다. 그렇게 우리는 각자의 삶에 룰을 정하고 기묘한 주말 동거를 시작하게 되었다. 어디까지나… 아이를 돌보는 처남댁과 고모부로서.
하지만, 미묘하게 분리된 공간은 마음 속에 묘한 갈망을 낳았다. 이제 제대로 이사한지 몇주… 그곳에 생활에 적응하는 동안에는 몰랐는데, 조금씩 정착을 하고 안정을 찾으면서 나는 처음에 가졌던 마음 속에 묘한 기분을 자각하기 시작했다. 이곳은 나의 집이다. 내 영역이란 의미다. 그리고 그 안에 들어온 먼 친척… 처남의 여자. 그녀에게는 어리버리하게 집안에 안주인 같은 역할이 주어졌다. 대본이 정해지지 않은 이 연극에서 여배우는 과연 어떤 흐름으로 극을 이끌까? 나는 그 확정되지 않은 결말에 묘한 기대가 갔다.
그리고 그녀에게는 물론, 나에게도 그건 제법 유쾌한 자극과 변화였다. 사람의 깊은 상세를 알아간다는 것은 기이하게 야릇한 기분을 들게 한다. 나는 그것을 서두르지 않고 음미했다. 내가 먼저 나설 이유는 없다. 지금은 미미한 자극도 나에게 충분한 즐거움을 가져다 준다. 예를 들면… 그녀의 습관 중에 한가지, 아이들을 재우고 나서 늦은 시간에 샤워를 하는 것이라던가, 우리 집 마당에 크게 노출된 전체 창으로 그 안의 모습이 훤히 보인다거나, 집으로 오는 길의 어둠속에 있으면 거기 누가 있는지 보이지 않는 다는 사실이 조합되면… 제법 유쾌한 장면이 펼쳐진다. 처음에 그걸 알게 된 건 우연이었다. 하지만, 한번 보니 놓칠 수 없는 장면이 되었다.
마침 나오는 군. 나는 어둠 속에서 멈춰서서 그곳을 주시했다. 욕실의 문이 열리고 그녀가 나왔다. 그리고 대담하게도 알몸이었다. 창문에 커튼이 쳐져 있지 않지만, 주변에 워낙에 인기척이 없는 곳이고 올 사람은 나 밖에 없기에, 그녀는 아이들을 재우고 나서 별로 가릴 생각도 하지 않고 보기 좋은 글래머러스한 몸매를 드러내며 거실로 나온다. 그리고 머리에 두른 수건을 풀어 남은 물기를 닦아내고 옷을 입는다. 브래지어는 차지 않고 팬티와 편한 바지와 티셔츠만…
그리 긴 시간은 아니다. 하지만 왠지 모르게 그 장면은 예전에 그 느낌을 되새기며 사람을 자극했다. 어둠 속에 숨어 내 집에서 알몸을 드러내는 외간 여자의 모습을 보는 것은 상당히 자극적이다. 나는 조금 자세히 관찰했다. 여전히… 가무잡잡한 피부와 글래머러스한 몸매는 여전했다. 시골 생활에 익숙해졌는지 세련된 맛은 더 사라지고 오히려 촌스러운 느낌이 들지만… 그것도 나쁘진 않았다. 꾸미지 않은 자연스러움이랄까? 아이를 둔 엄마임에도 마치 남자를 경험한 적이 없는 처녀를 보는 것 같은 느낌…
나는 짧은 유희가 끝나고, 적당히 어색하지 않을 만큼 시간이 흐르고 나서야 집으로 향했다. 오늘도 좀 찌질하지만 후회스럽지는 않은 구경이었다. 나는 마음 속으로 그것을 조용히 가라앉히며 집의 문을 열었다.
“아, 오셨어요? 좀 늦으셨네요.”
“아, 네… 부탁하신 장볼 것들 좀 사오느라… 먼저 주무시지 그러셨어요. 그냥 2층으로 가서 쉬면 되는데 저를 기다리신 건가요?”
“우와… 장봐주신 거 감사해요. 내일은 애들 좋아하는 것들 좀 힘줘서 만들어 봐야겠네요. 그리고, 어떻게 먼저 자요? 이렇게 심부름까지 시키고선… 저녁 아직 안드셨죠? 씻고 오세요. 저녁 준비해 드릴께요.”
나는 장바구니를 넘기고 조금 미소지으며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으로 향했다. 달달하다. 조금 전에 마음 속에 뒤엉킨 비릿한 욕망이 조금 가라앉는 것 같았다. 누가 보면 무슨 신혼 부부같이 보이는 모습… 조금 우월감이 느껴졌다. 그리고 딱히 원한이랄 것도 없는 처남에게 묘하게 이긴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이봐, 지금 네 여자가 당신에게 할 것을 나에게 봉사하고 있다고? 기분이 어때? 흠… 이렇게 생각하니 내가 너무 악당 같잖아. 소시민이 과하게 악역에 몰입했군. 나는 망상을 떨치며 샤워를 했다.
저녁을 들면서 나는 별다른 말을 하지 않았다. 말을 하는 것은 주로 처남댁이었다. 대부분의 이야기는 아이들의 이야기였다. 여기 와서 아토피가 씻은 듯이 나았고 표정도 확연히 밝아진 아이에 대해서 그녀는 묘하게 나에게 칭찬받고 싶어하는 것처럼 보였다. 나는 그것에 대해서 굳이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다행이네요. 좀 전에 잠든 태현이를 보니 아주 꿀잠을 자더군요. 서울에서 잠을 이루지 못하던 모습을 생각해보면 얼마나 다행인지… 이게 다 처남댁 덕분이에요. 항상 감사드려요.”
“어우… 아니에요. 감사라뇨. 제가 더 감사하죠. 고모부가 아니었으면 어떻게 되었을지 상상도 하고 싶지 않아요. 고모부 덕분에 지금의 삶에 안정을 찾았어요. 제가 시골 출신이라서 그런지 몰라도 저는 지금 사는 것이 참 만족스러워요. 고모부 덕분이에요.”
덕담이 오갔다. 저쪽은 순수한 감사를… 나는 조금 비릿한 욕망을 숨기고선… 이것도 나름 나쁘지 않았다. 목욕을 한 이후 은은하게 풍기는 왠지 자연향 같은 그녀의 향기를 맡으며, 그녀가 만든 저녁을 드는 것… 나름 남자로서의 충족감을 만끽하게 해줬다. 예전에 이혼한 아내에게서는 기대하기 어려운 호사이다. 저녁은 금방 끝났고, 나는 왠지 모르게 더 얘기하고 싶어하는 그녀에게 먼저 일어나겠다고 말하고 2층으로 올라갔다. 그녀는, 조금 아쉬운 표정을 지으면서도 더 말은 하지 않고 자리에 앉아 올라가는 나를 끝까지 바라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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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부
시골 생활은 의외로 할것이 없다. 특히나 거기 사는 사람은 몰라도, 나처럼 주말에만 오가는 사람에게는 더하다. 그것은 단점이기도 하지만 장점이기도 하다. 나는 다음 날 아빠를 보고 반기며 놀아달라는 아들과 그녀의 아이들과 놀아주며 시간을 때웠다. 그녀는 우리 가족의 식사를 챙겨준 다음에 밖으로 나갔다. 그녀가 향한 곳은 텃밭이라고 하기에도 과하게 넓은 밭이었다. 성실한 그녀는 왠지 집안일을 마치고도 쉬지 않고 주변에 일을 만들어서 했다. 오늘의 미션은 아마도 모종 심기인 모양이다.
거들어 주겠다고 말했지만, 그녀는 웃으며 나에게 아이들과 놀아달라고 말하고 밖으로 나갔다.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참 묘하게 성실하다. 그런데, 문득 하늘이 심상치 않은 것을 느꼈다. 흐린 하늘이 왠지… 비가 내릴 것 같다. 그리고 그 예상은 틀리지 않았다. 나는 아이들을 서둘러 집으로 들여보내고, 비가 오는데도 들어오지 않는 그녀가 일하는 밭의 한가운데로 향했다.
“왜 안들어오세요? 빗방울이 굵어져요. 어서 들어오세요.”
“아, 근데 어쩌죠. 모종을 심는 거 더 늦어지면 안돼요. 오늘은 반드시 다 심어야 시기를 맞추는데… 들어가세요. 얼마 안남았으니 제가 서둘러 하고선 들어갈께요.”
“비 다 맞잖아요? 무슨 고집이에요? 어휴… 그럼 같이해요. 보아하니 한명이 모종기 심고, 다른 한명이 모종 넣으면 좀 빨리 하겠네요. 모종기 주세요.”
“에? 괜찮아요. 고모부한테 그런 것까지 시킬 수는…”
하지만 나는 그녀에게서 억지로 모종기를 빼앗아서 들었다. 일 자체는 어렵지 않았다. 그냥 깊숙히 밀어넣기만 하면 되니깐. 그리고 그렇게 박아넣은 모종기에 그녀가 모종을 넣으면 하나 완성. 그렇게 우리는 분업을 하며 속도를 올려갔고, 만만치 않게 빗줄기는 굵어졌다. 이내… 우리는 흠뻑 젖었다. 그 와중에도 모종 심기를 멈추지는 않았지만, 나는 묘하게 시선을 끄는 것을 발견했다. 비에 흠뻑 젖어 몸에 달라붙은 그녀의 작업복… 조금 베이지색이어서 그런지 몰라도 묘하게 그녀의 글래머한 몸매가 젖은 옷을 통해 드러났다.
그리고 비에 젖어 달라붙은 머리와 얼굴도 조금 선정적인 느낌을 주었다. 것참… 촌스러워 보이는 외모에 작업복을 입었지만, 그래도 이렇게 비오는 상황이 되니 또 느낌이 다르네. 그리고 서울과는 다른 청량한 느낌을 주는 빗속에서 나는 비 냄새와 그녀의 체취가 또 묘한 느낌이었다. 체취라고 해봤자 땀냄새겠지. 하지만, 그런 빗속에서 풍기는 묘하게 달콤하면서도 청량한 느낌을 주는 여자 냄새가 사람을 기분좋게 만든다. 이런… 진정하라고. 모종심으면서 반응하는 이상한 사람으로 보이겠다.
나는 나 자신을 꾸짖으며 서둘러 일을 마무리 했다. 이내 작업은 마무리 되었고, 우리는 비를 피해서 집으로 들어왔다. 들어가면서 그녀의 뒤태를 다시 한번 보았다. 이제는 완전히 젖어서 몸에 확연히 달라붙은 옷, 작업복을 투영해서 흐릿하게 보이는 그녀의 피부와 드러난 몸매가 볼거리를 제공해주었다. 전에 수영복을 입은 모습도 봤고, 어제 밤에 나신도 봤음에도 불구하고 이건 또 이거대로 사람을 매료하는 묘한 구석이 있다. 그렇게 오전 작업은 마무리 되었다.
“어? 어디가세요?”
“어딜 가다뇨? 씻으러 2층에요.”
“아… 비도 많이 맞으셨는데, 1층 욕실에 욕조에 뜨끈하게 몸 담그시는 것이 좋지 않으시겠어요? 2층에는 샤워실만 있어서…”
이건 또 의외의 제안이네. 확실히 2층에는 욕조는 없지. 집에 들어와보니 아이들은 둘다 낮잠을 자고 있었다. 그래서 생긴 여유일까? 나는 조금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그러면 처남댁은요? 처남댁도 젖은 건 마찬가지시잖아요. 욕조에 몸을 담궈야 하는 건 피차 마찬가지 아닌가요?”
“아, 그래도 제가 할일 도와주시다 젖으셨는데 그럴수는… 먼저 쓰세요. 전 괜찮아요. 전 원래 몸에 열이 많아서 감기 잘 안걸려요.”
나는 그녀의 말에 조금 놀려주고 싶은 기분이 들었다.
“좋은 방법이 있습니다. 이렇게 하시죠. 둘이 같이 욕조에 들어가죠. 그러면 시간도 절약되고 물도 절약되니 최선의 방법이겠군요.”
그리고 내 말에 그녀의 얼굴이 붉어지고 눈이 커졌다.
“네? 네에? 아니… 그… 그건… 설마 진심은 아니시죠?”
“네, 농담입니다. 불쾌하셨다면 용서하세요. 그러니 고집부리지 마세요. 먼저 올라가서 씻고 내려오겠습니다.”
그렇게 말하고 나는 2층으로 가는 계단에 올랐다. 왠지 모르게 내 뒷모습을 그녀가 보고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샤워 부스에서 물을 틀고 씻으면서 문득 상상했다. 욕조 안에 그녀와 같이 들어가서 따뜻한 물에 몸을 담근 알몸의 그녀와 나. 왠지 모르게 그녀가 짓고 있을 부끄러운 표정이 머리속에 상세히 떠올랐다. 이거 안좋네. 역시… 아까전에 밭에서 너무 참았나? 나는 샤워기 물만으로도 치켜 올라간 것을 보면서 손을 가져갔다.
처음이었다. 머리 속으로 망상을 많이 하기는 했지만 실제로 그녀를 떠올리며 사정한 것은. 재밌네… 주관을 배제하고 객관적으로 봐도 아내나 세경이보다는 나을 것 없는 외모… 하지만 역시나 남자를 자극하는 건 단순한 미모가 아니라 소유욕과 정복욕인 걸까? 나는 사정하고 나서도 좀처럼 죽지 않는 나 자신을 보면서 그런 생각을 하였다. 그런데 그때였다.
“저어… 고모부. 갈아입으실 옷과 수건…”
벌써 목욕을 마친건가? 아니면… 내가 너무 길게 샤워한건가? 그때 문득 조금 악의적인 생각이 떠올랐다.
“아, 죄송해요. 지금 머리를 감던 중이어서… 앞이 잘 안보이네요. 문을 조금만 열고 건내주실 수 없으실까요?”
그냥 밖에다 두고 갈께요 라고 하면 많이 어색함. 하지만… 왠지 모르게 그녀는 그런 생각을 못했는지 굳이 욕실의 문을 조금 열고 그 틈으로 수건과 옷을 내밀었다. 나는 조금 묻은 머리에 거품 때문에 안보이는 것처럼 문에 조금 다가가 손을 뻗어서 그녀가 내민 것들 것 받아들었다. 그리고 봤다. 문틈으로 그녀가 얼굴이 붉어져서 고개를 돌리는 모습을… 역시 봤구나. 좁은 문틈이지만 내가 다 벗고 있는 모습을… 그녀의 시선에 나는 크게 내색하지 않으며 샤워를 마치고 내려갔다.
그리고 나서 서울로 돌아갈 때 까지는 별다른 일은 없었다. 왠지 조금, 그녀의 얼굴이 붉어보였고 나와 눈을 맞추고 보지 못한다는 것 같은 느낌 정도? 하지만, 역시나 난 내색하지 않고 서울로 가는 길에 올랐다. 조심해서 올라가라는 그녀의 모습이 마치 새색시가 남편을 멀리 출장보내는 것 같은 모습을 보았다. 하긴, 무리도 아니지. 지금 남편의 행방이 묘연한 상황에서 어쩌면 아직 활성화되지 못한 인연이라도 멀어지는 건 그녀에게 불안감을 남겨줄 것이다.
나는 그녀의 그런 불안감이 조금 더 고조되며, 그 반동으로 그녀가 다른 생각을 하면 재밌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서울로 올라왔다. 회사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구한 나의 원룸… 이제 주말도 끝나고 평일이 돌아오면 내 바쁜 일상도 시작된다. 이혼을 하고 나서 조금 불안함을 느꼈고 현실화 되었던 것이 남겨진 외로움이었다. 아내가 나에게 충실한 느낌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사람은 있는 것만으로도 타인에게 의미가 된다. 그런데 이제 돌싱남의 외로운 원룸생활이라… 근데 의외로 그렇지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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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부
다행스럽게도 주말은 방금 언급한대로 시골에 내려가서 명목상으로는 아들과 보내지만, 실제로는 내 불순한 망상을 구현하는 기묘한 동거인이 생겼다. 그리고, 평일에도… 의외로 외롭지는 않았다. 나는 도착한 원룸의 문을 열고 나를 외롭지 않게 만드는 상대를 보았다.
“조금 일찍 오셨네요?”
내 눈앞에 펼쳐진 광경은, 지저분한 돌싱남의 원룸이 아니라, 잘 정돈된 생활의 느낌이 풍기는 가정집이었다. 그리고 거기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는 것은 앞치마만 두르고 다른 건 아무것도 입지 않고 있는 나의 아내였다. 내 오피스 와이프, 세경이가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미소로 그녀의 인사에 화답하고 방으로 들어가는데 그녀가 나에게 다가와 내 목을 감싸고 얼굴을 파묻으면서 뭔가 달라붙었고 나는 그녀에게 물었다.
“뭐하는거야?”
“냄새 맡아요. 내 남자의 냄새… 그리고 거기에 같이 섞여 들어온 다른 냄새도. 시골 냄새, 자동차 방향제 냄새… 그리고, 여자 냄새. 어때요? 시골에 박아둔 촌스런 여자랑은 퓨어하게 뒹굴고 오셨어요?”
“우리 그런 사이 아니라니깐.”
나의 반박에도 그녀는 짓궂은 미소를 버리지 않고 오히려 내게 더 매달리고 나는 그녀를 안아들고 어린 아들과 놀아주듯이 침대에 내동댕이 친다. 그리고 옷을 갈아입을 틈도 없이 나를 지긋이 바라보는 그녀의 입술에 키스하고 앞치마 사이로 드러난 그녀의 몸을 터치했다. 그러면서 그녀에 대한 일을 떠올렸다. 내가 처남댁을 아들과 같이 시골의 집으로 보내서 생활비를 주며 살게 하고 나서, 그녀가 걱정한 것은 서울에서 홀로 지낼 나에 대한 것이었다.
나 역시도 상당히 피폐한 삶이 되지 않을까 걱정했는데, 의외로 그렇지가 않았다. 그녀를 내려보내고 원룸으로 이사온 이후에 그녀는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내 집으로 들어왔다. 그리고 마치 당연하다는 듯이 내 원룸에서 자기가 안주인인 것처럼 엉덩이를 붙이고 눌러 앉아 버렸다. 아마도 여태까지 기다려 왔던 건, 아무래도 내 아들에게 엄마에 이어 아빠의 부도덕까지 보여줄 수 없다는, 내 심리에 대해서 배려했던 것 때문인 모양이었다.
이제 아이가 시골에 내려가버린 이후에는 거칠 것이 없다는 것인가? 하지만… 나는 어처구니가 없었다. 내 입장에서는 뭐 그럴수도 있다고는 해도… 그녀의 입장에서 그게 어떻게 가능하지? 일단은… 남편이 있는 유부녀다. 하지만 그런 나의 지적에 대해서 그녀는 항상 그렇듯이 쿨하게 대답했다.
“물론, 저도 주말에는 남편 보러 지방에 내려갈꺼예요. 제가 여기서 머무는 건 과장님과 같이 출퇴근하는 평일에만… 여기 회사랑 가깝고 좋잖아요. 어차피 둘다 주말만 제외하고는 서로 아무도 없는 빈집에 들어가야 하는 불륜 커플. 그렇다면, 뭐하러 돈아깝게 월세를 두개나 돌려요? 그냥 하나로 합치는 것이 효율적이잖아요. 과장님도 그게 편하지 않으시겠어요? 좀 빌붙을께요. 원하신다면 월세도 반띵할께요. 있게 해주세요. 네? 오피스 서방님.”
“이거… 남편도 아는거야?”
나는 그것이 비겁하지만 심리적 방어기제가 되리라 여겼다. 하지만…
“네, 알아요. 누구라고는 안했지만, 룸쉐어한다고 했어요. 결혼 전부터 우리끼리는 서로 암묵적으로 뭘 의미하는지 정해놓고 동의하기로 했던 약속이에요. 그래서, 남편도 지금 지방에서 공사 기간 중에 다른 여자들이랑 같이 살림차리고 살고 있는거죠. 뭐, 전에는 너무 빠졌는지 과하게 집착하는 기집애가 있어서 손 좀 봐주기는 했지만… 아무튼 그래요. 그러니, 전혀 걱정하실 필요 없어요.”
요즘 애들은 다 이런가? 대화의 흐름을 쫓아가기 힘든 건 나이 탓인건지 아니면 성향 탓인건지 알 수가 없었다. 아무튼, 덕분에 그 녀석은 정말로 회사에서는 물론 집에서도 내 아내로서 깊숙이 들어와 버렸다. 처음의 당황스러움 이후의 감상은… 그래도 의외로 편했다. 별로 해준 것도 없는데 이상하게 나에 대해서 호감을 표하는 녀석이니깐, 항상 빈틈없이 회사에서 하는 것처럼 집에서도 살림을 잘 챙겼다. 그리고… 묘하게 설레는 기분이 있는 것도 사실이었다.
회사에서는 각진 안경에 틀어올린 머리 오피스 정장을 입고선 빈틈없는 반장 같은 녀석이 집에서는 머리도 풀고 렌즈를 끼고선 거의 반라에 가까운 자세로 애교섞인 느낌으로 앵앵거리는 것이 색다른 즐거움을 주었다. 확실히… 이 녀석 요부라면 요부라 할만한 자질을 제대로 갖춘 것 같다. 대체 무슨 산전수전을 겪으면 나보다도 한참 어린 녀석이 이런 경지에 오르는 걸까? 그것도 남자 마음을 제대로 홀리는 걸로 말이지. 숙련된 창부의 모습을 보여주는 녀석의 몸짓에 나는 쓴웃음을 지으면서도 그리 싫지 않단 생각을 하게 된다.
그렇게 밀린 주말 정사를 폭풍처럼 마쳤다. 시간은 벌써 12시… 이제 슬슬 자고 내일 출근을 준비할 시간이다. 요새는 동거하게 되다 보니 회사가 가까워도 출근 시간을 간격을 두고 가야 해서 의외로 배분을 잘해야 한다. 그리고 덕분에 항상 퇴근도 따로 하게 된다. 의외로 그 녀석은 집에 먼저 돌아와서 찌게를 끓이고 기다리고 있는 연출 같은 것에 집착이 있는 모양이다. 원래대로라면 남편이 받아야 할 서비스를 과하데 평일에는 독점하는 호사를 누리면서 불평할 입장은 아니겠지. 그래서, 다시 즐거운 평일의 시간을 기대하며 잠을 자려는데 그녀는 나를 냅두지 않았다.
“그래서, 같이 모종을 심었다라… 흐음. 무슨 신경숙 작가 작품의 한장면 같기도 하고…”
그녀는 의외로 내가 보내는 주말의 시간에 대한 관심이 많았다. 그래서, 내가 다녀오면 그간의 일을 상당히 상세히 알기를 원했다. 안그래 보이는데… 조금 의식하는 건가? 나를 보자마자 말하는 여자 냄새라는 묘한 뉘앙스… 그녀는 왠지 모르게 나에게서 그녀에 대한 흔적을 찾으며 그걸 깊이 음미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적대적이거나 과민하게 반응하지는 않는다. 다만, 하나하나 상세히 듣고 그것에 대해 생각을 하는 모습이었다.
기묘한 기분이다. 회사와 지인들에게는 알릴 수 없지만, 아마도… 우리 둘은 모르는 사람이 보면 나이 차이가 좀 나지만 사이좋은 신혼부부처럼 보이지 않을까? 아내와의 이혼 후에 전격적으로 파고들어 확보한 우위적인 위치에도 불구하고 내안에 있는 묘한 감정에 대해 그녀는 신경을 쓰고 있는 것일까? 하긴, 무리도 아니지. 나 역시도 종종 그녀에게서 그녀의 남편의 향기를 맡는다. 비흡연자인 내게 티나게 느껴지는 담배의 잔향… 그녀는 그걸 지우지 않고 나에게 안긴다. 어쩌면, 그것이 그녀가 남편에게 충실하다는 사실에 대한 그녀의 암묵적인 방어기제일지도 모르겠다. 그런 생각을 하며 대강의 이야기를 하는데 그녀가 미소지으며 말했다.
“아마도… 그리 오래 걸리지는 않겠네요.”
“뭐가?”
“순진한 시골 과부가 발정나서 과장님에게 달려드는 날이요.”
“어이어이… 과부 아니야. 처남 아직 안죽었어. 아마도… 그리고 발정나서 달려들다니 그건 또 무슨… 우리 그런 사이 아니라니깐.”
“네 알아요. 제가 왜 과장님을 모르겠어요. 겉보기에는 쑥맥같아도… 여자들 옴짝달싹하지 못하게 만들어 자기 의지로 달려들게 만들고 그걸 유유히 내려다 보며 즐기는 것이 과장님 수법이죠. 뭘 그렇게 놀란 표정 지으세요? 부정하실 셈이세요? 그렇게 노린 듯이 자기 필드에 끌어들여 놓구선 인내심을 가지고 장시간 조금씩 맛보고 계시면서…”
“세경아 나는…”
“무의미한 변명은 그만. 시간 낭비에요. 그러니… 앞으로 벌어질 일만 생각해보도록 하죠. 뭐, 이런 방면에 왕년에 전문가로서 얘기드리자면… 참 잘하고 있으세요. 별 다섯개 도장이라도 찍어드리고 싶네요. 그리고, 저쪽도 아마 슬슬 의식하기 시작했다고 보여요. 그래서… 아마도 제 예상이 맞다면 의식하지 못할지도 모르겠지만 저쪽도 나름 밑밥을 깔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다음번에 기회가 되면 한번 주변에 환경을 살펴보세요. 의외로… 재밌는 이야기를 들을지도 몰라요.”
무슨 소리를 하는지는 솔직히 따라가기 힘들었다. 하지만, 의미적으로 저 녀석이 나에게 서포트를 하고 있다는 것은 확실해 보였다. 나는 그녀의 하얀 등을 손으로 쓰다듬으며 물었다.
“뭐, 설령 그렇다고 치자. 그렇다면… 네 입장에서는 불쾌한 상황이 아닌가? 지금은 네가 내 아내로 여기 있는 거 아니었던가? 근데, 네 말을 들어보면 왠지 모르게 저쪽을 조금 도발하고 싶어하는 것 같은 기분이 드는데… 내가 잘못본건가?”
“잘못 본거 아니에요. 저는 과장님 아내로 여기 있고, 저쪽을 도발하려는 것도 맞고, 그런 상황에 과장님을 부추기는 것도 맞아요.”
“왜 그런 짓을 하는건데?”
나의 질문에 그녀는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이 말했다.
“그야 당연히… 재밌으니깐요. 그 정도 재미도 없으면 불륜 무슨 이유로 해요? 아, 이제 돌싱이시니 불륜도 아니지. 아무튼, 이건 나름 여자들의 유희에요. 거기에 대해 이해하시려고 해도 아마 불가능하리라 생각해요. 그러니… 그냥 즐기세요. 아마도 과장님이 손해보실 일은 전혀 없을테니깐요. 느긋하게 거기서 감상하시고 맛보시는 걸로 충분할꺼예요.”
나는 그녀의 말에 더 첨언을 하지는 않았다. 그러고 보면 참 묘한 상황이다. 아내와의 이혼 후 싱글이 된 나. 그리고 내 주변에 두 여자… 둘다 남편이 있는 유부녀다. 한명은 나에게 여과없이 애정을 표현하며 내 인접거리에 파고들었고, 다른 한명은 내 의도로 내 영역에 끌어들여져 나를 의식하고 있다고 한다. 이런 아수라장을 재밌다고 생각하는 이 녀석은 정말로 제 정신은 아니리란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나도 마찬가지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