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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아학...!"

'아휴 정말!!'

또다시 아빠가 자신의 비부를 애무해오자 유리는 이제는 화가 나려는 것을 느꼈다. 어째서인지 모르겠다. 분명히 지금 상대를 홀리고 있는 것은 자신 쪽인데 넘어가려고 하는 건 아빠가 아니니 말이다. 유리는 쌩긋 웃으며 아빠를 똑바로 내려다본 채 아빠의 손을 팬티 속에서 끄집어 내었다. 

"아빠. 아빠는 가만히 있어도 돼."
"응. 알았어."

고개를 끄덕인다. 유리는 눈을 한 번 꼭 감으며 한숨을 폭 내쉬곤 다시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아빠를 애무해가기 시작했다. 분명히 자신이 알기로 전희라는 게 아주 중요하다고 했다. 남친과 경험이 있는 윤지의 말을 들어보아도 남자는 이렇게 혀로 애무를 해주면 아주 좋아 죽는단다. 자신의 경우를 봐도 아빠가 만져만 줘도 정신을 못차리니 윤지의 말은 상당히 일리가 있었다. 그렇게 성지식이라고는 친구를 통해 들은 게 다인 유리는 그저 들은 말만 철썩 같이 믿고 있었고, 그녀는 다시 태현의 몸을 혀로 핥아대었다. 그리고, 태현의 손은 다시 유리의 팬티 속으로 기어들어간다. 

"아, 응..."

다시 아빠의 애무에 흥분으로 몸을 떠는 유리. 그녀는 이번에는 아예 단단히 마음을 먹었다. 

'그래. 누가 이기는지 한 번 해봐.'

유리는 더욱 정성껏 사랑을 다해 아빠의 몸을 핥았고, 태현은 간질간질거리는 느낌을 참으며 능숙한 손놀림으로 유리의 보지를 농락해갔다. 그렇게 아주 짧은 시간이 흘렀다. 

????...!

이미 흥건하게 태현의 손목까지 타고 흘러내리는 유리의 애액. 

"하악, 아아, 아앙, 아..그만..아빠..앙..."

처음 십수여 초는 비슷하게 갔지만 당연히 태현이 이길 수 밖에 없는 싸움이었다. 유리는 자신도 모르게 언제부턴가 아빠의 가슴에 얼굴을 묻고만 있었고, 태현은 한 손은 앞으로 끼워넣어 음핵을, 다른 한 손은 유리의 등을 넘어 맞물린 조갯살을. 그렇게 양손으로 유리의 보지를 애무하고 있었다. 이미 유리의 팬티며 잠옷 바지는 오줌을 지린듯 흥건히 젖어있었고, 태현은 손목이 뻐근해져 오는 것을 느끼면서도 목소리는 부드럽게 유리에게 사랑의 밀어를 속삭이고 있었다. 

"...유리야...기분 좋니...?"
"아..아아...하악, 아냐..이런 게..하악, 아앙, 아아아..."
"우리 유리는 어떤 모습이라도 사랑스러워..."
"시..싫어...그런 말 하면, 하악, 나, ...하아..나아..아아...아빠아..."

아빠의 목을 끌어안으며 절정을 향해 치닫는 유리. 태현은 얼굴 옆으로 다가온 유리의 귓가에 따스한 바람을 불어넣으며 딸의 귓볼을 살며시 입술로 깨물었다. 

"하악! 아아, 아, 아빠, 아빠아...나..이제..이제..."

그러자 유리가 엉덩이를 바들바들 떨며 들썩인다. 태현은 보지를 비비는 손길을 좀 더 빨리했고, 유리는 곧 아빠의 목을 으스러져라 끌어안으며 전신을 덜덜 떨기 시작했다. 

"하악..! 아..아학, 아아..아아앙......!" 

피슉, 피슉..!!

유리의 보지에서 투명한 애액이 마치 물총처럼 뿜어져 나온다. 태현도 유리가 이정도로 느낄 줄은 몰랐기 때문에 잠시 당황을 했고, 유리는 입을 벌린 채 비음 섞인 가쁜 숨을 몰아쉬었다. 

"하아, 흐응, 하아아, 하아악..."

아빠에게 전신을 찰싹 붙인 채 휘몰아치는 절정을 느낀 유리. 그녀는 그 뜨거운 순간이 지나고 난 다음에도 몸을 파르르 파르르 떨며 여운을 느끼고 있었다. 유리의 잠옷은 땀으로 축축했고 태현도 이마에 송골땀이 맺혀있었다. 

"기분 좋았니?"

아빠의 상냥한 물음. 유리는 억울한 얼굴로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아빠의 손길이라면 정신을 차리지 못하는 자신의 육체가 너무나 싫었다. 오늘 밤은 정말로 자신이 아빠를 즐겁게 해주고 싶었는데. 그때 태현이 유리의 등을 부드럽게 쓸어왔다. 

"아아...!"

그러자 유리가 전신을 한차례 더 떨었다. 몸 구석구석에 도사리고 있던 여운이 아빠의 손길에 한꺼번에 합쳐져 다시 조그만 절정을 만들어낸 때문이었다. 태현은 자신의 손길에 이다지도 쉽게 반응하는 딸이 사랑스러워 견딜 수가 없었다. 부드러운 손길로 애정을 다해 유리의 몸을 어루만져주는 태현. 반면 유리는 온 몸에 힘이 빠져버려 꼼짝도 할 수 없었다. 사실 아빠를 마음대로 애무한다는 상황에 빠져 유리는 그것만으로도 서서히 몸이 달아오르고 있었다. 그러니 그렇게도 쉽게 태현의 애무에 넘어갔던 것이다. 달아오른 몸에서 느꼈던 절정은 너무나 큰 것이었고, 유리는 지금 온 몸에 체액이 다 빠진듯 아빠의 위에 추욱 늘어져 있었다. 한편 태현은 가만 가만히 유리의 등을 어루만져주며 속으로 가는 한숨을 내쉬었다. 역시 오늘 아침 일이 너무나 충격적이었다보니 방금 전과 같은 유리의 애무(자신의 몸을 혀로 핥는)는 다소 쉽게 흘려넘기게 되어버렸다. 태현은 그것이 못내 씁쓸했다. 아빠가 되어가지고 딸에게 그런 애무를 시키다니, 유리에게 너무 미안하고 자신이 몹쓸놈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빠는...너무해."

그때 아빠의 부드러운 어루만짐에 자꾸만 행복감에 빠지려하는 것을 힘들게 참아내며 유리가 볼멘 음성으로 말했다. 태현은 의아한 얼굴로 되물었다.

"으..응? 왜...?"

유리는 입술을 꼭 깨물었다가 대꾸했다.

"왜 날 가만히 내버려두지 않았던 거야?"
"......"

유리의 삐진 음성에 태현은 문득 자신이 유리에게 이렇게 했던 이유를 떠올렸다. 유리의 사랑스러움에 빠져있다보니 행위 그 자체에 너무 몰입을 해서 이유 같은 건 잠시 잊어버렸었다. 태현은 애정이 가득 담긴 음성으로 유리의 머리를 쓸어주며 말했다. 

"아빠는...유리가 유리 자신을 좀 더 소중하게 여겨줬으면 좋겠어..." 
"......"

유리가 태현의 목을 꼬옥 끌어안는다.

"...날 좀 더 소중하게 여겨줘야하는 건...내가 아니라 아빠야......"
"......!"

태현은 두 눈을 꽉 감았다. 애틋한 딸의 목소리에 가슴이 찢어지는 것만 같다. 아빠가 자신을 정욕이나 처리하는 물건 정도로 치부했다고 생각했을 때 유리의 마음이 얼마나 아팠을까. 태현은 힘들게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렇지 않아 유리야...아빠는...아빠는, ...유리가 잘못 생각하는 거야......"
"......!"

유리의 어깨가 흠칫 떨렸다. 지금..아빠가 뭐라고 말한 것일까. 좀 더 소중하게 여겨달라는 자신의 말에 그렇지 않다니. 자신의 생각이 잘못되었다니. 유리가 눈물이 아른거리는 얼굴을 들어 아빠를 바라본다. 

"......??"

태현은 자신을 믿을 수 없다는 얼굴로 울먹이며 바라보는 유리의 얼굴에 당혹감을 금할 수 없었다. 뭔가 아주 슬픈 듯한, 그리고 충격을 받은...하지만 어째서인지 체념이 느껴지는 유리의 얼굴. 태현은 자신의 말이 또 잘못 전달되었음을 느끼며 가슴이 막막해져오는 것을 느꼈다. 어째서 자신은 이렇게까지 말주변이 없는 것일까. 왜 이렇게 머리가 나빠서 자꾸만 딸에게 상처를 주는 것일까. 
유리는 도로 서서히 고개를 숙여 얼굴을 아빠의 목에 묻었다. 

"...괜찮..아. 아빠가...지금 이만큼만이라두 나...사랑해줘도. 충분히 만족하고 있어......"

애달픈 목소리였다. 한편 태현은 자신에게 머리 끝까지 화가 나는 것을 느꼈다.

'머리를 굴려라 정태현. 왜 유리가 이런 말을 하는지 생각해내란 말이다.'

하지만 머리를 굴린다고 해서 뭔가가 떠오르는 것은 아니었다. 
태현은 조직 생활을 하던 오래 전부터, 안 되는 방법을 끝까지 붙잡고 있기보단 다른 방법을 통해서 원하는 것을 이루어내는 융통성 있는 성격을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그런 태현의 성격은 여기에서도 발휘되었다. 그는 자신의 어떤 말을 유리가 어떻게 받아들여서 저러는지를 짐작해내기보단 차라리 유리에게 자신의 솔직한 마음을 그대로 드러내기로 한 것이다. 

"...유리야."
"......"

다른 대답 없이 고개만 주억이는 유리. 태현은 한품에 쏙 들어오는 유리를 꼭 감싸안으며 애타는 심정으로 말했다. 

"아빠는 정말로 슬펐어."
"......?"
"유리가...유리를 사용한다는 그런 말을 했을 때 말이야."

유리는 아무런 말이 없다. 어떠한 움직임도 없었다. 그저 아빠의 품에 꼭 끌어안겨 있기만 할 뿐이었다. 태현은 계속해서 부드러운 음성으로, 하지만 간절하게 목소리를 이어나갔다. 

"아빠는 절대로 유리를 그렇게 생각하고 있지 않아. 사용이라는 말은 물건에나 쓰는 말인데, 어떻게 아빠가 유리를 그런 식으로 생각할 수 있겠어...?"
"......"
"...그리고...오늘 밤에 아빠가 유리 방에 찾아온 건 다른 이유 때문이 아니야. ......유리 너랑 같이 자고 싶어서...유리를 아빠 품에 꼭 끌어안고 자고 싶어서. ...그래서 온 거야......" 
"......"

아주 잠시간의 침묵이 흘렀다. 곧 서서히 고개를 드는 유리. 그녀의 얼굴은 살짝만 톡 건드려도 금세 울음을 터트릴 듯 울먹이고 있었다. 

"정말...이야? 정말루 나랑 같이 자고 싶어서...그래서 나 찾아온 거야? 정말루 날...그렇게 소중하게 생각해주고 있는 거야...?"

유리의 애절한 물음에 태현은 간절한 진심을 담아 고개를 살며시 끄덕였다. 

"흐윽.."

결국 흐느끼기 시작하는 유리. 

"흐아앙~~..."

아빠의 가슴에 와락 얼굴을 묻으며 유리는 울음을 터트렸다. 방금 전에는 솔직히 얼마나 두려웠는지 몰랐다. 아빠가 자신의 면전에서 자신을 소중하게 여기고 싶지 않다는 그런 말을 하다니. 그런데, 그게 자신의 오해였다는 것이 얼마나 다행스러운지 모르겠다. 게다가...어떻게 아빠는 이렇게나 자신을 잘 울리는 것일까. 아빠의 부드럽고 상냥한 그 목소리에 마음이 녹아내린다. 
유리는 아빠의 품에 꼭 안겨 그렇게 마음이 진정될 때까지 한참을 울었다. 한편 그런 유리를 안고 있는 태현의 얼굴에는 다행스러움과 함께 따스한 미소가 자리잡고 있었다. 





아빠는 아빠의 베개를 베고 있고, 자신은 아빠의 팔을 베고 있다. 그래서 유리는 행복했다. 아빠가 방문 밖에 베개를 놔두었던 것으로 보아 아빠가 거짓말로 자신을 달래준 게 아니라는 사실이 증명되어 기뻤고, 그 덕분에 지금 이렇게 함께 한 침대에서 잘 수 있어서 즐거웠다. 
그러나 불꺼진 방 안의 어두움 속에서 태현은 유리와는 정반대로 미간에 주름을 만들며 고심을 하고 있었다. 묵묵히 낮에 있었던 일을 떠올리는 태현......





"그..그럼 길수와 우철이가 죽지 않았단 말입니까?"

레스토랑 네잎클로버 뒷문. 태현은 담배 연기를 가늘게 뿜어내며 고개를 끄덕였다. 태현의 응답에 일순 얼굴이 환해졌던 현석은 하지만 금세 의아한 얼굴을 만들며 되물었다. 

"하지만 금강 형님께서는 녀석들이 죽었다고......"

말꼬리를 얼버무리는 현석에게 태현은 금강이 적어준 쪽지를 건내주었다. 태현에게서 쪽지를 건내받은 현석은 빠른 눈빛으로 쪽지에 적힌 글자들을 읽어내려갔다. <내일 오후 7시. 부산항 제3부두.> 짧은 메모였다. 현석은 눈썹을 살짝 찌푸리며 눈빛으로 태현에게 물음을 던졌고, 태현은 담뱃재를 튕겨버리며 말했다. 

"금강이 길수와 우철이를 도와주지 않았을 리 없지. 그는 길수, 우철이와 함께 인천에 갔었다."
"아..."

잠시 입을 멍하니 벌렸다가 곧 '역시 그럼 그렇지.'하는 얼굴로 시익 웃은 현석. 하지만 그는 곧바로 다음 말을 재촉하는 눈빛을 태현에게로 보내었다. 태현은 담벼락에 등을 기대며 말을 이었다. 

"하지만 그건 김형필의 함정이었어. 강남 연합을 일거에 헤치우려는 수작이었지."
"김..형필 말입니까?"

현석이 이빨을 빠드득 씹었다. 조직에 있을 때부터 내심 마음에 들어하지 않고 있었던 녀석. 하지만 태현이 그를 중용했기에 현석은 별말 없이 형필과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했었다. 그런데 지금 태현에게서 김형필이 아우들을 헤치우려는 함정을 팠었다고 하니 현석은 분노가 끓어오르는 것을 느꼈다. 하지만 태현의 말은 끝나지 않았다. 

"금강의 말에 따르면 놈들은 최소 사시미, 간부급은 권총을 소지하고 있었다고 한다."
"......총...말입니까?"

현석의 눈빛이 심각해졌다. 태현은 조금 고개를 끄덕였고, 현석은 주먹을 꽉 틀어쥐었다. 

"형님께서 은퇴하실 때 한국 건달계 전체에 총기소지금지령을 내리지 않으셨습니까?"

터져나오려 하는 화를 꾹꾹 눌러 참는 음성이었다. 태현은 피식 웃었다. 

"이미 8년이나 지나버렸다. 이빨 빠진 호랑이의 말을 들을 여우는 없겠지."
"......"
"어쨌든, 길수와 우철이는 김형필에게 끌려갔다고 한다. 쪽지에 적힌 곳을 통해 일본으로 보낼 예정인 모양이더군."

이어진 태현의 말에 현석은 도무지 이해를 할 수 없다는 낯빛을 만들었다. 

"일본으로요? 김형필에게 끌려 갔는데 일본으로는 왜 데려간답니까?"
"김형필은 야마구치구미와 연관되어있다."
"......!!"

현석의 눈동자가 번뜩 뜨였다. 태현은 그런 현석을 힐끗 보곤 다시 새로운 담배를 피워 물었다. 

...칙, 치익...!...쓰-읍...

"후우~우......"

한숨을 내쉬듯 담배 연기를 뱉어낸 태현은 그리곤 유람선에서 카나코가 들려준 김형필과 야마구치구미, 삼합회의 이야기를 말해주었다. 

"......저는..이해를 하지 못하겠습니다."

태현의 이야기를 듣고 난 현석은 머리를 긁적이며 답답한 표정을 지었다. 태현은 담배를 한 번 폐속 깊숙히 빨아들이곤 그 연기를 가는 실처럼 뿜어내며 잠시 생각에 잠겼다. 그런 태현에게 현석이 미간을 긁적이며 질문을 던졌다. 

"금강 형님 말로는 분명 삼합회는 아니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그 자객조차 상부에게서 거짓 정보를 들은 것이겠지."
"...그러면, ...그런데 금강 형님께서는 왜 우리에게 거짓말을 하신 거죠?"
"위험하다고 하더군."

태현의 간단한 대답에 현석은 한순간 입가에 따뜻한 미소를 떠올렸다. 

"금강 형님께서는...형님을 걱정하신 것이로군요. 그리고 형님께서는 금강 형님이 진실을 숨기고 있다는 것을 꿰뚫어보셨고요."

피식 웃는 태현.

"그는 속이 깊은 사내이지."

두 사나이 사이에 잠시간 대화가 끊어졌다. 먼저 입을 연 것은 현석이었다. 

"...정리를 해보자면, 삼합회는 이번 일에 관련이 없는 것이군요."
"음."

태현은 고개를 살짝 끄덕였고, 현석은 계속해서 자신의 생각을 말했다. 

"그리고, 원래는 김형필이 길수와 우철이를 어쩔 작정이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금강 형님의 개입으로 길수와 우철이의 행방이 형님께로 전해질 수 있었던 것이고요."
"아니."

태현은 이번엔 고개를 가로저었다. 

"문제는 그것이다. 김형필은 나에게로 금강을 보낸 것이었어."
"예...?"
"그렇지 않으면, 어떻게 금강이 길수와 우철이가 어디로 보내지는지 시간까지 알고 있었겠나."
"아......그렇군요."

자신의 생각이 짧았던 것에 쑥쓰러운 얼굴로 머리를 긁적이는 현석. 태현은 담배 연기를 한 번 빨아들였다 길게 뿜어내며 다시 입술을 열었다. 

"금강은 김형필과 직접적으로 접촉했었다. 김형필은 금강에게 전언을 통해 날 쪽지에 적힌 장소로 불러내고 싶은 마음이겠지. 하지만 금강은 그것이 너무 위험하다고 판단해서 처음엔 너와 나에게 거짓말을 했던 것이고."
"음, 음...아, 예."

현석은 태현의 말 한마디 한마디에 일일이 고개를 끄덕이며 머릿속에 엉켜있던 생각들을 정리해갔다. 하지만 태현은 현석의 머릿속에 다 정리되기도 전에 말을 던졌다.

"여기서 두 가지 의문점이 생긴다." 
"예?"
"첫 번째, 야마구치 타사부로는 어째서 자객을 통해 나에게 거짓정보를 흘렸는가, 그리고. 김형필은 왜 굳이 길수와 우철이를 일본으로 데려가려 하는 것인가."
"으..음......"

태현보다 좀 더 머리를 굴리는데 소질이 없는 현석은 침음성을 흘렸고, 태현은 '흐으음..' 콧김을 내쉬며 턱을 긁적였다.

"아니, 좀 더 파고들자면, 그게 정말로 거짓 정보인 것일까?"
"...예?"
"어떤 방식으로든 삼합회가 연관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는 없다는 말이다."
"......"

현석은 골치 아픈지 머리를 벅벅 긁었다. 조직에 있을 때야 형님의 이런 치밀함을 완성하는 것은 언제나 머리 좋은 김형필이었는데, 이제는 그가 적이라니 그것 또한 골치 아프다. 한편 태현은 문득 현석에게 내렸던 명령이 떠올랐는지 아우를 힐끗 쳐다보며 물었다. 

"행동대장들은 얼마나 연결되었지?"

태현의 물음에 현석의 입가가 시익 찢어졌다. 





"아빠?"

상념에 빠져있던 태현은 유리의 갑작스런 부름에 황급히, 따스한 이불 속에서 딸을 안고 있는 행복한 현실로 돌아왔다.

"으..응?"

유리는 숨소리를 들어보아 분명히 자고 있는 건 아닌데 한참 동안 아무 말도 없는 아빠에게 뾰루퉁한 음성으로 말했다. 

"무슨 생각해?"
"아..응, 아무 것도 아냐."
"피이...그래?"

유리는 좀 더 아빠의 품 속으로 파고 들었고, 태현은 부드러운 유리의 살결이 맞부대껴 오는 기분 좋은 감각을 느끼며 빙긋이 웃음 지었다. 그러다 순간 자신의 딸이 무척이나 총명함을 떠올린 태현. 그는 헛기침을 몇 번하곤 넌지시 운을 떼었다. 

"저...유리야?"
"응..."

아빠의 따스한 체취를 맡으며 유리는 노곤한 음성으로 대답했다. 자신의 그곳이 흘려낸 더러운 물도 아빠는 괘념치 않으며 다 닦아주었고, 갈아입으라고 속옷도 찾아주는 상냥함을 보여주었다. 그래서 지금 유리는 뽀송뽀송한 몸에 개운한 기분으로 아빠의 포근한 품 속을 마음껏 만끽하고 있었다. 
태현은 어떻게 말을 꺼내면 좋을까 잠시 생각하다 빙둘러 비유로 유리에게 질문을 던졌다. 

"아빠가 궁금한 게 있어서 말이야. 유리라면 대답해줄 수 있을 거 같은데......"

아빠의 말에 유리는 귀를 쫑긋하며 고개를 살며시 들어 아빠를 내려다보았다. 아빠가 자신에게 뭔가 도움을 요청하다니 유리는 잠도 확 달아나고 기분이 너무나 좋았다. 태현은 초롱초롱 거리는 유리의 아름다운 눈동자를 바라보며 천천히 입술을 떼었다. 

"음...갑이라는 사람이 있었어."
"응."

방긋 웃으며 고개를 까닥이는 유리. 유리가 귀 기울여 들어주자 태현은 한결 편하게 말을 이어갈 수 있었다. 

"그리고 갑과 을은 동료, 또 갑은 병과는 친구사이야. 그리고 정과 무는 나쁜 사람이고 기는 무의 부하야. 경은 앞선 모든 사람들과 대립 관계에 있는 사람이고."
"응, 응."

머리칼을 나풀거리며 열심히 고개를 끄덕이는 유리. 태현은 왠지 그런 유리가 사랑스러워 보여 그녀의 머리를 가만히 쓰다듬어주었다. 아빠의 부드러운 손길에 입꼬리를 살짝 올리는 유리에게 태현은 다시 말을 이어갔다. 

"어느 날이었어. 정은 을을 리치..아니, 해치우기로 마음 먹었어. 그래서 정은 무와 편을 먹었고, 무는 갑이 을을 도와주는 걸 막기 위해 기를 갑에게 자객으로 보내었지. 갑은 자객인 기를 처치했지만 기는 이상한 말을 갑에게 했어. 경이 을을 해치웠다는 거야. 그런데 갑이 을을 도와주러 갔던 병으로부터 들은 말은 을을 죽인 것은 경이 아니라 정과 무였다는 거야."
"음...응."

잠시 다른 곳을 보며 생각을 정리한 유리는 금세 고개를 까닥였다. 말을 돌려 말하는데 참 힘들었던 태현은 드디어 궁금했던 것을 유리에게 물어 볼 수 있게 되었다. 

"그러면, 왜 굳이 무는 기를 시켜서 갑에게 잘못된 정보를 전해준 것일까?"

태현의 물음에 유리는 푸훗, 하고 웃었다. 그리곤 귀엽다는 듯이 아빠의 볼을 만지작거리며 놀리듯이 말했다. 

"뭐야아. 우리 아빠 바보. 간단하잖아, 그런 건."
"응...?"

유리는 생긋 웃으며 답변을 내려주었다. 

"당연히 무는 기가 임무를 실패할 것을 대비한 것이겠지. 기가 임무에 실패해서 갑을 죽이지 못하더라도 최소한 자신들이 을을 해치웠다는 사실은 숨길 수 있으니까. 그러니까, 적어도 잘못을 경에게 떠넘길 수는 있다는 말이야. 게다가 경은 모두와 대립관계였다면서? 그러면 더 그럴싸한 얘기가 되겠지. 하지만 여기서 변수는 병이야. 병이 을을 도와준 덕분에, 뭐 아빠의 말을 들어보면 을은 결국 죽어버렸지만, 그래도 병은 진실을 알고 있는 유일한 사람이니까...음, 갑은 병에게 고마워해야 될려나? 아무튼, 병 때문에 정과 무의 음모는, 일단 목적은 달성했지만 그 계획은 틀어지게 되었고, 이젠 갑이 정과 무에게 복수할 차례겠네." 

말을 끝마친 유리는 이제 '나 잘했어?'하는 얼굴로 아빠의 칭찬을 기다리고 있었다. 하지만 태현의 시선은 유리를 향하고 있지 않았다. 

'복수......'

유리가 마치 자신의 앞날을 얘기해주는 것만 같아 씁쓸했다. 그리고,

'삼합회에게 책임을 떠넘기려는 수작이었군......'

얄팍한 술수다. 물론 자신은 그 간단한 것을 읽어내지 못했지만. 한편 유리는 또 아무런 말도 없이 자기만의 생각에 빠져버린 아빠를 흘겨보더니 그의 가슴에 도로 머리를 묻었다. 그러며 아무런 칭찬도 해주지 않는 아빠가 얄밉긴 했지만 그래도 이어서 떠오른 생각을 아빠에게 말해주었다. 

"그런데 거기서 끝은 아닐 거야."
"응...?"

이제야 대꾸를 해오는 아빠. 유리는 꿀밤 대신 아빠의 가슴에 입술을 살짝 맞추곤 말을 이었다. 

"정과 무는 갑에게 자객을 보낼 정도로 어느 정도의 치밀성을 가지고 있어. 그러니 굳이 경을 끌어들이려 것도 속셈이 있는 걸 거야. 말했듯이 정과 무는 치밀성을 가진 계획을 세웠고, 아무런 생각도 없이 경을 자기네들 싸움에 끌어들이진 않을 테니까. 응...다시 말하자면, 갑이 경과 싸우길 바란다는 것 정도?"
"......!"

유리의 말에 태현은 아까 낮에 현석에게 했던, 어째서 자신이 그에게 삼합회를 배제할 수 없다는 그런 말을 했던 것인지에 대한 이유를 이제야 알 수 있게 되었다. 자신은 그저 수상한 냄새를 맡았을 뿐인데 유리는 그저 비유 한 번으로 모든 것을 알아낸 것이다. 

'기특한 녀석...'

태현은 유리의 머리를 부드럽게 쓸어넘겨주었다. 한편 유리는 아빠가 이제야 기다렸던 반응(자신을 예뻐해주는 행동)을 보여오자 기분이 좋은지 방긋이 웃음 지었다. 태현은 왠지 속이 시원해진 기분으로 별 생각 없이 말을 내뱉었다. 

"그러면 이제 갑은 경을 신경 쓸 필요는 없는 거겠네?"
"응...글쎄?"
"......?"

유리는 별로 대단치 않은 음성으로 대꾸했지만 태현의 얼굴은 급격히 의아함으로 물들었다. 하지만 유리는 부드러운 아빠의 손길을 즐기며 곧바로 해답을 들려주지 않았다. 태현은 속이 타들어갔고, 그런 태현이 더 이상 참지(마치 다그치듯 이유를 재촉하면 유리가 이상하게 생각할 테니까) 못하고 반문을 던지려는 순간, 유리가 마치 그런 건 어찌되어도 상관 없다는 듯한 나지막하고 느릿한 음성으로 말했다.

"정과 무가 단지 거짓 정보를 흘리는 것만으로 갑과 경을 싸우게 만들려 했다는...응..그런 장담도 할 수 없고, 앞으로 어떤 방식으로든 정과 무는 갑과 경을 연결시키려는 시도를 할지도 모르니까."
"아......"

유리의 말에 태현은 한방 먹은 얼굴로 멍하니 입을 벌렸다. 직감. 왠지 모를 불안감이 전신을 휩싸는 것을 느꼈다.
한편, 아무리 총명하고 뛰어난 머리를 지니고 있는 유리라고 하더라도, 의식적으로 유람선에서의 일을 잊으려고, 기억하지 않으려고 노력하고 있는 그녀가 태현의 이야기를 통해 정을 김형필로, 무를 야마구치 타사부로로, 기를 카나코로, 경을 삼합회로 연결시키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그리고... 아빠의 따뜻한 체온에 감싸인 유리는 서서히 잠이 오려고 하는 것을 느끼며 흘러가는 음성으로 나직히 아빠에게 묻는다.

"그런데...이거..하아-품...응...누구 얘기야......?" 





{사..사신! 사신이오...!!}

유리가 아빠에게 안겨 편안한 행복감을 즐기고 있는 때로부터 수일 전. 
어둠에 휩싸인 선착장. 화물 컨테이너가 즐비한 그곳의 구석에서 진은 만신창이가 된 몸으로 눈앞의 사내에게 황급히 말했다. 도저히 끝날 것 같지 않던 구타는 말라붙은 피딱지 위로 다시 새로운 핏물이 흘러나오게 만들었고, 지금 진의 얼굴은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만큼 일그러져 있었다. 

{사신?}

진의 앞에서 고급스런 가죽의자에 앉은 채 시가를 피워물고 있던 거대한 덩치의 중년 사내는 한쪽 눈썹을 꿈틀 떨었다. 목을 타고 얼굴까지 올라와 있는 용문신은 안 그래도 흉악한 인상의 중년사내를 더욱 괴기스런 모습으로 만들어 놓고 있다. 중년 사내는 시가의 몸통을 혀로 낼름 핥으며 진에게 다시 물었다.

{지금 사신이라고 했나?}

진과 중년 사내의 주위를 빙 둘러싸고 있는 수십 명의 덩치들의 눈동자에도 놀람의 빛이 드리워졌다. 그들의 뒷편에는 한 때는 진의 부하였지만 지금은 차가운 시체가 된 검은 작업복 남자들이 뒹굴고 있었고, 중년 사내의 옆으로는 뚱뚱한 체구에 탐욕스런 인상의 중국인 남자가 무릎을 꿇고 이마를 땅에 붙이고 있었다. 여객선에서 납치된 백만장자 인질들은 어디에 있는지 보이지 않았다. 
중년 사내는 길게 땋은 검은 머리에 터질 듯한 근육질 체구가 옷 밖으로 고스란히 드러나는 젊은 남자에게 시선을 한 번 줬다. 그러자 근육질 남자는 다시 진의 허리를 세게 걷어찼다.

퍼억...!!

"커헉!!"

입에서 한웅큼의 피를 뿜어내며 진이 앞으로 철푸덕 쓰러진다. 중년 사내가 험악하게 일그린 얼굴로 진에게 다시 물음을 던졌다. 

{지금 사신이라고 했나? 응? 내 아들을 죽인 게 사신이라고?}

그때로부터 수시간 전. 진은 만족스런 얼굴로 왕펑을 만나고 있었다. 

"큭큭큭, 아쉽군. 화려한 불꽃 놀이를 놓쳐야 된다니 말이야."

진들이 탄 상당한 규모의 어선은 서서히 여객선으로부터 멀어지고 있었다. 진의 혼잣말(한국어)에 왕펑은 의아한 얼굴로 그를 쳐다보았다.

{음? 지금 뭐라고 하셨소?}

진은 시익 웃으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무 것도 아니오. 그보다, 미키로부터 선물은 잘 전달받았소?}
{아, 제법 질이 좋은 물건이더군요.}

왕펑은 뒤룩뒤룩한 살집이 잡힌 배를 문지르며 기분 좋은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왕펑은 그러다 이상하단 얼굴로 주위를 둘러보며 진에게 물었다.

{헌데, 현 대형께서는 안 보이십니다?}
{현?}

왕펑의 물음에 진은 유쾌한 웃음을 터트렸다.

{크하하하핫!! 그 녀석은 죽었소. 큭큭큭...안 그래도 제 멋대로 날뛰던 놈인데 잘 되었지.}
{......!!}

진의 대답에 왕펑의 얼굴이 꿈틀 떨렸다. 하지만 유쾌한 기분에 빠져 있는 진은 그런 왕펑의 얼굴 변화를 눈치 채지 못했고, 왕펑은 떨리는 음성으로 진에게 되물었다.

{현..대형께서는 진 대형의 친우이시지 않으셨습니까?}
{친우?}

진은 피식 웃으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출신도 모르는 작자가 단지 실력이 좀 좋아서 데리고 다닌 것일 뿐. 별로 마음에 드는 녀석은 아니었소이다. 녀석도 나와 있으면 재미가 있으니 내 뒤를 똥개처럼 졸졸 따라다녔었지. 큭큭.}
{아...아아. 그렇..군요.}

왕펑은 알겠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거리며 진의 눈치를 한 번 살피곤 태연한 얼굴로 진에게 말했다.

{허, 흠. 그럼 저는 물건 좀 맛보러 가야겠습니다.}
{아, 뭐. 좋을 대로 하시오.}

왕펑은 금세 배 안으로 들어갔고, 진은 배의 난간에 팔을 기댄 채 즐거운 얼굴로 멀리 보이는 초호화유람선에 시선을 두었다. 그런 진에게 미키가 다가온다.

{대장.}
{음?}

진은 모든 일이 잘 마무리된 것 때문인지 너그러운 얼굴로 미키를 돌아보았다. 미키는 주변을 둘러봐 주위에 아무도 없음을 확인하곤 시익 웃으며 진에게 말했다. 

{일이 잘 풀려서 다행입니다.}
{큭큭큭, 그래. 이제 저 인질들한테서 돈만 잘 뜯어내면 되는 거야. 뭐, 그 일은 금융전문가인 왕펑이 알아서 해주겠지만.}

미키는 싱글거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예. 흐흐흐. 그리고, 현 녀석 일도 잘 처리되어서 다행입니다. 사실 좀 난감했거든요.}
{뭐? 난감했다고?}

진은 피식 웃으며 미키의 팔을 턱, 쳤다. 

{보기보다 소심한 남자로군, 미키. 현 녀석은 조무래기야. 사신이 놈을 대신 처리해주긴 했지만, 뭐 그건 우리가 수고를 한 번 던 것 정도일 뿐이라고. 현 같은 놈이야 약 좀 먹인다음에 죽이면 그만인 녀석인걸 뭐.}

미키는 대범한 대장을 경외의 눈빛으로 바라보곤 능글거렸다.

{그건 그렇다 쳐도, 현 놈은 우리에게 보너스였군요.}
{큭큭, 그래. 놈을 죽이는 것만으로 2천만 달러나 받게 되었으니 말이야.}

진은 그러더니 마치 떡고물이나 바라고 있는 듯한 미키의 얼굴 표정을 보곤 피식 웃으며 말을 던졌다.

{아호나 다케시가 죽어버렸으니, 보너스의 절반은 네 차지다 미키.}
{어, 정말입니까?}

미키의 얼굴이 급격히 밝아졌다. 진은 빙긋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고, 미키는 떨리는 손길로 담배를 피워물곤 헤헤거리며 담배를 쪽 빨아들였다 연기를 내뱉었다.

{...참, 그런데. 현을 암살하란 의뢰를 한 건 누구입니까?}

진은 시익 웃으며 대꾸했다.

{그걸 비밀로 하는 것까지 합쳐서 2천만 달러다. 이봐 미키. 내 장사의 모토가 뭔지는 알고 있겠지?}
{흐흐, 예. 바로 신용입죠.} 





{저..정말이오! 사신이 현을 죽였소..!!}

진은 허리가 끊어지는 고통을 느끼면서도 중년 사내에게 애걸했다.

{내..내가 직접 봤소이다! 현을 도와주러 달려갔을 때는 이미 사신이 현을 죽이고 난 뒤였소...!}

진의 피 반 눈물 반의 호소에 중년 사내는 시가를 씹어물며 고개를 천천히 숙였다. 그리곤 큼지막한 손으로 자신의 머리칼을 부여잡는다.

{......사신. ...사신이라고......}

중년 사내는 그렇게 혼잣말을 중얼거리더니 자신의 뒤에 서 있는 인텔리적인 느낌이 묻어나는 왜소한 체구의 남자를 힐끗 돌아보았다. 

{사신이 정말로 그 배에 탔었는지 알아봐라.}
{존명.}

부하가 급히 몇 명의 수하를 데리고 어디론가로 떠나가고, 중년 사내는 진을 응시하며 혼잣말처럼 말했다.

{그 놈은 내 첫째 아들을 죽였었지. 그런데 이번에는 둘째 아들이라......}
{저, 저는 현이 당신의 아들일 거라고는 정말로 생각조차 못했습니다...!}

진은 이마를 땅에 박으며 황급히 말했다. 진은 지금 정말 돌아버릴 것만 같은 기분이었다. 단지 조무래기 싸움꾼인 줄 알았던 녀석이 사실은...

{그렇겠지. 네 놈이 그 사실을 알았더라면 인질이고 뭐고 내 아들이 죽은 순간 배에서 뛰어내렸을 테니까 말이야. 삼합회의 태부(太父)인 나의 아들의 죽음을 내버려둔 죄는 차라리 물고기밥이 되는 것이 더 나을 정도로 고통스런 벌이 뒤따른다는 것을 모르고 있지는 않을 테니까.}
{사..살려, ..살려주십시오...!!}

진은 마치 오체투지를 하듯 이마를 마구 땅에 박았다. 중국인과 자주 일을 하다보니 진은 어느새 그들의 예법을 익히게 되었던 것이다. 중년 사내는 마치 벌레를 보는 듯한 시선으로 진을 쳐다보며 땅에 박혔다 들리는 진의 머리를 발로 밟았다. 땅에 짓이겨지는 진의 머리.

{그래, 그건 그렇고. 그 한국인들은 어쩔 속셈이었나.}

진은 중년 사내에게 머리를 밟힌 그대로 급히 대답했다.

{와..왕펑을 통해 저들의 모든 재산을 빼낼 생각이었습니다.}

중년 사내는 자신의 옆에서 아까부터 계속 땅에 이마를 가져다 붙이고 있는 왕펑에게 물었다.

{왕펑. 사실이냐?}

굵고 스산한 중년 사내의 음성이 자신에게로 향하자 왕펑은 두려움에 몸을 흠칫 떨며 너무나도 공손한 음성으로 대답했다.

{그..그렇습니다. 하..하지만 소인은 저자와 단지 몇 번 거래를 한 사이일 뿐이고 별다른 친분을 가지고 있거나 하지는..}
{안다. 왕펑.}

중년 사내는 손을 뻗어 왕펑의 두툼한 등을 툭툭 두드려주었다.

{너의 연락 덕분으로 내 아들의 죽음을 알게 되었으니까. 내가 너의 충의를 잊어버릴 것이라 생각치 말아라.}
{가..감사합니다! 만복이 태부 대인께 함께하시길 기원하나이다...!!}

왕펑은 이마를 몇 번이고 땅에 찍었다. 중년 사내는 다시 시선을 돌려 진을 내려다보며 그의 머리를 퍽퍽 짓밟으며 말했다. 

{그래. 이제 네 녀석의 벌을 정할 차례인 거냐.}
{큭, 커억..으..부..부디...부디 자비를...커헉...}

중년 사내는 이제 어쩔 생각인지 진에게서 발을 떼어내었다. 그러자 급히 부하 하나가 다가와 중년 사내의 구두에 묻은 진의 피를 소매로 닦아내었다. 중년 사내는 구두가 도로 깨끗해지자 의자에서 일어나 진의 앞에 쪼그려 앉았다. 그리곤 아직 천천히 타들어가고 있는 시가의 앞부분을 진의 목 뒷덜미에 가져다 대었다.

치이익...

{크아악!!}

살이 타들어가는 고통에 진이 울부짖는다. 그러자 그를 구타했던 근육질 남자가 꿈틀거리는 진의 몸을 꽉 부여잡았다. 중년 사내가 여전히 시가로 진의 살갗을 지지며 느긋한 음성으로 말했다.

{네 녀석이 데리고 온 한국인들은 내가 위로금으로 받아두겠다. 그리고, 내 아들의 죽음을 방치한 네 녀석은... 뭐, 아직 확실한 건 아니지만 그래도 정말로 사신이 내 아들을 죽였을 수도 있으니 일단은 손목 하나와 엄지발가락 두 개를 자르는 것으로 용서해주지.}

진은 고통 속에 몸부림치며 애걸했다.

{부..부디 자비, 크허..억...부디 자비를...!!}

진의 간청에 중년 사내는 인상을 화악 찡그렸다.

{자비? 지금 베풀어주고 있잖나.} 

기가 막힌다는 짜증섞인 음성이었다. 한편 진은 잔인한 삼합회 두목의 목소리를 통해 지금 그로서는 정말로 자신에게 자비를 베풀어주고 있는 것임을 알 수 있었다. 진은 부들부들 떨리는 주먹을 꽉 움켜쥐며 빠드득 이를 갈았다. 

'그 한국놈 새끼...'

이름은 정확히 기억나지 않았다. 하지만 진은 부하가 일러준 정보를 통해 그 한국인이 한국에서 상당한 지위의 조폭 우두머리임을 알고 있었다. ...그게 아마 퀸 엘리자베스호를 털려는 계획이 마무리 단계에 들어갔을 무렵이었다. 도대체 어디에서 정보가 세어나간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자신에게 한 한국인 남자가 찾아왔었다. 현찰로 무려 1천만 달러를 가지고. 그가 원한 것은 단 한가지. 최근 자신과 어울리고 있는 싸움꾼 현을 처리해달라는 것이었다. 의뢰가 성공하고나면 싱가폴 은행을 통해서 자신에게 1천만 달러를 더 송금해 준단다. 자신은 그 제의를 흔쾌히 받아들였다. 2천만 달러면 아버지라도 죽일 돈이니까. 그런데, 그랬는데 사실은 현이 삼합회 두목의 아들이었다니. 진은 그 한국인에게 완전히 속은 기분이었다. 아마 그놈은 현의 정체를 알고 있었을 것이다. 그래서 자기의 신분에 대해 누구에게도 발설하지 말라는 조건을 덧붙인 것이겠지. 
진은 이를 바드득 갈며 급히 머리를 굴렸다. 한편 벌써 중년 사내의 부하 하나가 커다란 작두를 가지고 왔고, 중년 사내는 볼 것도 없는지 이미 자리를 뜨고 있었다. 근육질 남자가 움츠리고 있는 진의 팔을 빼내어 작두 위에 올린다. 

{......!}

근육질 남자의 우악스런 힘에 의해 억지로 팔이 작두 위로 올려진 진이 앞뒤 생각할 것도 없이 황급히 중년 사내에게 외쳤다. 

{태부 대인!! 사실은 저에게 현 대형을 암살해달라는 의뢰를 한 자가 있었습니다!!}
{......}

중년 사내의 발걸음이 우뚝 멈춰섰다. 진의 얼굴에 화색이 돌고, 중년 사내는 한쪽 입꼬리를 올리며 천천히 진에게로 다가왔다. 

{호오, 아직 흥미로운 얘기를 가지고 있었군.}
{하..하핫! 예! 아주 흥미로우실 겁니다!}

중년 사내가 도로 가죽의자에 앉자 진은 이제 살았다는 얼굴로 급히 대꾸했다. 중년 사내는 빙글거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래. 하지만 얘기를 듣기 전에, 네 녀석만 흥미로운 것을 알고 있었던 죄값은 치루어야겠지?}
{......??!!!}

중년 사내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근육질 남자가 뺀치를 가지고와 진의 왼손 엄지 손톱을 집었다. 두려움으로 물드는 진의 얼굴. 한 부하가 능숙한 손놀림으로 중년 사내의 귀를 공손히 막아준다.

{뭐..뭘 하려는..!!}

...빠삭-!!

{크아아악!!!}

손톱이 뒤틀려 부러진 진이 왼손을 부여잡고 고통에 찬 비명을 내질렀다. 중년 사내는 시익 웃으며 허리를 굽혀 자세를 낮추어 진에게로 자기 나름의 경청하는 자세를 취해주었다.

{자. 이제 이야기를 풀어놓기가 한결 수월해졌나?}

모르는 정보를 전해듣기 전에 삼합회에서 흔히 사용하는 방법이었다. 정보가 전달되는 도중 거짓말을 하거나 의문점이 생기는 말을 하면 정보제공자의 손톱들을 차례차례 하나씩 더 뽑아낸다. 이것이 삼합회의 전통적으로 내려오는 정보를 전해듣는 올바른 방식이었다. 중년 사내는 전통을 중시했고, 진은 말을 꺼내기 전부터 두려움에 몸을 덜덜 떨어야 했다. 지금의 고문은 하나의 협박이었기 때문이다. 그것이 무엇에 관련된 것이든 정보를 숨기고 있던 자는 그 정보를 가지고 거짓말을 할 가능성이 있다. 진도 알고 있는 법칙이었다. 지금 삼합회의 두목은 자신에게 거짓을 말하지 말라고 주의를 준 것이다. 
진은 마른침을 한 번 꿀꺽 삼키며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