왼쪽 다리에서 느껴져오는 지독한 통증을 참아내며 태현은 유리와 함께 파티장으로 도착했다. 시간은 이제 17분밖에 남아있지 않았다. 태현은 다시 한 번 유리의 모습을 바라봤다. 피를 대충 닦고 옷을 입었지만 여기까지 아빠를 부축해 온다고 어느새 이마에 방울땀이 맺혀있었다.
쾅! 쾅! 쾅! 문열어어......!! 쾅! 쾅! 쾅! 쾅!
멀리서부터 들려오던 파티장 안에서의 소음이 바로 앞까지 다가오자 귀청을 시끄럽게 울려왔다. 태현은 홀의 측면, 카지노의 정면으로 통하게 되는 화려하게 장식된 커다란 철문의 잠금장치를 풀었다.
찰칵!
그러자 안에서 '열렸다!'는 사람들의 소리가 시끄럽게 터져나왔다. 태현은 한 번 쉼호흡을 하곤 유리를 뒤에 세운 채 문을 열며 큰목소리로 외쳤다.
끼이..익...
"모두 주목해주십시오!!"
문을 연 사람이 혹시나 테러범들이면 어쩌나 하는 생각으로 잔뜩 긴장한 얼굴로 웅성거리던 사람들은 문을 열고 나타난 사람이 테러범들에게 끌려가 꼼짝없이 죽은줄로만 알았던 태현인 것을 보곤 환호성을 내질렀다. 태현은 귓가로 어지럽게 들려오는 '그 사람이다'라든지 '사신이다!'같은 말들을 뚫고 유리의 부축을 받으며 걸음을 빨리해서 앞으로 걸어갔다. 사람들은 천천히 앞길을 터주었고 여전히 웅성거림으로 시끄러운 가운데 태현은 카지노 룰렛게임 테이블 위로 올라섰다.
"모두 주목해주십시오!!"
이제 무엇을 생각하는 것도 귀찮아진듯 유리는 얼굴에 그 어떤 걱정이나 불안 같은 것도 떠올리지 않으며 단지 아빠를 한결같이 애틋한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태현은 서서히 조용해지는 파티장 안으로 다시 목소리를 높여 말하기 시작했다.
"이미 들으셨을지도 모르겠지만, 지금 이 배에는 시한폭탄이 설치되어 있으며 현재 남은 시간은 15분 정도입니다!"
태현은 폭탄이라는 자신의 말에 각오했던 반응이 나오지 않는걸로 보아 역시 그 테러범 두목이 사실을 사람들에게 알려주고 떠난 것이라 생각했다. 역시나 그래서 사람들이 그토록 문을 열려고 소동을 일으킨 것이고.
"제가 약 한 시간 전에 직접 한국특전대와 통신을 했습니다! 그러나 특전대는 앞으로도 두 시간은 지난 후에 이곳에 도착할 예정입니다! 이미 테러범들은 구명보트를 모두 없애버린 채 40여명의 인질을 태우고 도주하였습니다! 배를 포기하고 바다로 뛰어들 경우 2000여명의 인원이 다 구조되리라는 것은 절대로 기대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모두가 힘을 합쳐 폭탄을 제거해야 합니다! 2000명이나 되는 사람이 힘을 하나로 합치면 반드시 이 위기를 헤쳐 나갈 수 있다고 믿습니다!"
웅성거리기 시작하는 사람들의 목소리들을 끊으며 다시 태현이 소리를 높여 말했다.
"먼저, 이곳에 경찰쪽에서 폭탄처리반에서 근무를 한 적이 있으시다거나 폭탄에 대하여 전문적인 지식을 가지고 계신분이 있으시다면 앞으로 나와주십시오!"
태현의 말에 파티장 안으로 적막감이 흘렀다. 사람들은 누가 앞으로 나설지 서로의 눈치만 보았고, 태현은 설마 2000명이나 되는 사람들 중에 그런 사람이 단 한 명도 없다고는 생각하고 싶지 않아서 다시 한 번 말하려했다. 그런데 그때 누군가가 천천히 앞으로 걸어나왔다. 태현을 비롯한 모든 사람들은 앞으로 나온 한 풍채 좋은 노신사를 바라보았고, 그 노신사는 빙그레 웃으며 유리에게 인사했다.
"이봐. 이쁜 아가씨. 참 멋진 아빠를 뒀군 그래."
노신사의 인사에 잠깐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던 유리의 얼굴이 금세 환해졌다.
"아, 할아버지 안녕하세요."
아까 카지노에 놀러왔을 때 유리에게 칩을 빌려줬던 할아버지였다. 노신사는 귀여운 웃음을 지으며 인사하는 유리에게 사람 좋은 웃음을 지어주고는 돌아서서 사람들을 향해 말했다.
"나는 한 대학병원의 은퇴 교수요. 나는 지금 우리를 위해 목숨을 아끼지 않고 싸워준 이 청년의 다리를 치료해주기 위해 나왔소이다. 생각해보시오. 나는 이 청년의 말이 매우 지당하다고 생각하오. 2000이 넘는 사람이 모두 한 마음으로 제각각의 능력을 발휘한다면, 해결하지 못할 문제는 없다고 생각하오. 모두 이 청년의 말에, 목숨을 걸고 싸워준 이 영웅의 말에 협조해주시길...이 늙은이는 간절히 부탁드리오."
노신사가 천천히 허리를 굽혀 사람들에게 간청했다. 사람들 사이에서는 점점 더 웅성거리는 소리가 커져갔고, 불과 몇 초의 시간이 지나지 않아 어떤 30대 남자가 앞으로 뛰어나왔다.
"경찰특공대 폭탄처리반 김윤식 경위입니다! 저라도 도움이 될 수 있다면..."
김윤식이라 자신을 소개한 순한 인상의 사내는 얼굴을 붉히며 그렇게 자신을 소개했고, 그 뒤로 네 명의 폭탄과 관련된 일에 종사하는 사람이 나왔다.
"아까 그 테러리스트 대장이 말하기를 모두 스물여섯개의 시한폭탄이 설치되어 있다고 그랬습니다."
태현은 윤식의 말에 곧바로 의견을 물었다.
"폭탄 처리는 어떤 방식으로 합니까?"
"보통 폭탄은 한적한 곳으로 옮겨서 폭파시키거나 물로 쏘아서 기폭장치를 날려버립니다."
윤식의 말에 잠깐 생각을 정리한 태현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모두를 향해 목소리를 높여 말했다.
"지금부터 40세 미만의 남성은 지하1층부터 그 아래층 전부를, 40세 이상의 남성과 전연령의 여성은 갑판을 포함한 1층부터 야외 수영장까지를 샅샅히 뒤져 설치되어있는 시한폭탄들을 찾아주시기 바랍니다! 승무원분들께서는 각 층에 대기하고 계시다가 폭탄이 발견될 경우 상호간의 무전 연락을 통하여 여기 다섯 분들 중 대기하고 계시는 분을 폭탄이 설치되어 있는 곳으로 안내해주십시오! 모두 서둘러주시기 바랍니다!"
간단 명료하게 임무를 지정해주는 태현의 말에 사람들이 파티장에서 우루루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어떻게 하실 생각이십니까."
전직 폭탄처리반 출신이라 자신을 소개한 50대 남자가 태현에게 질문했다. 태현은 룰렛 테이블에서 내려오며 홀의 무대 옆에 아직도 흠집하나 없이 그대로 전시되어 있는 포르쉐를 가리켰다.
"저기에 실어 배 밖으로 날려버릴 생각입니다. 야외 수영장 옆으로 150m 이상의, 자동차가 달릴 수 있는 자리가 있습니다. 폭탄을 손으로 던질 경우 위험도가 너무 크고 던질 수 있는 거리도 멀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한 번에 저기에 실어 날려버리는 것이 현재로서는 최선의 방법이라고 생각됩니다. 배에서 그대로 아래로 폭탄을 떨어뜨리는 방법도 생각해볼 수 있지만 그것은 폭탄의 성질에 따라 물에 닿는 순간 폭탄이 폭발할 수도 있기에 시도해보기 어려운 방법이라고 생각됩니다. 여러분들께서는 설치를 해제한 폭탄을 승무원이나 신중을 기할 수 있어보이는 사람을 통해서 야외 수영장으로 보내주십시오."
태현의 말에 다섯 명의 남자는 감명 받은 눈길로 태현을 바라보았다.
"존경..스럽습니다."
보통 사람이라면 일평생 돈을 모아도 살 수 없는 자동자를 상품으로 받았는데, 그것을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스스로 날려버리겠다니. 하지만 그것은 둘째 치고라도 스스로의 의견을 상대방에게 관철시키는 카리스마가 너무 압도적이다. 윤식의 말에 태현은 빙긋 웃으며 말했다.
"존경받을만한 사람은 못됩니다. 그보다, 모두 최선을 다해주시기 바랍니다. 승객들 2000명의 목숨은 여러분들에게 달렸습니다."
태현의 당부에 다섯 명의 폭탄처리반은 비장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4층 416호에서 하나가 발견되었습니다!"
그때 한 승무원이 뛰어오며 급히 말했고,
"제가 가겠습니다!"
윤식이 급히 이쪽으로 따라오라는 손짓을 하는 승무원을 뒤쫓아가며 외쳤다.
"4층과 3층은 제가 맡겠습니다!"
윤식이 첫번째로 떠나갔고, 금세 또다른 승무원이 뛰어오며 다급한 목소리로 말했다.
"2층과 6층에서 폭탄이 발견되었다는 연락이 왔습니다!"
"2층은 제가 가겠습니다! 1층과 갑판도 제가 맡을 테니.."
폭탄 처리의 의견을 물은 50대 남자는 따라오라는 손짓을 하는 승무원을 따라 급히 달려가려다가, 태현에게 허리를 깊숙히 숙이며 말했다.
"부탁드립니다!"
그는 승무원을 따라 급히 달려갔고 동시에 또 한 명의 폭탄처리반이 역시 달려가며 외쳤다.
"5층 6층은 제가 맡겠습니다!"
곧이어서 금세 모든 폭탄처리반이 각각의 위치를 정하며 모두 떠나갔다.
"이봐. 젊은이."
그때 노신사가 태현을 불렀다. 노신사를 바라본 태현은 고개를 숙이며 감사를 표했다.
"아, 예. 방금 전엔 말씀 감사했습니다."
노신사는 빙그레 웃으며 의자를 하나 끌어와 앞에 놔두며 말했다.
"여기 앉게. 박혀있는 총알은 빨리 빼내는 것이 좋아."
"괜찮습니다. 일단은..."
태현은 좋게 웃으며 거절하려 했지만 노신사의 뒤쪽에 서있는 유리가 도끼눈을 하며 자신을 노려보자 움찔하며 노신사가 권한 자리에 앉았다.
"부탁..드립니다."
노신사는 빙긋이 웃으며 품에서 조그만 천뭉치를 꺼내었다.
"아무리 대단한 아빠라도 딸에게는 꼼짝없이 붙잡혀 사는구먼. 허허허..."
태현은 얼굴을 붉혔고 유리는 노신사의 말이 기분 좋은지 입꼬리를 살짝 올리며 웃음 지었다. 또 다른 하나의 의자에 천뭉치를 펴놓은 노신사는 펼쳐진 그곳에 가지런히 놓여있는 간단한 수술용 도구들 중에서 조그만 집게와 메스를 꺼내었다. 그리곤 태현의 왼쪽 종아리에 묶여있던 런닝셔츠를 풀곤 바지를 끌어올리고 간이 수술을 시작했다.
"이쁜 아가씨, 이름이 뭐지?"
"정유리예요."
"음. 이름도 얼굴같이 이쁘구먼."
메스가 태현의 왼쪽 종아리에 천천히 칼집을 내기 시작했다. 태현은 수술이 길어질까 걱정되는지 초조한 얼굴이었고 노신사는 느긋한 얼굴이었다. 유리의 얼굴은 새파랗게 질렸다. 노신사는 그런 유리를 힐끗 보고는 빙긋 웃으며 말했다.
"유리양. 바(bar)에 가서 알코올 농도가 제일 센 것중에서 색깔이 유리양 마음에 드는 와인 한 병을 가지고와."
"예? ......예."
살을 헤집어 벌린 사이로 집게가 들어가는 것을 얼굴을 일그리며 바라보던 유리는 노신사의 말에 마지못해 대답하며 바(bar)로 뛰어갔다.
"색깔은 왜......"
태현의 물음에 노신사는 너털 웃음을 터트리며 말했다.
"허허허, 기왕이면 예쁜 색깔로 소독하면 좋지 않겠나."
아무튼 느긋한 손길과는 달리 노신사의 수술은 상상외로 빨라서 유리가 파란색의 이름이 긴 와인 한 병을 가지고 왔을 때는 벌써 태현의 상처부위가 다 기워진 후였다. 노신사는 유리가 가져온 와인을 보곤 이건 명품이라느니 어쩌니 하며 유리의 눈썰미를 칭찬하더니 태현의 상처부위에 와인을 한 번 쪼르륵 붓는 것으로 소독을 마쳤다. 거품이 부글부글 일어나는 것을 보고 유리가 입을 막은 채 눈망울에 눈물을 글썽였고, 노신사는 느긋하게 와인을 한 모금 마셨다.
"감사합니다. 어르신."
태현이 공손한 모습으로 노신사에게 허리를 숙여 감사의 인사를 했다.
"...감사해요. 할아버지."
유리도 아빠 옆에 서서 허리를 꾸벅하며 인사했다. 노신사는 사람 좋은 웃음을 지으며 손을 휘휘 내저었다.
"껄껄껄. 이 늙은이도 쓸모가 있다는 게 오히려 기쁜 일이지. 가서 일봐."
태현은 다시 한 번 노신사에게 허리를 숙여 인사하곤 유리를 데리고 홀의 무대로 걸어갔다.
"저기..."
그런데 그때 한 처녀가 걸어오더니 하얀색 티를 하나 내밀었다.
"저기...쇼핑점에서 일하는 사람인데요..."
조심스러운 목소리로 말하는 처녀에게 태현은 빙긋 웃으며 말했다.
"감사합니다. 사실 계속 벗고 있는 것도 좀 그랬는데...하하하."
태현은 처녀가 건낸 티셔츠를 입었고, 처녀는 얼굴을 붉히더니 저만치 뛰어가버렸다.
"치이......"
처녀의 뒷모습을 잠깐 흘겨본 유리가 삐진 얼굴을 했다. 태현은 유리의 머리결을 쓸어주며 물었다.
"왜 그래?"
"......아무것두 아니야."
태현은 피식 웃으며 유리의 손을 잡은 채 무대 옆의 스포츠카로 걸어갔다. 호주머니에서 키를 꺼낸 태현이 시동을 걸었고, 부아아앙~하는 소리와 함께 잠시 포르쉐가 사람들의 눈길을 끌었다.
"조금 아깝다. 그치?"
유리가 옆자리에 타며 그렇게 말했다. 태현은 천천히 고개를 돌려 딸을 바라보았다. 이렇게 아무렇지도 않은 목소리로 유리가 옆으로 앉는 모습이 새삼스럽게 너무나 소중하게 느껴졌다. 유리는 아빠가 진지한 표정으로 바라보자 약간 의아한 얼굴로 고개를 갸웃했다.
"왜..에?"
가슴이 아려온다. 태현은 천천히 차를 몰아가며 물기어린 목소리로 유리에게 말했다.
"......미안..해. 유리한테..빨리 가지 못한 거......"
"......"
아빠의 말에 유리는 천천히 고개를 숙이며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태현의 애타는 음성이 이어진다.
"하지만...아빠는......아빠는 말이야......"
"알아."
유리의 시선이 느껴진다. 태현은 눈망울 가득히 이슬을 머금고 있는 딸의 그 모습을 차마 볼 수 없어 앞만 바라보았다. 유리의 고운 음성이 옆으로 들려왔다.
"......그러니까......미안해 하지마."
유리는 다시 고개를 포옥 수그렸고 태현은 그래서 아무런 대답도 해주지 못했다. 한편 두 사람의 차가 지나가는 옆으로는 놀라운 모습이 펼쳐지고 있었다. 설치가 해제된 폭탄을 사람들이 일렬로 길게 서서 조심스럽게 야외 수영장으로 전달하고 있었던 것이다. 태현은 그 모습들을 감명어린 눈길로 바라보았다.
'저기에 실어서 한 번에 날려버린데.'
'아깝잖아. 저거 쟤가 미인대회에서 우승해서 탄 상품 아니야?'
'진짜 대단하다.'
주위에서 수근수근 들려오는 소리들을 흘려넘기며 태현이 모는 포르쉐는 야외 수영장으로 연결되는, 차 한 대가 넉넉하게 다닐 수 있는 폭을 가진 붉은 카펫길을 지나 조금 뒤 마침내 야외 수영장으로 들어섰다.
"선생님!"
태현이 도착하자마자 기다리고 있던 세 명의 청년들이 달려왔다. 태현은 차에서 내리며 물었다.
"예. 부르셨습니까."
태현의 앞으로 달려온 그들은 단결된 동작으로 허리를 꾸벅하더니 가운데 서있던 짧은 스포츠 머리의 남자가 대표로 말했다.
"저희들 세 명은 모두 라이프 가드로 일하고 있는 사람들 입니다. 그런데 저어...저기에 실어서 폭탄을 없애실 계획이라고 들었습니다."
"아...예. 하하. 벌써 소문이 퍼진 모양이더군요."
스포츠 머리 청년은 태현의 대답에 걱정어린 얼굴로 말했다.
"선생님께서 직접 몰고 가셔서 차에서 뛰어내리실 계획이십니까."
"예. 지금으로서는 달리 방법이 없기 때문에..."
"...이 정도 높이에서 뛰어내리시는 건 콘크리트 위로 뛰어내리시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청년의 말에 태현은 이미 각오한 일인듯 입술을 굳게 다물며 고개를 한 번 끄덕이더니 담담한 어조로 대답했다.
"하지만 이 방법.."
"코..콘크..리트요?"
그런데 어느샌가 뒤로 다가온 유리가 떨리는 음성으로 대화에 끼어들었다. 아빠의 옷깃을 꼬옥 부여잡으며 유리가 청년에게 물었다.
"그러니까...이 높이에서 콘크리트 땅 위로 떨어지는 것과 마찬가지..라는 말씀이세요?"
너무나도 진지한 음성으로 묻는 유리의 질문에 오히려 청년이 당황한듯 그는 손을 저으며 급히 말했다.
"마..말이 그렇다는 것이고, 당연히 여긴 바다인데 콘크리트 땅 위로 떨어지는 것과 똑같다..라고는 말할 수 없겠죠. 아무래도 물에 침투되면서 충격이 반감될 테니까요."
유리는 충격이 반감된다는 청년의 말에도 걱정이 되어 어쩔 줄 모르겠는지 눈물을 글썽이며 아빠를 올려다보았다. 스포츠 머리 청년은 유리의 모습을 얼굴을 붉힌 채 잠깐 넋놓고 바라보다가 곧 급히 정신을 차리며 태현에게 자신들이 온 목적을 말했다.
"그래서 말인데...선생님께서 바다로 들어가셨을 때 저희가 미리 대기하고 있다가 선생님을 구해내겠습니다. 부디 허락해주십시오!"
세 명의 라이프 가드는 동시에 허리를 90도로 숙이며 간청했다. 태현은 젊은이들의 이런 모습에 감동을 받은 얼굴로 급히 그들을 일으키며 말했다.
"오히려 제가 부탁드려야 할 일인걸요."
태현의 말에 라이프 가드들은 됐다는 듯이 서로를 보며 환하게 웃었다. 그때 그들에게로 승무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설치가 해제된 폭탄 네 개가 도착했습니다!"
태현은 하얀 천으로 둘둘 말린 폭탄을 한걸음 한걸음 조심조심 옮기는 승무원들 네 명을 보며 말했다.
"여기 조수석에 놔두십시오!"
시간을 확인한 태현. 이제 겨우 7분 남았다. 그때 스포츠 머리 청년이 태현에게 말해왔다.
"선생님. 뛰어내리실 때는 반드시 몸을 일자로 세우고 발부터 떨어지세요. 절대로 복부가 물표면에 부딪히면 안 됩니다."
태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명심하겠습니다."
"그럼, 저희는 먼저 가있겠습니다."
"예. 참, 폭발할 때의 여파로 파도가 밀려들 수 있으니까 배 옆으로 빠져있으시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스포츠 머리 청년은 걱정 받아야할 사람이 오히려 걱정을 해주자 마음에 감동이 밀려오는지 입술을 힘겹게 다물어 눈물을 참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예. ...명심하겠습니다."
라이프 가드들은 준비해왔던 잠수복을 챙겨서 급히 뛰어갔고, 태현은 다급한 눈빛으로 다시 시간을 확인했다. 앞으로 6분 35초. 마음이 점점 옥죄어오기 시작했다. 태현은 조수석에 차곡 차곡 놓여있는 폭탄들을 보았다. 모두 네 개. 스물여섯개중에 이제 겨우 네 개다.
"아빠......"
유리가 애타는 목소리로 태현을 불렀다. 하지만 태현은 마음이 급해서 유리에게 위로를 해줄 여유가 없는지 단지 유리의 머리만 한 번 쓰다듬어 주고는 다시 하나의 폭탄을 조심스럽게 조수석에 놓는 승무원을 향해 말했다.
"수고하십니다! 저기 끝의 난간을 제거할 수는 없겠습니까?"
"예! 지금 곧바로 사람을 불러오겠습니다!"
승무원은 곧바로 어디론가로 달려갔고, 태현은 한숨을 깊이 내쉬며 조수석으로 걸어갔다. 유리는 아빠의 뒤만 따라다녔고, 조수석으로 온 태현은 조심스러운 손길로 천을 살짝 풀어 폭탄의 시간을 확인했다.
앞으로 6분 17초. 다행히도 생각하고 있던 시간과 다르지 않았다. 그런데 태현의 눈에 그 순간, 폭탄들의 점멸되는 빨간불이 일정하지 않는 모습이 들어왔다. 불길한 예감이 든 태현은 다른 폭탄의 천을 다시 조심스럽게 풀어서 시간을 확인했다.
"......!!"
흠짓 커지는 태현의 눈.
'......3분 11초.'
파르르 떨리는 태현의 눈동자가 또다른 폭탄을 향하고, 그 폭탄의 천을 열어젖힌 태현의 눈에는 6분 3초라는 시간이 떠올랐다. 마른침을 꿀꺽 삼키는 태현.
'최소한...두 종류의 폭탄이 있다.'
태현은 유리의 어깨를 꼬옥 잡으며 다급한 음성으로 말했다.
"유리야. 여기 꼼짝말고...아니, 같이 가자. 빨리와!"
꼼짝말고..라는 아빠의 말에 두 눈망울을 점점 더 크게 뜨던 유리는 아빠가 같이 가자고 말하자 한숨을 내쉬며 급히 아빠가 이끄는 손에 딸려 달려갔다. 두 사람이 야외 수영장 입구에 막 도달했을 때 방금 전 승무원이 장비를 든 인부 세 명을 데리고 달려왔다.
"어,어디가십니까?"
당황한 승무원의 물음에 태현은 또다른 물음으로 대답했다.
"폭탄에 두 종류가 있다는 거 알고 계십니까?"
"예,예?!"
깜짝 놀라는 승무원. 태현은 인부들에게 재빠른 목소리로 말했다.
"지금 곧바로 차 한대가 지나갈 수 있을 만큼 난간을 잘라주십시오. 2분30초 이내에 완료해야 합니다!"
"예? 2분 30초요?!"
깜짝 놀라는 인부들에게 태현이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
"3분 이후에 폭탄이 터집니다! 빨리 가십시오!!"
태현의 말에 인부들은 당황한 얼굴로 어쨌든 죽을힘을 다해 야외 수영장 끝으로 달려가기 시작했다. 태현은 곧바로 승무원에게 말했다.
"지금 즉시 각 층의 승무원들에게 연락해서 시한폭탄의 시간을 확인하라고 하십시오."
<치직, 여긴 1층이다! 큰일났어! 남은 시간이 3분인 시한폭탄이 발견되었다!>
그때 승무원의 무전기로 다급한 음성이 터져나왔다. 승무원은 급히 무전기의 발신 버튼을 누르며 말했다.
"여긴 야외 수영장이다! 지금 당장 각 층의 승무원들은 운반되고 있는 시한폭탄의 시간을 확인하여 보고하라!!"
승무원의 말에 몇 초 뒤 연이어진 무전들이 연속해서 들어왔다.
<여긴 지하 2층! 여기도 남은 시간이 3분도 안 되는 폭탄이 발견되었다!>
<여긴 FCF(first class floor)! 남은 시간 6분인 폭탄 운반 중! 아직 3분짜리는 발견되지 않았다!>
<5층이다! 폭발까지 2분49초 남은 폭탄 세 개를 운반 중!>
태현은 이를 사려물었다. 폭탄은 두 종류인 것으로 예상된다. 태현은 세 명의 승무원이 차에 폭탄을 싣는 것을 보며 주먹을 꽈악 쥐었다. 결단을 내려야한다.
"무전기를......"
태현은 승무원에게서 무전기를 받아들어 발신 버튼을 누르며 말했다.
"정태현입니다. 각 층의 승무원들께서는 폭탄 운반을 중지하시고 현재까지 확보된 폭탄의 수량을 보고해주시기 바랍니다."
태현은 차로 도로 돌아갔다.
"아..아빠! 어쩔려구 그래?"
유리의 목소리를 애써 무시하며 태현은 무전기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여긴 지하3층입니다! 지하4층 기관실의 것을 포함한 모든 폭탄을 윗층으로 운반 완료!>
<지하 2층입니다! 현재 확보 수량 두 개!>
<1층입니다! 갑판에는 폭탄이 설치되어있지 않았으며 현재 확보 수량 세 개!>
<지하 1층! 모든 폭탄 윗층으로 운반 완료!>
<여긴 3층! 운반 중인 폭탄 다섯 개!>
<여긴 2층! 모든 폭탄 윗층으로 운반 완료했습니다!>
<5층입니다! 한 개가 추가되어 확보 수량 모두 네 개입니다!>
<여긴 4층! 확보 수량 모두 세 개입니다!>
<여긴 6층! 폭탄 네 개 운반 중!>
태현은 급히 차의 시동을 걸며 유리에게 물었다.
"유리야. 4 더하기.."
"모두 스물여섯개야. 여기 있는 것까지 합쳐서."
유리의 대답에 빙긋 웃으며 고개를 끄덕인 태현. 그는 애틋한 애정이 담긴 눈길로 유리를 바라보며 말했다.
"유리야. 저기 옆으로 비켜서서 기다려. 아빠 금세 돌아올 테니까."
"어..어디 가려구? 나두 데려가!"
급히 자신도 차에 올라타려고하는 유리를 보며 태현이 힘겹게 꺼낸 화난 목소리로 말했다.
"기다리고 있어!"
유리는 아빠의 음성에 움찔 놀라며 아빠를 바라보았다. 태현은 이슬을 머금은 눈망울로 자신을 바라보는 유리에게 입술을 꽉 다물며 자꾸만 가슴이 아려오려는 것을 참은 채 말했다.
"위험하니까 저리로 비켜서있어. 아빠 금세 올 테니까. 알겠지?"
점점 물기가 묻어나는 태현의 음성. 유리는 힘겹게 고개를 주억이며 옆으로 걸어가서 슬픈 눈길로 아빠를 바라보았다. 태현은 애써 유리의 모습을 눈동자에서 지워내며 그대로 핸들을 꺽으며 악셀과 브레이크를 밟았다.
끼이이이이익....! 부앙, 부아아아앙~!
시끄러운 타이어 마찰음과 함께 포르쉐가 제자리에서 방향을 반대로 돌리고, 그대로 앞으로 쏘아져갔다. 태현은 악셀을 밟으며 무전기에 대고 외쳤다.
<정태현입니다! 지금 즉시 운반을 중단하고 각층의 통로에 폭탄들을 모아주십시오! 제가 지금 수거하러 가겠습니다!>
한편 유리는 순식간에 사라진 아빠 모습의 잔영을 하염없이 바라보며 그 자리에 풀썩 주저앉았다. 그녀의 눈물로 젖은 눈동자가 천천히 움직여 아까 낮에 아빠와 함께 수영을 하려 잡았던 자리를 눈에 담았다. 그때만 해도 아빠와 즐겁게 수영을 할 생각으로 즐겁기만 했었는데. 유리는 무릎을 모아 끌어안으며 손목시계를 보았다. 이제 남은 시간은 2분 30초도 안 된다. 유리의 눈시울이 더욱 붉어만 졌다.
"......죽어야..된다면......"
고개를 포옥 수그리며 무릎 사이에 얼굴을 묻는 유리.
"흐윽..."
애달픈 목소리가 새어나왔다.
"...같이...죽고 싶어...흐으..윽...혼자만...살아남기 싫어......"
한편 같은 시간. 태현의 포르쉐는 아래층을 향해 무서운 속도로 달리고 있었다.
끼이이이이익!!
커브길을 돌기위해 태현이 브레이크를 잡자 붉은 카펫이 타이어에 밀려일어났다.
부앙, 빠아아아앙~!
커브를 돌자 다시 급발진을 하는 태현. 잠시 후 그는 지하1층 창고에 도착했다.
"빨리 실으십시오!"
미리 얘기 되었던 대로 지하2층 것을 지하1층으로 옮겨놓고 대기하고 있던 승무원들은 조심스럽게 폭탄을 조수석에 실었다. 태현은 곧바로 방향을 돌려 정방향으로 차머리를 바꾸곤 즉시 윗층을 향해 출발했다.
부앙, 부아아아앙~!
사람들이 휙휙 스쳐지나간다. 걱정이라든지 불안, 기대. 온갖 사람들이 온갖 표정을 지은 채 바라보았다. 하지만 그 사람들의 얼굴에는 하나같이 희망이라는 존재가 숨어있었다. 그 얼굴에 책임감을 느낀다. 태현은 온정신을 집중해 죽음의 폭탄들을 운반했다.
......부아아아앙...!!
유리의 귀가 번쩍 뜨였다. 고개를 급히 들며 스포츠카의 배기음이 들려오는 곳을 바라보는 유리. 하지만 아직 아빠는 나타나지 않았다. 유리는 다급한 눈길로 시간을 확인했다.
"......!!"
그녀의 눈동자가 파르르 떨린다.
'7..초......'
부아아아앙~! 빠아아아아앙~!
점점 더 가까이로 시끄럽게 울려오기 시작하는 스포츠카 소리에 유리가 벌떡 일어났다. 이제 지척에서 들려오는 자동차 소리. 유리가 떨리는 발걸음을 앞으로 한걸음 내디뎠을 때,
빠아아아아아...아아아아앙....!!
세찬 바람이 유리의 머릿결을 흩날리며 은색 물체가 유리의 앞을 스치고 지나갔다. 파르르 떨리는 눈동자로 순식간에 저 앞으로 멀어지고 있는 아빠의 차를 보는 유리.
한편 같은 시간. 태현은 다급한 눈길로 일부러 시간이 보이도록 천을 풀어놓은 채 놔뒀던 시한폭탄을 흘깃 보았다.
'4초...!!'
앞에서 인부들이 잘라낸 난간을 아래로 던지며 몸을 피하는 모습이 보였다. 이제 난간이 잘려 없어져 앞으로 검은 바다밖에 보이지 않는 야외 수영장의 끝이 바로 눈앞으로 들어왔다. 알피엠은 레드존을 친다.
드륵, 빠아아아앙~!
마지막 기어 변속을 하며 태현이 온힘을 다해 악셀을 밟았다. 그리고 바로 이어진 다음 순간, 은빛 아름다운 곡선의 포르쉐는 검푸른 바다를 향해 날아올랐다. 태현의 머리카락이 산발이 되어 흩날린다. 서서히 포물선을 그리며 아래로 향하는 포르쉐와 시트를 밟고 힘차게 뛰어오른 태현 사이의 거리가 점점 멀어지고, 금색 달빛을 검은 그림자로 물들이며 추락하던 태현은 두 팔을 들어 얼굴을 가렸다.
콰아아아아아아아아아.....!!
엄청난 폭발을 일으키며 포르쉐는 바닷물속으로 추락해 들어갔고, 태현의 몸은 폭발의 여파로 허공에서 뒤로 밀려나며 떨어지다 커다란 충돌음과 함께 검은 바다 아래로 빠져들어갔다.
"하아..아...아빠...들어오고 있어..."
유리의 가는 허리가 앞뒤로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탐스러운 젖무덤을 유리가 스스로 어루만지며 아미를 찌푸린 채 아랫입술을 꼭 깨문다.
"흐으..응...기분...좋아...아빠..보고 있어...? 어차피..아빠는 나 안지 않을 거니까...하악, 아앙...그렇게 세게 하지마아..."
남자의 위에 올라타 있는 유리. 그녀가 앙탈스러운 목소리로 교태롭게 웃음을 날리며 남자의 배를 짚곤 엉덩이를 들썩였다.
"하악, 하아아..아앙, 하아..앙...좋아..흐으..응...더..세게...하악, 하아아..."
태현은 어쩌할 줄을 몰라하며 유리의 어깨를 잡았다. 그러자 유리가 고개를 홱 돌려 노려보며 말한다.
"탕수육 먹고 싶어!"
"타..탕수육?"
당황하는 태현에게 유리는 조소를 지었다.
"어차피 바닷물이 차가워서 수영도 못해. 그러니까 상관하지마."
유리는 그러더니 다시 열심히 허리를 움직이며 애절한 한숨을 내쉬었다.
"하아..아아앙...나..하악, 나아...갈 것..같애...하아..으응..."
"유..유리야..."
태현은 다시 유리의 어깨를 잡았고 유리는 다시 고개를 홱 돌려 아빠를 노려보았다.
"억울합니다, 형님."
유리가 아니라 길수였다. 그는 닭똥 같은 눈물을 뚝뚝 흘리며 털썩 무릎을 꿇었다.
"어째서...어째서 우리를 버리신 겁니까 형님...어째서...으흐흐흐흑..."
"기..길수야! 나..나는..."
길수가 고개를 번쩍 들어 노려본다.
"병신 새끼...니 딸년도 죽여주마."
형필의 손에 잡힌 사시미가 유리의 목을 천천히 파고들고 있었다. 새빨간 피가 유리의 목에서 흘러나온다.
"아빠 때문이야."
유리가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아빠가 나 안아주지 않으니까. 아빠가 나 사랑해주지 않으니까. 그러니까 이렇게 된 거야."
형필의 사시미가 유리의 목을 꿰뚫었다. 서서히 허물어지는 유리. 태현은 죽을힘을 다해 유리를 향해 손을 내뻗었다. 하지만 이미 시한폭탄의 시간은 -1초를 표시하고 있다. 자신은 유람선을 내려다보고 있었고, 유리는 배의 난간에 서서 애타는 손길을 자신에게로 내밀고 있었다. 그리고 유리 옆에 세워져있던 포르쉐가 폭발했다.
"허어어억!!!"
태현은 두 눈을 번쩍 떴다.
"아빠! 깼어?"
고개를 돌려 보니 유리가 자신의 내뻗어 있는 손을 꼬옥 잡고 눈물을 글썽이며 바라보고 있었다.
"유리야...!!"
태현은 유리를 와락 끌어안았다.
"헉...헉...헉...헉......"
목메이는 가쁜숨을 몰아쉬며 태현은 눈을 감았다. 자신의 품 안에서 느껴지는 딸의 체온에 점점 안도의 표정을 얼굴에 띄우는 태현.
"...유리야......"
"안심해...여기 병원이야......"
유리의 따스한 목소리. 태현은 천천히 눈을 떴다. 그제서야 하얀 천장이 눈앞에 있고, 자신은 침대에 누웠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태현은 천천히 팔을 풀었고 유리는 눈물을 닦으며 생긋 미소 지었다.
"과로였데. 아빠 이틀이나 잠들어있었어."
태현은 손수건으로 얼굴의 땀을 닦아주는 유리에게 당황스런 음성으로 물었다.
"그때...그 다음엔 어떻게 된 거야...?"
아빠의 물음에 유리는 그때의 상황이 아직도 생생하게 생각나는지 눈물을 지으며 말해주었다.
"젠장!! 안 떠올라!! 라이트 비춰!!"
배의 후미는 사람들로 발디딜 틈이 없었다. 철컹, 하는 소리와 함께 커다란 라이트 불빛이 태현을 찾기 위해 바닷물속을 샅샅이 뒤지고 있는 라이프 가드들을 비췄다. 1분...2분...점점 시간은 흘러가고, 승객들 중에서 몇몇 사람은 기다리지 못하고 물속으로 뛰어들어 라이프 가드들과 함께 태현을 찾는데 동참했다. 그렇게 대략 5분 가량의 시간이 흘렀고,
"나왔다!!!"
라이프 가드들 중 한 사람이 물속에서 태현을 건져 내어 올라왔다.
우와아아아아아!!
그때 터져나온 함성은 그날 사람들이 지른 환호성 중에서 아마 가장 컸을 것이다.
"......라이프 가드가 인공호흡을 하는데 어찌나 걱정되던지...난 그냥 옆에서 엉엉 울고만 있었어......"
금방이라도 다시 엉엉 울 것 같은 분위기로 유리가 그렇게 말했다. 태현은 천천히 몸을 벽쪽으로 밀어 자리를 만들며 유리에게 말했다.
"일루 들어와."
아빠의 말에 유리는 맺혀있던 눈물을 닦곤 입가에 어여쁜 미소를 지으며 아빠 옆으로 들어왔다. 태현은 자신쪽으로 돌아 눕는 유리의 귀여운 얼굴을 어루만지며 말했다.
"그래서...특전대는 왔어? 그 테러범들은 잡혔고?"
"그 사람들은 아직 못잡았데. 인질들도 한 명도 못구했구. 특전대는 아빠 말대루 두 시간 정도 있으니까 왔어. 치...아빠가 벌써 다 해결해놨는데, 그 사람들 인천까지 보호해간다고 되게 생색 내더라."
태현은 테러범들이 끝내 도주에 성공했다는 사실에 착찹한 마음이 들었지만 그래도 유리에게는 빙긋 웃어주었다. 유리는 면도를 하지 않아 까칠하게 수염이 나있는 아빠의 턱을 살며시 매만지며 재미있다는 얼굴로 말을 이었다.
"근데에~인천에 도착하니까 오전 11시쯤이었는데 진짜 난리가 나있었다? 막 방송국에서 취재나오구 난리도 아니었어. 사람들 가족들도 나와서 엉엉 울고...참! 윤지가 친구들이랑 같이 와있었다고 했는데 난 엠뷸런스 타고 아빠랑 곧바로 여기로 온다고 애들 못 만났어. 헤헤~내 친구들 참 기특하지?"
태현은 언제 그런 악몽 같은 경험을 했었냐는듯 어느새 원래대로의 밝은 모습으로 돌아와 있는 유리의 모습을 보자 무척이나 다행스러웠다. 태현은 유리의 사랑스러운 얼굴을 쓰다듬으며 살짝 고개를 끄덕여주었다.
"응..."
유리는 부드러운 웃음을 짓는 아빠의 얼굴을 보곤 천천히 얼굴을 진지함으로 물들이며 말했다.
"아빠..있잖아..."
"응..."
유리가 천천히 얼굴을 움직여가 아빠의 입술에 살며시 키스를 했다. 살짝 입술만 갖다대고 떨어뜨린 유리는 애타는 음성으로 태현에게 말했다.
"나...거기에 갔다와서...아빠를 더 사랑하게 되었어......"
"......"
태현은 아무말 없이 유리의 머리카락만 쓸어주었다. 부드러운 감촉이 손가락 사이를 스친다. 유리는 아빠의 가슴에 얼굴을 묻으며 더욱 애타는 목소리로 말했다.
"더 이상 사랑할 수 없을 정도로 아빠를 사랑하고 있다고 생각했었는데...그랬는데......그런 일을 겪고 나니까...이제는 계속 계속...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아빠를 더 사랑하게 되어버린 것 같아......"
유리의 손이 천천히 태현의 환자복을 파고들어 아빠 등의 맨살을 어루만졌다.
"......그러니까...나아......"
살며시 유리가 고개를 들어 태현을 바라보며 말했다.
"더 노력할 거야. 아빠 마음에 들도록......"
태현은 아무말 없이 유리를 꼬옥 끌어안았다. 유리는 아직도 자길 여자로 봐주길 원하는걸까. 솔직히......모르겠다. 지금은 단지 그 끔찍했던 여행에서 무사히 돌아와주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유리에게 너무 고마웠다. 너무 고마워서......이젠 유리가 원하는 대로...유리가 하고 싶은 대로 아무거나 다 해주어도 상관없다는 생각까지 든다.
똑똑.
두 부녀는 한참을 그렇게 서로를 끌어안고 있다가 노크소리가 들려오자 포옹을 풀었다.
"내가...나갈게."
한 순간 유리의 애탄 눈동자가 마주친 아빠의 눈빛을 질책했다. 어째서 자신의 고백에 아무런 대답도 해주지 않았던 거냐며. 태현의 얼굴은 안타까움으로 얼룩졌고, 유리는 아빠의 얼굴이 어두워지자 재빨리 입가에 깜찍한 미소를 띄우며 아빠의 볼에 살짝 입을 맞췄다.
"아빠가 무사해서...나 너무 행복해."
유리는 아빠에게 생긋이 미소 지어주며 침대에서 내려가 문쪽으로 걸어갔다.
"누구세요?"
<어...유리냐? 나다.>
"현석 아저씨?"
유리가 활짝 웃으며 문을 열었다.
"아저씨~! 어라? 아줌마두 왔네?"
병실 안으로 들어온 사람은 문천장에 머리를 부딪히지 않으려 고개를 숙이며 들어온 현석과 그와는 정말로 어울리지 않을 정도로 눈부신 미모를 지닌 그의 아내 가희였다. 현석은 아직 태현이 깨어나지 않았을 때 한 번 병문안을 왔었기에 유리의 머리만 슥슥 쓰다듬어주고는 곧바로 태현쪽으로 향했고 가희는 반가운 얼굴로 유리에게 인사했다.
"잘 지냈니? 유리 넌 다친데 없구?"
"네에. 아, 감사합니다~."
유리는 가희가 내미는 과일 바구니를 받으며 그녀를 안으로 안내했다.
"형님......"
병실 안쪽으로 들어가자 유리와 가희의 시선에 떠오른 광경은 곰만한 덩치의 현석이 어깨를 추욱 늘어뜨리며 고개를 푸욱 숙이고 있는 모습이었다. 가희는 그 모습을 보곤 유리에게 조용히 손짓했다.
'우리는 나가자.'
유리는 의아한 얼굴로 일단 과일 바구니를 병상 옆의 테이블에 올려놓고는 가희를 따라 병실을 나갔다. 조용하게 문이 닫기는 소리가 들리고, 현석은 그 자리에서 털썩 무릎을 꿇었다.
"형님...죄송합니다. 형님께서 그런 위험에 처하셨는데 아무런 도움도 되어드리지 못해서...끄..흑..."
태현은 현석이 울먹이는 모습을 보곤 피식 웃으며 말했다.
"현석아. 누가 보면 나 죽은줄 알겠다."
"죄,죄송합니다 형님. 징그럽게 눈물이나 짜고...끄흑..."
급히 솥뚜껑만한 손바닥으로 눈을 덮은 현석이지만 마음이 북받쳐 오르는 것은 막을 수 없겠는지 그는 또다시 울먹이며 어깨를 흐느꼈다. 태현은 빙긋 웃으며 천천히 팔을 뻗어 현석의 등어리를 쓰다듬어주었다.
"난 괜찮으니까. 걱정마라."
따뜻한 태현의 손길에 그제야 힘겹게 고개를 끄덕이며 눈물을 닦아낸 현석. 태현은 그런 현석에게 갑자기 떠오른듯 걱정어린 목소리로 물었다.
"너에겐 자객이 찾아가지 않았나."
"자객..이요? ...자객이요?! 형님께 자객이 왔었습니까?!"
"쉬......"
깜짝 놀란듯 병실 안이 떠나갈 목소리로 말하는 현석에게 태현은 조용히 하라는 눈치를 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야마구치구미에서 두 명이 왔었다."
말을 맺으며 대답을 요구하는 태현의 눈빛에 현석이 주춤거리며 말했다.
"저,저에게는 안 왔었습니다."
"음."
다행이라는 얼굴로 고개를 끄덕인 태현은 다시 현석에게 물었다.
"길수나 우철이에게서 연락은 왔었나."
"아..아니요. 그 녀석들은 왜......"
"김형필이 배신을 했다."
"......?!!"
흠짓 커지는 현석의 눈. 태현은 간략하게 요점만 말했다.
"중국 진출을 노리는 야마구치구미에게서 협조의 대가로 홍콩을 약속받은 모양이다. 삼합회의 정예부대를 인천으로 불러들여 길수와 우철이의 손을 빌려 해치울 생각인 것 같아."
"삼합회의...정예부대요?"
현석의 눈에 걱정이 실렸다.
"그러면...혼마기혈대...말씀입니까?"
"글쎄...아무래도 그렇겠지."
"혼마기혈대..정도면, 강남 연합 가지고는 막을 수 있을 리가 없습니다!"
분개한 목소리로 말하는 현석에게 태현은 고개를 한 번 끄덕이며 말했다.
"음. 일단 길수에게 연락해봐라."
"예!"
현석은 벌떡 일어서서 휴대폰으로 길수에게 전화를 걸었다. 태현은 가만히 기다렸고, 잠시간 신호음만 들은 현석은 다시 한 번 전화를 걸었다. 그러나 역시 휴대폰은 묵묵부답이다. 불길한 예감이 든 현석은 천천히 침대에서 다리를 내려 걸터앉으며 불안감이 깃든 시선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태현을 보곤 이번엔 우철에게로 전화를 걸었다. 그러나 역시 신호음만 계속 들려온다.
탁...
"두 녀석 다 전화를...받지 않습니다."
휴대폰 폴더를 닫으며 현석이 가라앉은 목소리로 그렇게 말했다. 태현은 굳은 표정으로 현석에게 말했다.
"내가 연락해볼 테니까 넌 더 이상 개입하지마라."
"......예?"
현석이 억울한 얼굴로 주먹을 꽈악 쥐었다.
"어째서...입니까."
태현은 천천히 병상에서 내려와 테이블에 유리가 차곡 차곡 개어놓은 자신의 옷을 주섬 주섬 입기 시작했다.
"자객이 너에게는 찾아가지 않은 걸로 보아 다행히 넌 표적에서 제외된 것 같다. 그러니 괜히 개입해서 제수씨와 용우를 위험에 처하게 만들 필요는 없어."
셔츠의 단추를 잠그는 태현. 창문 블라인드의 사이를 타고 햇살이 비춰 들어온다. 뒤에서 굴곡진 현석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혼하겠습니다."
"......바보 같은 소리하지마라."
태현의 목소리가 냉랭해졌다.
쿵-!
뒤에서 현석이 무릎을 털썩 꿇는 소리가 울려왔다. 태현은 눈살을 살짝 찌푸렸고, 현석의 떨리는 목소리가 이어져온다.
"......형님께서...저에게 이러실 수는..없습니다."
"......"
"제가...형님께 어떤 충성을 바쳐왔는데...이러실 수는...없는 겁니다."
점점 더 서러움이 묻어나는 아우의 목소리에, 점점 더 태현의 얼굴은 그의 아려오는 마음을 말해주듯이 고통스러워졌다.
"현석아...난...네가 집에서 있었던 일을 말할 때의 얼굴이 좋다. 난 비록 일찍 잃어버린 행복이지만...너만은...사랑하는 사람과 둘만의 아이를 키우면서 함께 나이를 먹어가는 그 행복을 오래도록 느꼈으면 좋겠다."
"......싫습니다. ...형님께서 한평생 고생만 죽도록 하다가 돌아가신..우리 어머니 장례 치러주시고, 다 죽어가는 저...죽을 각오하시고..살려주셨을 때부터......제 목숨은 형님 것입니다."
"......"
태현은 천천히 돌아섰다. 현석은 고개를 푹 수그리고 있었고, 태현은 냉정한 목소리로 말했다.
"거절하겠다. 만약 길수와 우철이에게 무슨 일이 생긴 거라면, 그것은 녀석들의 부탁을 들어주지 않은 내 잘못이다. 여기에 네가 끼어들 자리는 없어. 넌 너의 인생을 살아라."
뚝...뚝......
"......"
고개를 숙인 현석의 얼굴에서 굵은 눈물 방울이 떨어져 내렸다. 천천히 고개를 들어올려 태현을 올려다보는 현석. 그의 눈동자는 서글픈 분노로 이글거리고 있었다.
"야아-!! 들어와!"
태현을 붉어진 눈시울로 노려보며 고함을 지른 현석. 귓청이 떠나갈듯이 병실 안을 울린 그 고함소리에 이어 문이 조심스럽게 열리며 가희가 들어왔다.
"저...부르신 거예요?"
현석은 조심스러운 음성으로 물어오는 아내에게 시선조차 주지 않으며 냉정한 목소리로 말했다.
"오늘 당장 짐싸서 니 아들 데리고 내 집에서 나가라. 오늘부로 너와는 이혼이다."
"......네...? 그게..무슨...?"
가희는 단 한 번도 보지 못한 남편의 차가운 모습에 당황하며 방금 들었던 말이 믿기지 않는듯이 현석과 태현을 번갈아보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저..저어...여보...무슨..말씀을 하신 건지..저는 잘..."
고개를 확 돌려 가희를 죽일듯한 시선으로 노려보는 현석.
"다시 한 번 말해줄까?!!"
천장을 뒤흔드는 현석의 고함소리에 발을 뒤로 헛디딘 가희는 그만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고 말았다.
"아..저..저어...왜...왜에...흐윽, 왜...갑..자기..."
눈물을 글썽이며 아직도 갑자기 돌변한 남편의 모습과, 그가 한 말이 믿기지 않는듯 고개를 가로저으며 혼잣말처럼 현석에게 물어오는 가희. 태현은 현석을 보며 화난 목소리로 뭔가를 말하려 했다. 하지만 그가 입을 연 순간 갑자기 가희가 눈동자를 파르르 떨며 무릎 걸음으로 현석에게로 다가왔다. 그녀의 입술에서 서글픈 흐느낌이 흘러나온다.
"제..제가...제가 뭐..흐윽, 잘..못이라도..흐으..윽, 한..건가..요? 으흐..윽...왜...왜에...?"
가희는 이게 꿈일까 싶었다. 세상의 다른 남자들과는 다르게 너무나도 순수한 마음을 가진 그에게 점점 사랑을 느껴온 지난 7년간의 세월. 이제는 그가 곁에 없으면 불안감을 느낄 정도로 그를 사랑하게 되었다. 그랬는데, 단 한 번도 자신에게 언성을 높인적도 없고 오로지 따뜻하고 다정하게 자신을 대해준 그가 어떻게 저런 청천벽력 같은 소리를 하는 것일까.
"복잡하게 설명해주고 싶은 마음 없다. 더 이상 너와는 할말 없으니까 여기서 나가라."
냉정한 말을 하는 현석의 눈동자는 조금의 흔들림도 없었다. 가희는 입술을 깨문 채 싫다는 듯이 고개를 가로저으며 현석의 옷깃을 꼬옥 부여잡았다.
"서..설명..해주세요..아,아니...설명..해주신다고..해도...싫어요...헤어지기 싫어요..."
태현은 현석의 옆에 꼭붙어 주저앉은 채 현석이 한 번 털어버리면 저 멀리로 날아갈 것만 같은 가냘픈 손짓에 그래도 온힘을 주어 남편의 옷자락을 부여잡곤 고개를 가로젓는 가희의 모습을 보며 사태가 이렇게까지 되게 놔둔 자신을 책망했다.
"......현석아."
태현은 여기서 자신마저도 화를 내면 상황이 더욱 악화될 것 같아 좋은 목소리로 아우를 불렀다. 하지만 현석은 고개를 홱 돌려 태현을 노려보며 말했다.
"이 여자와 이 여자 아이만 떼어내면 되는 거 아닙니까?"
"......현석아."
잔뜩 도발적인 울림이 묻어나는 현석의 말에도 태현은 얼굴을 찌푸리지 않으며 아우를 불렀다. 현석이 거친 손길로 눈가에 맺혀있던 눈물을 닦아버리며 태현을 노려보았다. 태현은 현석의 눈을 한 번 똑바로 마주보고는 곧 천천히 그의 시선을 피하며 가희를 일으켰다.
"제수씨가 걱정하는 일 같은 건 일어나지 않을 테니까. 걱정말고 잠깐만 나가 계세요."
태현은 불안한 얼굴로 현석에게서 떨어지지 않으려는 가희를 좋게 타일러서 병실 밖으로 내보냈다. 무슨 일인지 몰라 당황한 얼굴로 서있던 유리가 일단 가희를 위로하기 시작했고, 태현은 병실 문을 닫으며 천천히 현석에게로 다가갔다. 그는 고개를 푹 수그리고 있었고 태현은 병상에 걸터앉으며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지킬 자신 있냐."
"......예."
"......담배는."
태현의 물음에 현석이 급히 품에서 태현이 즐겨 피우는 말보로를 꺼내어 한 개피를 내밀었다. 태현은 현석이 내민 담배를 입에 물었다.
치익!......
현석이 켜준 라이터로 담배에 불을 붙인 태현.
"쓰..읍......후우우우......"
안 피운지 일주일도 안 되었는데 매캐한 담배 연기를 빨아들이자 머리가 몽롱해진다. 태현은 한숨을 내쉬듯이 말했다.
"지금 곧바로 강남 연합의 현재 상황과 김형필의 소재를 알아봐라. 그리고 유람선을 점거했던 녀석들이 어디로 도주했는지도 알아보고."
현석의 얼굴이 환해졌다. 그는 고개를 깊숙히 숙이며 힘찬 음성으로 대답했다.
"예! 감사합니다. 형님!"
"제수씨 잘 위로해주고."
"예. 걱정마십시오."
태현은 창문을 열어 담배를 창틀에 비벼끄고는 병실을 환기시켰다. 현석이 눈치있게 병실 안의 공기가 바뀌도록 잠깐 기다린 후에 나갔고, 잠시 후에 유리가 들어왔다.
"어떻게...된 일이야?"
유리는 닫겨진 병실 문쪽을 보며 조심스러운 음성으로 말했다.
"나 현석 아저씨가 저렇게 화내는 모습 처음 봐."
태현은 옆으로 다가온 유리의 머리를 어루만졌고 유리는 아빠의 허리를 끌어안았다.
"아빠."
"응?"
유리가 걱정어린 목소리로 말했다.
"아빠는 나한테 뭐 화나는 일 있으면 절대 마음에 담아두지마. 알겠지?"
"응? 그게..무슨 말이야?"
"나한테 화나는 일 같은 거 있으면 그때 그때 바로 나한테 화내라구. 마음에 담아뒀다가 나중에 한 번에 몰아서 화내지 말구. 응?"
태현은 빙긋 웃었다. 아마도 현석 아저씨가 아빠와 말다툼을 하다가 그동안 쌓였던 것을 아줌마에게 화풀이한 것이라고 생각한 모양이었다.
"아빠는 유리한테 화 안 내."
유리는 생긋이 웃으며 아빠를 꼬옥 끌어안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