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81장
여강의 홍채 정보를 취득한 후 나는 가짜를 진짜인 것 처럼 속일 인공 홍채를 쾌속하게 복제해냈다. 그런 후 다시 조용한 밤을 골라 여씨 집안의 그 비밀 금고 속에서 원하는 그 놀잇감을 찾았다. 아울러 귀신도 모르게 복제를 했다.
그런데 복사본을 세심히 들어본 후 얻은 정보는 나와 매여에게 모두 크게 의외였다. 우리는 원래 여강이 단지 간단하게 상업적인 뇌물을 준 것에 지나지 않을 것이라 여긴 것이었다. 녹음 속에 말하는 내용은 한층 더 복잡했다. 우리가 상상한 복잡과는 너무나 멀었다.
간단하게 이야기하자면 이것은 정치적 성질의 매수 행위였다. 이 열세 명의 같지않은 영역의 고관들을 위해 여강은 30억 좌우의 비용을 바친 것이었다. 이들 비용은 모두 “서조란”의 지분을 이용해 고점에 헐값에 매도하는 수법을 이용했다. 그리고 후에 이들 돈들은 서로 같지 않은 신분과 명의로 흩어졌다. 여러 가지 수속 절차를 통해 돈세탁을 한 후 다시 이 열세 명의 주머니로 집어 넣은 것이었다.
이제서야 나와 매여는 비로서 여강의 ‘동방건설’ 에 대한 일련의 행동들을 이해하게 됐다. 일시적인 흥취가 원인이 아니었던 것이다. 게다가 수익성 방안을 완비한 가운데 국제박람회 필지를 취득한 것은 그 중 단지 하나에 불과했다. 더욱 중요한 것은 인수를 호재로 조성해서 이급시장에서 매매차익을 진행한 것이었다. 그리고 이 일절 모든 것은 동건집단의 배합과 떨어질 수 없었다. 양소붕은 바로 이 라인 상에서 최대의 저항물이었다. 따라서 이렇게 커다란 세력의 비호아래 그를 제거한 것이었다.
하지만 녹음 내용중 더욱 경악하게 한 것은 그 열세 명이 교담을 나누던 중 비록 드러내 놓는 의사는 아주 모호했지만 약속이라도 한 듯 모두 하나의 이름을 언급하는 것이었다. 이 이름은 우리에게 일찍이 익숙한 그 사람이었다. 그들은 마치 이 사람을 위해 계획을 짜고 복무하는 것 같았다. 이 돈들이 보수가 되고 또 그들의 출세를 위해 마치 자신이 그 사람 산하의 지위를 공고히 함으로써 장래 더욱 많은 보답을 기대하는 것 같았다.
비록 나와 매여가 몇일을 분석했지만 그들의 대화 속에 뭐 건질만한 것은 없었다. 하지만 여강이 증권시장을 조종하는 행위 만으로도 그를 공소 제기하는데 충분한 것이었다. 그렇지만 그 이전에 매여는 여전히 조아민의 의견을 구할 생각이었다. 따라서 우리는 오늘 오후에 밀회를 약속했다.
나와 매여는 차를 차고 해변에 도착했다. 홀로 정박한 채 이미 오래 기다려온 쾌속선을 타고 바다를 향해 달렸다. 매여는 나와 함께 배에 타지 않았다. 상대방이 참석자 수를 세 사람을 초과할 수 없다고 요구했기 때문에 나는 매여를 차에 남겨둔 채 홀로 앞서 약정한 지점으로 갔다.
나는 쾌속선 뱃머리에 섰다. 조타수는 보통의 젊은이였다. 나와 마찬가지로 과묵했다. 따라서 나 역시 말을 걸 필요가 없었다. 다만 묵묵히 청람색의 바닷물이 쾌속선에 의해 나누어지는 것을 바라봤다. 뾰족한 뱃머리가 마치 도끼와 같이 파도를 가르며 한 송이 한 송이 눈처럼 하얀 물보라를 일으켰다. 몸 뒤로 육지가 아주 빠르게 시야 밖으로 멀어졌다. 멀리 바라보이는 것은 일망무한의 짙푸른색 뿐이었다.
대략 달리기를 반시간 정도가 흐르자 나와 쾌속선은 이미 드넓기 무한인 바닷물 속에 처해 있었다. 이쪽 바다는 평정하고 또 깊었다. 구름 한 점 없는 천공이 짙푸른 색이었다. 한 대의 배가 바다와 하늘 끝 지점에 마치 서 있는 듯 했다. 바다와 하늘이 교차하는 곳에 한 대의 백색 유람선이 조용히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트랩을 밟으며 그 백색 유람선으로 올랐다. 젊은이는 나 혼자 이 중형 크기의 유람선 위에 남겨놓고 쾌속선을 타고 출발했다. 결백한 배의 몸체는 마치 바닷속 한 마리 하얀색 고래 같았다. 아래로 드리워진 돛 또한 어떠한 바람의 힘도 받지않고 있었다. 꼼짝 않고 있는 유람선은 마치 이미 이 짙게 푸른 바다 위에 응고가 된 듯 했다.
천천히 뱃머리로 걸어갔다. 한 중년남자가 내게 등을 보인 채 의자에 앉아 기대어 있었다. 그는 머리가 빛나고 있고 얼굴은 태양에 그을려 건강한 피부색이었다. 신상에는 하얀색 티셔츠와 회색 작업복 바지를 입고 있었다. 손에는 백색 낚싯대를 쥐고 있었다. 그의 자태는 대단히 한적하고 느긋했다. 낚시에 집중하고 있는 모습이었다. 그의 발 아래로 물이 들어있는 흑색 철통이 있는데 안에 고기들이 유동치고 있는 것으로 봐서 이미 수확이 적지 않음을 설명하고 있었다.
“고암! 어서와 앉게.”
조아민은 고개를 돌리지 않았다. 그는 마치 이미 발자국 소리로 나의 존재를 알아차린 듯 했다.
햇빛이 밝게 비추고 있는 가운데 그의 그 평범하고 특이한 점 없는 오관이 마치 약간 특별해 보였다. 심지어 얼굴 위 그 계곡 마저도 변해 깊이 새겨지는 것이었다. 그의 몸매는 우람하지 않았고 외모 역시 출중하지 않아 평소 군중 속에 있으면 별로 주목을 끌지 못했다. 하지만 이 순간 일종의 사람으로 하여금 경외심을 일으키게 만드는 카리스마가 있었다.
만나는 장소는 조아민이 선택했다. 처음부터 끝까지 우리는 다만 그의 안배에 따랐다. 하지만 나는 그의 이러한 신중하고 치밀한 태도에 아주 찬동했다. 그의 요구에 따라서 오늘 또 한 사람의 손님이 오기로 되어 있다. 그리고 이 망망한 대해 위에서 우리는 정탐 당할 걱정 없이 우리의 비밀을 나눌 수 있는 것이었다.
나는 묵묵히 그의 왼쪽 편 접이식 의자 위에 앉았다. 조아민의 자세는 마치 바다 그 자체인 것 처럼 평정했다. 그는 낚싯대를 잡은 채 수면을 주시하는데 전념했다. 때때로 깜박이는 눈을 제외하고는 본인 마치 대리석으로 빚은 것 마냥 꿈쩍도 하지 않았다.
여름날의 해풍이 신상에 불어왔다. 한 줄기 따스한 느낌이 실려 있었다. 사방에 구름 한 점 없는 바다가 조용한 것이 무미건조에 가까웠다. 작열하는 태양이 내리 쪼여 머리가 약간 어질어질했다.
“난 낚시도구를 하나 더 준비해 왔는데 자네 한 번 해 보겠나?”
조아민이 내가 계속 말이 없는 것을 보고 먼저 입을 열어 말을 했다.
그의 말 속에는 마치 저항하기 어려운 설복력이 들어 있는 것 같았다. 나는 자연히 자신 무릎 앞에 있는 낚싯대를 들어 올렸다. 조아민의 지도하에 미끼를 잘 꿰고 그에게 배운 대로 릴낚시를 던졌다. 나의 손 힘은 센 편이지만 나간 거리는 그리 멀지 않았다. 나는 풀이 죽어 바라봤다. 자신이 던진 낚시줄은 조아민의 것 보다 꽤 거리가 있었다.
“릴낚시는 포환 던지듯 던지는게 아냐. 힘보다는 자세가 중요해. 자세가 안좋으면 힘이 아무리 커도 효과가 별로 없게 돼.”
조아민은 고개를 가로저으며 말했다.
“자네 날 잘 보게.”
그는 말을 하며 자신의 낚시줄을 걷어 올렸다. 나는 겸허하게 옆에 서서 그의 동작을 바라봤다.
그는 왼쪽 발을 반걸음 후퇴하며 왼쪽 어깨를 뒤쪽으로 했다. 양손을 동시에 낚싯대를 거머쥐었다. 대와 수평으로 45도 각도를 드리웠다. 왼 손 식지로 낚시줄을 눌렀다. 중심을 오른 발 위에 주고 그는 숨을 한 모금 깊이 들여 마셨다. 낚싯대 끝부터 오른손 방향 앞쪽으로 휘둘렀다. 순백색의 낚싯대가 마치 장총과 같이 공중을 향했다. 낚시추가 머리 정상을 통과할 때 낚시줄을 잡은 손가락을 풀어 놓았다.
그의 동작은 크지 않았고 힘 역시 나 보다 크지 않았지만 그 자세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모종의 규율이 있었다. 그런 후 은색의 낚시줄이 아주 우아한 라디안 각도를 그리며 그 짙푸른 바닷물 속으로 떨어졌다. 이후 일절의 모든 것이 원래의 평정을 회복했다. 그 푸른 바다 위에는 하나의 백색 부표가 생겨났다.
나는 조아민의 자세를 통해 무엇인가를 깨달았다. 따라서 이번에는 그대로 모방을 해 그의 동작을 배운대로 했다. 비록 처음 낚싯대를 사용하는 것이지만 나는 손에 익히는 것이 꽤 빨랐다. 이번 낚시 바늘은 조아민과 비슷한 위치에 떨어졌다. 조아민은 칭찬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낚시바늘을 드리운 후 그렇게 재미있지 않았다. 파도의 기복이 없는 바닷물은 마치 커다란 유리 같았다. 나는 양 눈으로 낚시 바늘이 떨어진 지점을 주시했다. 하지만 한참을 봐도 고기가 걸려들 조짐이 보이지 않았다. 간혹 부표가 약간 움직여 긴장을 한 채 잡아당기기 시작하는 것이지만 결과는 항상 빈손이었다. 시간이 흘러감에 따라 나는 점점 견디지를 못했다. 이 놈의 물고기들이 나에게 천생 반감이라도 가진 것 같았다. 분분히 내 낚시 바늘을 피해갔다. 옆 조아민은 수확이 풍성했다. 그는 이미 몇 마리 대어를 통 속에 넣고 있었다. 그리고 나는 한 마리도 못 잡고 있었다.
“낚시라는 것은 급하면 안돼.”
조아민은 나의 초조 불안한 정서를 의식한 듯 말했다.
“아주 긴 시간 자네 자세는 정확 했어. 힘의 세기도 맞고 미끼는 더욱 신선해. 하지만 자네는 고기를 속임수에 빠뜨리지 못했어.”
“보다 더 긴 시간 고기는 줄곧 자네의 미끼를 먹어 치우려 했어. 하지만 자네의 낚시바늘을 삼키지는 않아.”
마치 조아민의 말을 검증이라도 하듯 그의 부표가 요동쳤다. 조아민은 쾌속하게 낚시를 거두어 들였다. 하지만 수면으로 튀어 나온 것은 눈부신 낚시 바늘이었다. 미끼만 물고 달아난 것이었다.
“이게 바로 낚시야. 자네 매번 다 됐다고 생각하면 안돼. 비록 자네가 일절 모든 것을 했다치더라도 결국 여전히 자네를 실망시키는 거야.”
조아민은 전혀 개의치 않고 말을 하며 다시 과정에 따라 낚싯대를 던졌다. 낚시줄이 조금의 빈틈없이 커브를 그리며 바다 속으로 떨어졌다.
“그렇지만 승리는 늘 가장 최후까지 지킬 수 있는 사람에게 속하는 거야.”
조아민의 말은 비록 낚시에 대한 말이었지만 나는 그 속에 다른 깊은 뜻이 있는 것을 깨달았다. 내가 그 말을 되씹고 있을 때 그가 갑자기 큰 소리를 내질렀다.
“야압!”
조아민의 목소리 가운데는 놀람과 기쁨이 섞여 있었다. 막 투하한 부표가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게다가 보기에도 낚시줄이 팽팽한 상태였다. 이번에 걸려든 고기는 분명 적지 않은 놈이었다.
조아민이 비쾌하게 낚시줄을 걷어들이는 것과 동시에 유람선의 한 방향으로부터 한 줄기 새하얀 파랑이 엄습해왔다. 두 가지 모두 동시에 이 짙푸른 평정을 깨뜨렸다.
회백색의 커다란 우럭 한 마리가 해면을 뛰쳐 나왔다. 이어서 은빛 낚시줄에 매달려 공중에서 몸부림을 쳤다. 하지만 낚시 바늘은 견고하게 이 커다란 물고기를 얽어 매고 있었다. 조아민의 이 시각 눈 속에는 앞 전의 냉정함은 찾아볼 수 없었다. 그는 기마자세로 어깨를 수구린 채 손으로 릴을 쾌속하게 감았다. 낚시줄이 점점 감아들어왔다. 비록 이 큰 물고기는 죽을힘을 다해 요동을 쳤지만 최종적으로 벗어날 수 없었다.
우비서장이 트랩을 밟으며 유람선에 오르는 것과 동시에 조아민 역시 이 커다란 물고기를 통 속에 거두고 있었다. 그는 어쩔 줄 모르며 튀어나오려 펄쩍 뛰는 물고기를 방지하기 위해 뚜껑을 닫았다. 양 손을 작업복 바지에 문지르고는 몸을 돌려 우비서장을 맞으러 걸어갔다. 얼굴에는 아주 적절한 웃음이 노출됐다.
“존함은 오래전에 들었습니다. 우비서장님.”
조아민은 손을 내밀어 우비서장과 악수했다. 두 사람의 얼굴 위에는 모두 웃음기가 걸려 있었다. 하지만 양 눈 속에는 제각기 빛살이 감돌며 상대방을 쉬지않고 훑어 보며 평가를 하고 있었다.
“조국장님! 과연 일대의 호걸이십니다.”
우비서장은 그의 간판식 헛웃음을 노출하여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우비서장님도 한 번 해보시겠습니까?”
조아민은 수중의 낚싯대를 흔들며 매우 열정적으로 말했다.
우비서장은 그 철통을 흘깃 바라봤다. 그 커다란 우럭이 철통을 펑펑 치고 있었다. 그는 얼굴 위로 한 줄기 난색을 노출했다. 급히 고개를 가로저으며 말했다.
“이거요? 괜찮습니다.”
“우리 먼저 일 이야기를 나눕시다.”
우비서장은 목을 가다듬으며 말했다.
그의 대머리가 햇빛 아래 더욱 더 눈에 두드러졌다. 그 때 햇빛이 가져온 열기가 그로 하여금 이마에 흐르는 땀을 훔치게 했다. 다른 한 편으로 그 작은 눈으로 나를 바라봤다.
“자네가 말한 그 물건은 어디?”
나는 그가 가리키는 것이 무엇인지 알고 있었다. 그 담화 녹음을 카피한 USB를 건넸다. 조아민은 유람선 안에서 노트북을 한 대 꺼냈다. 안에 들은 내용을 틀기 시작했다.
우비서장은 엄숙한 얼굴로 USB 안의 녹음을 다 들었다. 그의 표정은 계속해서 무슨 생각에 잠겨있는 듯 했다. 녹음 내용이 계속적으로 전개됨에 따라 그의 눈빛이 더욱 장중해지기 시작했다. 대머리 위로 흐르는 땀 또한 더욱 짙어져 땀을 훔치는 빈도수 또한 가면 갈수록 빨라졌다.
녹음을 전부 듣고 나자 우비서장의 얼굴 색은 이미 붉은 장처럼 변해 있었다. 녹음 내용 때문인지 아니면 빛이 내리쬐는 열량 때문인지 모를 일이었다.
“어떻습니까?”
나와 조아민은 입을 열지는 않았지만 눈빛은 약속이나 한 듯 우비서장의 얼굴 위로 모여 들었다.
“이… 이건, 아주 가치가 있어.”
우비서장의 말투에는 약간의 격동이 들어 있었다. 심지어 그는 약간 말을 더듬었다.
“제가 원하는게 뭔지 아시겠죠?”
나는 감정을 드러내지 않고 우비서장을 바라보며 말했다.
“문제 없네. 이게 있으면 우리는 아주 빠르게 처리할 수 있어.”
우비서장은 나에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나의 요구에 대해 뻔히 잘 알고 있었다.
“그런데 조국장 당신은?”
우비서장은 약간 불확정적인 눈으로 조아민을 바라봤다. 눈 속으로 한 자락 의심의 빛이 출현했다.
“고암! 나와 우비서장님이 단독으로 이야기를 나눌 수 있게 해주겠나?”
계속 아무 말 없던 조아민이 갑자기 나를 향해 말을 했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 두 사람을 원자리에 남겨두고 배꼬리 쪽을 향해 몸을 돌렸다.
담배 한 개비에 불을 붙이고 나는 흡족해서 둥근 연기를 내뿜었다. 멀리 조아민과 우비서장이 대화를 하는 모습이 보였다. 비록 그들의 대화 내용을 들을 수는 없었지만 나는 한 두가지 추측할 수 있었다.
조아민의 노련함과 교활함으로써는 기왕에 나를 돕기로 선택한 바에는 아울러 우비서장을 대면하는 카드를 요구해 꺼내든 것이었다. 분명 목전의 형세 중 미묘한 변화를 냄새 맡은 것이었다. 그가 오늘 하는 모든 행위는 자신의 패 전부로 우비서장 배후의 그 인물을 압박하려는 것이었다. 그리고 이 여강 흔적의 녹음 USB를 지닌 것이 그의 말을 대신하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몸을 상대방 진영에 두며 표면상으로는 권력에 몰두하지 않으며 그동안 양다리를 걸치며 옆에서 방관을 하던 조아민은 이 결정적인 시기에 줄을 설 곳을 선택한 것이었다. 그는 무슨 대인물은 아니었지만 상대방 진영 속의 중요한 바둑알이었다. 그의 창을 거꾸로 겨누는 것이 현재로 봐서 반드시 시국에 영향을 주는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멀지않은 장래로 보아 이 영향은 실제로 짐작하기가 아주 어려운 것이다.
그들의 담화는 오래 지나지 않아 끝을 맺었다. 멀리서 보니 두 사람이 열정적으로 악수를 나누고 있었다. 그런 후 몸을 돌려 배꼬리 쪽으로 다가왔다. 나는 조아민 수중에 들어있는 흑색 상자에 주의했다. 지난번 우비서장이 내게 준 그 것과 비슷했다. 그들의 얼굴 위 표정이 매우 늦춰져 있는 것이 마치 옛전우와 같이 즐겁게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었다.
“조국장! 당신 정말 총명한 사람이야. 장래 전도가 아주 유망해.”
우비서장이 양 눈 사이로 마음에 들어하는 신색을 노출하며 말했다.
이에 대해 조아민은 다만 미미한 웃음으로 답했다. 그의 눈 속에는 일종의 일을 하기 전 모든 복안이 되어 있다는 듯한 침착이 있었다. 하지만 무엇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이 사람이 더욱 헤아릴 수 없는 사람이라는 것을 느꼈다.
“고암! 우리 계속 연락을 유지하자고.”
우비서장은 나에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동시에 다른 상자 하나를 내 손에 넘겨 주었다. 나는 당연히 안에 무엇이 들어 있는지 알고 있었다.
이 순간 그 두 대의 쾌속정이 언제인지 모르게 다시 다가왔다. 우비서장은 그 중 한 대에 올라탔다. 아주 빠르게 이 쾌속정은 물보라를 일으키며 떠나갔다.
나는 조아민에게 고개를 끄덕였다. 무엇 때문인지 모르게 아무 말 없이 그가 계속 바다 낚시 하러 남으라는 초청을 거절하고 쾌속선에 올라 총총히 떠나갔다.
한 줄기 백색 물보라가 심원한 짙푸름을 베고 있었다. 그 바다와 하늘의 교차점에 있던 유람선이 점차 하나의 작은 점이 되어 가더니 최후에는 지평선상에서 소실되었다.
내가 부두에 돌아왔을 때는 단지 오후 두 시 전후에 지나지 않았다. 텅 빈 선창 위에 하얀색 신영 하나가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갈매기가 그녀의 머리 위 파란 하늘에서 선회하고 있었다. 바다바람이 불어와 그녀의 긴 치마를 산들거리는 것이 멀리서 바라보았을 때 마치 하얀 옷을 입은 선녀와 같았다.
나는 선창으로 뛰어 올라 바람 속 그 우아하고 고운 여자를 바라봤다. 일종의 말로 표현할 수 없는 희열이 마음 속에서 무럭무럭 피어 올랐다. 발걸음이 저절로 빨라지지 않을 수 없었다. 내가 쉬지않고 다가감에 따라 매여의 그 기뻐하는 듯 화내는 듯한 얼굴이 한층 더 뚜렷해지기 시작했다.
매여의 오늘 분장은 아주 감동적이었다. 상아처럼 하얀색의 자수 물베리 실크 드레스가 그녀의 가냘프고 긴 몸매를 감싸고 있었다. 일자 어깨의 네크라인 아래는 웨이브형의 연잎 구김으로 장식되어 있었다. 백조와 같은 길고 하얀 목덜미 아래쪽 우아하기 이를 데 없는 쇄골과 좁디좁은 눈처럼 새하얀 어깨, 그 연잎 주름은 계속해서 확장되어 반쪽 어깨의 소매 위를 덮고 있었다. 양 쪽 봄의 춘순 같이 가늘고 길고 새하얀 팔이 바깥으로 모두 드러나 있었다. 긴 드레스 가슴 앞의 웨이브식 연잎 주름은 공교롭게도 안쪽의 브래지어 윤곽을 가리고 있었다. 설령 몸을 돌려 등 뒤를 보아도 여전히 이와 같았다. 얼음의 결정 같은 견갑골 아래로 여위고 윤이 나고 깨끗한 등이 보여 그녀를 보면 바람만 불어도 쓰러질 것 같아 애처롭고 가련하게 보는 것이었다. 만일 머리 스타일과 몸매만이라면 나는 거의 그녀를 양내진으로 여길 정도였다.
그녀의 가녀린 한 줌도 안되는 허리를 은백색의 허리띠가 감고 있었다. 그런 후 허리 아래는 물베리 실크의 긴 드레스였다. 흐르는 물과 같이 보들보들한 치마자락이 계속 복사뼈까지 늘어져 있었다. 이어서 그녀가 가뿐하고 우아한 발걸음을 내딛고 있었다. 하반신 치맛자락이 마치 한 구비 봄물처럼 살랑거려 양 쪽 가냘프고 매끈하고 긴 다리의 윤곽이 치마 안쪽으로 어렴풋이 보이는 듯했다. 그녀의 이 긴 드레스는 몸매를 아주 엄밀하게 두르고 있는 것이지만 또한 구현할 곳 없던 여성의 곡선미를 나타내고 있어 그녀의 우아하고 장중한 걸음걸이 자태와 배합하고 있었다. 마치 월궁 속 나풀나풀 춤을 추고 있는 선녀와 같았다.
산들거리는 치맛자락 아래 7센티 미터의 은색 리본을 한 웨지힐 샌들을 신은 옥 같은 발이 노출되어 있었다. 몇 가닥의 가는 은색 리본이 그녀의 옥과 같은 발등을 교차해 묶고 있었다. 은색 매듭은 결백하고 정교한 복사뼈 부근에서 간결한 나비매듭을 하고 있었다. 초승달 같은 새하얀 발등이 대부분 노출되어 있었다. 그 꽃잎 같은 하얀 옥으로 빚은 듯한 열 개의 발가락이 공기 중에 드러나 있었다. 7센티미터의 가늘고 긴 굽이 그녀의 섬세하고 고운 몸매를 더욱 늘씬하게 만들어 주고 있었다. 시각적으로 그 긴 드레스 속에 들어 있는 다리를 더욱 길게 보이게 하고 있었다. 이 옥으로 빚은 듯한 다리의 아름다움에 나는 가슴이 두근거릴 정도였다. 그녀의 치맛자락 아래 무릎을 꿇지 못하는 것이 한스러울 지경이었다.
그녀는 머리에 미백색의 커다란 챙의 밀집모자를 쓰고 있었다. 둥그런 모자의 몸체 위에는 심홍색의 실크 리본이 치장되어 있었다. 길다란 리본 끈이 바닷바람에 날려 끊임없이 날리고 있었다. 그 검은 비단 같은 어깨까지 늘어진 단발은 정연하게 모자 안에 갈무리 되어 있어 그 수려하기 이를 데 없는 옥 같은 얼굴을 더욱 작고 깜찍하게 만들어 주고 있었다. 이전과 다소 같지 않은 것이 오늘의 그녀는 담백한 얼굴 위에 립글로스를 바르고 있었다. 얇디 얇은 양 입술 위에 화려한 홍색이 칠해져 있어 그 창백한 피부를 더욱 뚜렷이 투명하고 깨끗하게 해주었다. 또한 활력과 생기를 더해주어 이전의 소담하고 싸늘했던 것 보다 훨씬 나아 보였다. 백옥과 같이 깨끗하고 둥근 귀 위에는 스타일이 간결한 귀걸이가 걸려 있었다. 사각의 매화가 조형된 백금 받침 위에 각각 네 장의 꽃잎 형상의 옥석을 박아 놓은 것이었다. 그 새빨간 색깔과 광택은 우아한 귀티를 뚜렷이 해 그녀의 화려한 붉은 입술과 어울려 서로를 돋보이게 하고 있었다.
매여의 그 맑고 투명한 봉목은 나를 전념해 보고 있었다. 그녀는 아무 말이 없었지만 그 옥석과 같은 아름다운 눈 속의 신색은 이미 일절 “매이모, 일절 모든 것을 처리했어 “ 라고 설명하는 듯 했다.
나는 매여의 눈 앞에 서서 미소를 지은 채 그녀의 수려한 얼굴을 조용히 감상했다.
“고암! 너 정말 대단해.”
매여는 자신 말 속의 열정을 조금도 숨기지 않았다. 그 계속적으로 아주 신중했던 얼굴에 내심으로부터 비롯된 감미로운 웃음이 노출됐다. 마치 한 떨기 야생화가 눈 앞에서 꿋꿋이 피어난 것만 같아서 보는 나를 정신 잃게 만들었다.
그런 후 이어진 일막은 나로 하여금 평생을 잊지 못하게 만드는 것이었다. 매여가 7센티 미터의 은색 리본 웨지힐 샌들의 발끝을 들어 올리며 머리에 쓴 큰 챙이 달린 밀집모자를 가볍게 잡으며 손바닥 크기의 머리를 들어 올려 양 쪽 빨갛고 얇은 입술을 내 오른쪽 뺨 위에 갖다 댄 것이었다. 동작이 아주 경쾌하게 키스를 한 것이었다. 이 키스는 비록 가벼운 것이었지만 그녀의 그 독특한 냉향이 내 콧사이로 맴돌아 나로 하여금 정신이 날아가도록 만들었다. 나는 마치 바보처럼 그 자리에 얼어붙었다. 내가 무슨 반응을 보이기 전에 매여는 이미 원래의 자리로 돌아갔다. 그녀는 약간 무안한듯 뒤로 한 걸음을 더 물러났다. 백자와 같이 여린 뺨 위로 한 줄기 홍조가 떠올랐다. 마치 얼마간은 자신의 방금 행동에 자신도 놀란 것 같았다. 고개를 떨궈 자신의 은색 리본 웨지힐 샌들 안의 새하얀 발을 바라보며 목소리 가운데 마치 무엇인가를 숨기려는 듯 작은 소리로 말했다.
“난 다만 우리들을 위해 한 것에 너한테 감사하려 한 거야. 다른 생각은 없었어. 이상한 생각 하지 마.”
비록 입으로는 그렇게 말했지만 매여의 그 고개를 떨구고 수줍어하는 모습은 마치 한 떨기 유약한 수선화 같았다. 나는 갑자기 일절 모든 것이 그렇게 아름답게 변하는 것을 느꼈다. 눈 앞의 미인이 드물게 내 면전에서 이렇게 소녀와 같은 태도를 드러낸 것이었다. 이것은 나로 하여금 감당할 수 없는 기쁨을 안겨다 주었다. 심지어 불어오는 바닷바람마저 달콤하기 이를 데 없었다.
나는 손을 내밀어 그녀의 가뿐한 한 줌도 되지 않을 것 같은 가녀린 허리를 잡으려 했다. 하지만 매여는 때마침 앞으로 한 걸음을 내딛으며 침착하게 나의 손을 피했다. 그녀는 마치 나의 생각을 의식한 듯 급히 다른 말로 나의 주의력을 돌렸다.
“고암! 우리 돌아가야 해. 가!”
매여의 거절에 나는 약간 풀이 죽었다. 비록 자신이 고집하기만 하면 그녀를 따르게 할 수는 있었지만 나는 이 시각 분위기를 깨뜨리고 쉽지 않았다. 다만 어깨를 으쓱하며 그녀의 뒤를 쫓아 갈 뿐이었다.
차에 탄 후 매여는 침묵을 지켰다. 앞서의 그 작은 에피소드가 난감하게 만든 것 같았다. 그녀는 다만 조용히 조수석에 앉아 넓은 창을 지닌 밀집모자 아래 봉목으로 창 밖의 지나가는 풍경을 직시하고 있었다.
요사이 나와 매여의 사이는 약간 미묘하게 변해 있었다. 남녀간의 육체적 갈등을 가진 후부터 언행과 태도가 자연스럽게 모두 약간의 변화가 발생한 것이었다. 우리의 매택에서의 그 한 번은 자신이 매여를 능욕한 것과 같았다. 자신의 행위는 무지막지했고 또 무뢰했다. 매여를 다만 피동적으로 접수했다는 이야기였다. 두 번째 수영장 샤워실 안, 나는 매여가 이미 나의 조여오는 핍박에 항거를 못한다는 것을 발견했다. 그녀는 비록 표면상으로는 극력 자신의 정서를 숨겼지만 그녀의 육체는 나에게 영합하기 시작하는 것을 가로막을 수 없었다. 나의 적나라하고 대담한 고백을 대하는 그녀의 회답은 그렇게 연약하고 피동적이었다. 이것은 나의 그녀에 대한 갈망을 한층 더 짙게 만드는 것이었다.
매여는 나의 그녀에 대한 생각을 이해한 것이 분명했다. 우리가 일상적으로 함께 살 때 나는 그녀의 신상을 향해 이글거리는 눈빛을 주었었다. 천성이 예민한 그녀가 모를 리 없었다. 그러나 그녀는 내가 일반적으로 제멋대로 할 수 없도록 했다. 자신의 딸과 남자의 모친이 모두 한 집에 있었다. 절대 그녀들이 자신과 남자의 관계를 알아차리게 하면 안되는 것이다. 하지만 남자의 눈빛은 끝까지 귀찮게 자신의 신상에 머물렀다. 이것은 매여를 아주 귀찮게 했다. 남자의 눈빛을 접촉하면 자신 최종적으로 남자와의 그 두 번의 벗어날 수 없는 육체적 갈등이 자신도 모르게 되살아나기 때문이었다. 그러한 것은 자신으로 하여금 멈추지 못하는 느낌에 수치롭기 그지없게 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더욱 그녀가 걱정하는 것은 그녀 마음 속에 비록 남자의 목적과 야심에 대해 손바닥 보듯 하는 것이지만 어찌 그것을 억누르고 정신을 차리냐는 것이었다. 이 일절의 모든 것과 그녀 최초의 고려와는 서로 거리가 아주 컸다. 그녀는 이 바둑은 중반까지 나갔다는 것을 발견했다. 하지만 국면상의 장악자는 점점 위치를 바꾸기 시작했다. 자신은 비록 여전히 상대보다 우세를 점거하고 있었지만 이 우세가 상대방의 신상으로 이동하고 있었다. 게다가 그 이동되는 속도의 빠르기는 사람을 놀라게 할 정도였다. 마치 겉모습으로 보면 위대한 장관의 빙산 같아 보이지만 그 밑바닥은 이미 바닷물 속으로 녹아버리고 있다는 것을 자신은 잘 알고 있었다.
매여는 이렇게 가다가는 결국 어찌 되는지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녀는 또 조금의 방법도 꺼낼 수가 없었다. 혹자는 말하길 그녀가 그렇게 굳강한 의지가 없다고 할 것이다. 국면을 보면 한 걸음 한 걸음 변화하는 가운데 그녀가 유일하게 할 수 있는 것은 회피와 위장이었다. 일절 지금까지 아무 일도 발생하지 않은 척 가장하며 표면상으로 자중하며 상대방의 야망을 봉쇄하는 것이었다.
SUV가 해변 큰 길 위를 달리고 있었다. 창 밖의 풍광과 공기가 아주 기분 좋은 숨결을 가져다 주고 있었다. 다만 차 안의 조용함이 사람으로 하여금 답답함을 안겨 주었다. 공기가 마치 이 순간 얼어붙은 것 같았다.
이러한 침묵을 타파하려고 나는 주동적으로 방금 전 유람선 위의 대면 특별히 조아민과 우비서장 간의 대화에 대해 이야기를 했다. 이 화제가 간신히 매여의 흥취를 자아냈다. 그녀는 내가 말하는 것에 주의를 기울이기 시작했고 불시에 껴들어 자신의 그들에 대한 견해를 이야기했다.
“어쩐지 낭가가 이 몇 년 한층 상승세라 했는데 간단히 이 우비서만 봐도 대단하네.”
매여는 내가 그들이 대면한 정경을 묘사하는 것을 다 듣더니 무슨 생각에 잠긴 듯 하더니 말했다.
“뭘 보고 그렇게 생각하는 거죠?”
나는 약간 불복의 느낌으로 물었다. 내가 보기에 우비서장은 비록 용의주도했지만 무슨 사람에게 인상을 깊이 새기게 할 것은 없어 보였다.
“그 일을 이루고자 하면 먼저 그 마음을 따르라. 고금에 모두 이와 같으니. 여천의 그 사건에 대해 연경 그쪽으로 말하자면 단지 아주 하찮은 일이야. 하지만 네가 그를 위해 획득한 이번 것은 아주 큰 일이야. 적의 요충지에 심오한 바둑 한 수를 놓은 것이지. 이 어찌 일거양득이 아니겠어.”
매여는 천천히 말을 했다. 그녀가 말을 하며 손가락 마디로 차창 위를 두드리자 상큼한 소리가 울려 퍼졌다.
“유능한 부하에는 반드시 유능한 주인이 있는 법. 아랫사람을 충분히 신임을 하고 아울러 잘 사용을 하는 것이 바로 지도자 인물이야. 너 우비서와 그 집안의 아랫사람들을 한 번 비교해봐. 다시 여씨 집안 형제의 행위와 수단을 살펴보고. 그러면 그들 배후 인물의 진실한 수준을 알아차리지 못할 것이 없잖아.”
매여의 평가는 나의 시야를 넓혀주는 것이었다. 나는 다만 형세와 발생한 변화에만 주의를 한 것이었다. 사람의 행위 속에서 이러한 것들을 추정해내지는 못한 것이었다. 이 여자의 예리함과 사실에 대한 통찰력은 사람을 탄복케 하는 것이었다. 이전에는 너무 많은 이성과 규칙들이 그녀의 천부성을 제한한 것이었다. 만일 어느 날 그녀가 이러한 자질을 운용하기 시작한다면 그것은 정말 가공할 일이 될 것이었다.
“하지만 어쨌든 조아민은 결국 자신을 바치지는 않을 거야.”
매여는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녀의 말투 속에는 다소간의 야유가 섞여 있었다. 또 마치 사람의 인성을 꿰뚫어보는 것 같았다.
“매이모! 이모도 얻는게 있지 않겠어요?”
나는 약간 감개하며 답했다.
나의 말은 마치 매여의 마음 속에 잔잔한 물결을 일으킨 것 같았다. 그녀는 모자챙 아래 옥 같은 얼굴을 들어 올렸다. 봉목 속 한 줄기 말하기 어려운 눈빛을 내비쳤다. 아주 복잡한 눈으로 나를 바라보는 것이었다.
나는 마음 속으로 실언을 했다고 느꼈다. 비록 여강을 와해시키는 것이 다만 시간상의 문제일지라도 양씨 집안으로 말하면 형편이 크게 바뀌지는 않을 것이었다. 양씨 집안의 남주인은 여전히 감옥 안에 갇혀있고 양씨 집안의 저택은 법원에 의해 경매중이었다. 양씨 집안의 노야는 이미 세상을 떠난 것이었다. 우리가 이들 문제를 모두 해결한다 할지라도 양씨 집안에 조성된 피해는 만회할 길이 없는 것이었다. 이런 때 우리가 승리를 경축하는 것은 너무나 이른 것이 아닐 수 없었다.
나는 실언에 의해 침묵에 빠졌다. 다행히 매여는 밖으로 표현을 하지 않았다. 그녀의 옥용은 여전히 그렇게 청담했다. 다만 시선은 창 밖의 경치 위에 머물렀다. 원래 창유리 위를 두드리던 손가락은 멈춰 있었다. 한참이 지난 후 그녀가 말을 꺼내 차내의 조용함을 깨뜨렸다.
“고암! 너 예전에 저 길 가본 적 있어?”
매여는 손가락으로 한 외지고 조용한 작은 길을 가리켰다. 우리는 회시구의 방어선을 달리고 있었다. 이 시각 연해의 작은 산 아래를 운전하고 있었다.
나는 비록 확실치 않았지만 매여의 말에 따라 작은 길로 접어들어 운전해 달렸다. 도로 양쪽에는 모두 빽빽하게 백양나무가 있었다. 차는 구부러진 작은 길을 따라 산 위로 기어 올라갔다. 이어서 해발이 높다고는 할 수 없지만 양쪽 초목들이 더욱 무성해져 갔다. 그리고 하오의 햇빛이 마치 빽빽한 수림 속에 사라져버린 것 같았다.
길을 따라 운전해가니 머리 위 수림이 점점 적어졌다. 우리는 산 정산의 개활지로 올랐다. 이 안은 나무가 없고 단지 청록색의 초지만이 넓게 펼쳐져 있었다. 초지 가운데는 온갖 색상의 꽃송이 들이 뒤섞여 있었다. 산 바람이 불어와 마치 비할 데 없이 아름다운 물결을 이루고 있었다.
그리고 무성한 수풀 가운데 작은 길 하나가 산 정상으로 통해 있었다. 이 작은 길의 끝에는 하얀색의 집이 바윗등 위에 세워져 있었다. 이 집은 하얀색 삼층으로 조성되어 있었다. 색상과 조형이 장중하고 단아했다. 집은 낭떠러지를 끼고 지어졌고 등 뒤는 바로 임안의 해안절벽이었다. 어슴푸레 파도가 암석을 때리는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그리고 파도 소리에 맞추어 은은하니 구성진 음악이 하얀색 작은 집 안에서 전해져 나왔다. 음악 소리는 마치 사람의 귀에다 대고 연주하는 듯 했다. 나는 그 음악이 누가 연주하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다만 아주 좋다는 것을 느꼈다.
매여는 차에서 내려 천천히 걸었다. 그녀는 우아한 발걸음으로 절벽쪽으로 걸어갔다. 앞서 머리에 쓰고 있던 그 하얀색 밀집 모자는 이미 차내에 남겨두고 온 상태였다. 그 비단같이 매끄러운 검은 머리가 바람에 춤을 추고 있었다. 얌전하고 청수한 뒷모습이 바람에 산들거리며 날리는 치맛자락과 배합되고 있는 것이 마치 한 완미한 여신이 바람 속에 우뚝 서있는 것 같은 모습이었다.
나는 그녀의 신변으로 걸어가 세심하게 그녀의 맑고 수려한 옆 얼굴을 감상했다. 그녀의 눈빛은 까마득하게 그 짙푸른 대해를 바라보고 있었다. 얼굴 위에는 무슨 생각에 잠긴 듯한 신정이 걸려 있었다.
“나 열살 이전에 항상 이 곳에 와서 차에서 내려 파도가 바위를 치는 소리를 들었었어.”
매여가 작은 소리로 말했다. 그녀의 목소리는 예상 밖으로 가볍고 평온했다.
“이모가? 여기서?”
나는 약간 놀라며 물었다.
“응. 이 집은 원래 열금장이라고 해. 우리 외할아버지의 별장이야. 당연히 현재는 우리 집에 속하지 않아. 30여년 전에 정부가 거두어 가버렸어. 후에 개조해서 무도학교가 조성되었지.”
매여는 어지러이 휘날리는 머리카락을 가다듬으며 약간 자조하듯 말했다.
“하지만 다행히 그들은 집의 외형은 바꾸지 않았어. 이 집은 여전히 하얀 것이 마치 하늘에 떠다니는 구름 같아.”
“하얀색이 아주 예쁘네요. 게다가 보기에도 아주 깨끗하고.”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찬동을 표시했다.
“너의 눈썰미도 꽤 괜찮아.”
매여는 나에게 생긋 웃었다. 그녀는 분명 나의 찬동에 즐거운 것 같았다. 주동적으로 말을 이어 나갔다.
“흰색으로 칠한 것은 피서를 위해서야. 게다가 이 곳은 일년 내내 바닷바람이 불어 기온이 시내에 비해 훨씬 낮아. 그래서 외할아버지 집의 피서용 별장이었어. 내 기억에 어릴 때 여름이 되면 어머니가 나를 데리고 와 여기서 묵었었어.”
“그 시절 여름은 아주 길었어. 날씨는 지금처럼 이렇게 덥지 않았고. 어머니는 매일 같이 내가 피아노 치는 것을 감독하셨어. 오후 내내 연습을 했어.”
매여의 얼굴 위로 추억의 신정이 출현했다. 그녀의 입가에는 자신도 모르게 한 줄기 웃음이 피어 나왔다.
“피아노 치는 것 외에 나는 또 고문도 배우고 서법, 시가 등을 배웠어. 외할아버지는 그야말로 나를 남자아이처럼 키우시려 했어. 하지만 어머니가 외할아버지에게 못하게 하셨지. 그녀의 심중에 여자아이는 마땅히 숙녀의 모습이어야 했어. 그래서 어머니의 고집 하에 나는 겨우 숙녀로서 갖추어야 할 소질만을 배웠어. 어떻게 행동하고 어떻게 말하고 어떻게 우아하고 아름다운 태도로 길을 걷는지 어떻게 자신의 웃는 얼굴을 이용한 감염력으로 또 다른 사람에게 나쁜 인상을 불러모으지 않는… “
매여가 이렇게 주동적으로 자신의 마음 속을 활짝 여는 일은 거의 없는 일이었다. 자신의 옛날 이야기를 말할 때 그녀는 항상 자신을 단단하게 포장을 했던 것이다. 하지만 오늘 이러한 독특한 환경과 분위기 아래 나는 매여의 다른 일면을 볼 수 있었다.
“그렇다면 분명 성공한 것이네요. 매이모가 바로 완미한 숙녀의 본보기이니까요.”
나는 치켜 세우며 말했다. 하지만 이것은 내 내심 속 진실한 느낌이었다. 어느 각도에서 봐도 모두 매여는 완미한 여성이었다.
“숙녀? 호호!”
매여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녀의 웃음 소리 속에는 다소간의 자조와 비애가 섞여 있었다. 그녀는 적지 않은 감회에 섞여 말을 했다.
“숙녀는 다만 겉껍데기에 지나지 않아. 평소 너는 그 겉껍데기를 아주 아름답다고 봤을 거야, 하지만 그것은 자신의 희로애락을 모두 숨긴데서 가져온 효과야. 이 껍데기를 형성하기 위해 무엇을 바쳐야하는지 아는 사람은 없어. 또 이 겉껍데기 속의 진정한 생각을 아는 사람도 없어.”
“매이모! 난 알아.”
나는 마음 속으로 속삭였다. 하지만 소리를 밖으로 내지는 않았다. 다만 조용히 미인의 신변에 서서 그녀를 바라봤다.
흰 구름 몇 점이 다가왔다. 햇빛은 이미 그렇게 뜨겁지 않았다. 바닷바람이 불어와 그녀의 긴 하얀 치마를 들어 올렸다. 양쪽 아름다운 긴 다리에 매끄러운 물베리 실크 치마자락이 위로 붙여졌다. 치맛자락 아래 하얗기가 연뿌리 같은 가냘픈 종아리가 드러났다. 마치 옥과 같이 윤기가 흐르는 복사뼈 위에 나비 매듭이 묶여 있었다. 그 7센티미터 높이의 은색 웨지힐 샌들 안에 신겨있는 옥 같은 발은 가늘고 여린 것이 사랑스럽기 그지없었다.
해풍에 지면의 풀꽃들이 움직여 하나 하나 마치 파도 물결 같은 상하의 기복을 이루고 있었다. 마치 자신들이 청록색의 바다 한 가운데 몸 담은 듯 했다. 매여의 발 옆 색채가 눈부신 진달래 한 그루가 있었다. 마치 한 무더기 약동하는 화염과 같이 흔들거리고 있었다. 나는 허리를 굽혀 그 중에 가장 큰 한 송이를 따서 손에 거머쥐었다.
“매이모.”
나는 작은 소리로 그녀를 불렀다. 매여는 대답을 하며 시선을 돌렸다.
눈 안으로 뛰어 들어온 것은 그 키가 큰 남자가 우뚝 서 있는 것이었다. 그의 수중에 있는 것은 한 떨기 선홍색이 뚝뚝 떨어질 것 같은 진달래였다. 그의 지난 날 그 지나치게 냉혹했던 양 눈속으로 열정이 분출되어 나오고 있었다. 마치 손에 들린 그 붉고 아름답기가 마치 화염과 같은 색상과 똑 같았다. 마치 그의 눈 속으로부터 자신의 신상으로 옮겨 붙을 것만 같았다. 그의 대리석을 깎은 듯한 오관 위에는 담담한 웃음기가 걸려 있었다. 바람에 약간 헝클어진 머리와 그의 활짝 열린 하얀 와이셔츠 네크라인이 서로 어울려 운치를 더하고 있었다.
그가 입을 열어 말을 했다. 그러나 매여는 상대방이 무슨 말을 하는지 알아들을 수 없었다. 해풍이 불어 남자의 낮은 그리고 자성이 풍부한 목소리를 사방으로 흩어버린 것이었다. 매여의 눈 속에는 다만 남자의 그 단정한 하얀 치아만을 볼 수 있었다. 아울러 결실있고 힘 있는 아랫턱 가운데 그 뚜렷이 패인 흔적. 그의 아랫턱 밑 모서리에는 면도 후의 자국이 남아 있었다. 이것은 그를 나이에 비해 보다 성숙하게 보이게 하고 있어 여러 각도에서 보아 그를 아주 흡입력 있는 남자로 만들어주고 있었다.
“나 이게 무슨 터무니 없는 장난이야.”
매여는 힘있게 고개를 가로저었다. 마치 뇌 속에서 그리고 눈 앞에서 이 남자의 형상을 떨치려는 듯 했다. 하지만 그녀의 약간 충동적인 환상은 결코 실현되지 못했다. 눈 앞의 이 남자는 마치 높은 산과 같이 우뚝하니 움직임이 없었다. 바닷바람이 어지러이 불어와 그의 이마를 가리던 머리를 날렸다. 하지만 구애받지 않음과 대범함을 더해줄 뿐이었다.
“꽃이 피어 있을 때는 다만 한 계절이니, 그녀가 가장 아름다울 때를 더욱 귀중히 여기노라.”
남자의 말이 어렴풋이 들려왔다. 비록 그의 말은 약간 생경하고 또 약간 유치했지만 매여의 마음 속이 갑자기 약간 은근히 달콤해지는 것을 느꼈다. 심정이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상쾌해졌다.
매여는 가늘고 긴 팔을 내밀어 그의 수중에서 그 꽃을 건네 받았다. 그녀의 수선화 같은 섬세한 손이 가볍게 수중의 진달래를 만지작거렸다. 그 맑고 투명한 봉목으로 빨간 꽃잎을 아주 오랫동안 바라봤다. 그녀의 담백한 얼굴 위에는 정서적인 파동이 일지 않았다. 하지만 나는 그녀의 눈 속에서 감추기 어려운 열락을 알아차렸다.
“고암. 고마워!”
매여가 머리를 들었다. 그 청아하고 수려한 작은 얼굴 위에 환한 빛의 신채가 충만했다. 그 감당할 수 없는 아름다운 얼굴에 나는 멍하니 바라보고만 있었다.
“진달래의 개화기는 사실 아주 길어. 만일 네가 그것을 물속에 놔두거나 또는 적당한 토양에 있게 하면 일년 내내 꽃이 피어 있을 수 있어.”
매여는 흥미롭게 말했다. 그녀의 말투는 평소와 같이 듣기 좋았다. 하지만 나는 그녀의 말 속에 다른 뜻을 가리키는 것이 있다고 느꼈다.
나는 갑자기 용기가 일었다. 한 줄기 이름 모를 충동이 나를 앞으로 한 걸음 내딛게 했다. 그녀의 양손을 잡아 들어 올렸다. 그녀의 가녀린 작은 손이 나의 손바닥 안에 잡혔다. 손바닥 안 그 수선화 같은 새하얗고 가는 손가락들은 평상시 같이 그렇게 차지 않았다. 그 커다란 붉은 꽃을 사이에 두고 나는 그녀의 맑은 유리 같은 눈을 바라봤다. 봉목 속의 그러한 신정은 낯설지 않았다. 내가 일찍이 다른 일종의 정황 아래 보았던 것이었다. 그 때 그녀의 백자와 같이 섬세한 옥체가 마치 꽃송이와 같이 내 몸 아래에서 활짝 피었던 것이다.